<러브 오키나와> 상영회로 방한한 후지모토 유키히사 · 카케야마 아사코 감독

화면 속 두 여성이 바닷가에서 체조를 하더니 옆에 있던 작은 카누에 몸을 싣는다. 파도를 헤치는 위험천만한 항해 후에 도착한 곳은 몇 명의 인부들이 일하는 작은 망루. 곧 몸싸움이 벌어지고 여성들의 외침이 들린다.

“하지 말라고요. 작업을 중단하세요!”

인부들이 다리를 잡으며 망루에 오르는 이들을 저지하자 목소리는 한층 격해진다.

“무슨 짓을 하는 거예요. 인부들을 돌려보내세요! 다리 잡지 말라고요. 그게 당신들의 일이에요? 위험해요! 그만둬요! 안 돼요!”

격렬히 저항하는 이들은 8년째 미군기지 건설에 반대하는 오키나와 헤노코 주민들이다. 다큐멘터리 <러브 오키나와>는 미군기지 건설을 반대하며 평화를 위해 노력하는 주민들의 긴 싸움을 고스란히 카메라에 담았다. 상영회를 위해 서울을 방문한 후지모토 유키히사 · 카케야마 아사코 감독을 만났다.

▲ 후지모토 유키히사 감독(왼쪽)과 카케야마 아사코 감독 ⓒ문양효숙 기자

후지모토 감독은 오랫동안 미국의 군대와 전쟁에 집중해 왔다. 2003년부터 2005년까지는 홋카이도 야우스베쯔 자위대 기지, 한국 매향리 미군기지, 오키나와 헤노코 신기지를 잇는 현장을 찾아가 군사기지를 반대하는 사람들을 촬영했다. 2006년부터 2008년까지 800일간 미국에 가서 베트남, 이라크, 아프가니스탄 전쟁에 참전한 미국 병사들, 참전을 거부한 병사들을 취재했다. 미국 젊은이들이 겪은 전쟁의 실체를 밝히는가 하면 오키나와에 오는 미국 해병대원들이 12주간 받는 훈련의 문제점을 파헤쳐 <미국, 전쟁하는 나라의 사람들>, <미국, 만세>, <one shoot, one kill> 등을 만들었다.

후지모토 감독이 미국의 전쟁에 집중하게 된 계기는 1988년 아프가니스탄이다. 그는 수도 카불에서 총격이 벌어지는 현장에 있었고 노인과 여성, 어린이들이 죽어가는 전쟁의 맨얼굴을 온몸으로 경험했다. 전쟁의 참상을 알려 그것을 종식시킬 수 있는 영화를 만들어야겠다고 생각한 후지모토 감독은 미군이 오키나와 기지에서 베트남, 아프가니스탄으로 출격한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그는 미군기지 반대운동을 하는 주민들을 만나러 오키나와를 향했다.

평화운동가였던 카케야마 감독이 영화를 찍게 된 것은 훗카이도 야우스베쯔의 한 농민 때문이었다. 바로 자위대 기지 건설에 맞서 죽을 때까지 자기 땅을 지켰던 단 한 명의 농민, 카와세 한지 씨다.

“일본에서 제일 큰 훈련장이거든요. 그 포격 훈련장 한 가운데 카와세 씨의 토지가 있었어요. 키도 작고 부끄러움도 많은 분이었는데 그분이 너무 좋았어요. 거기에서 후지모토 씨를 만났어요. 영화를 만들고 싶다고 했더니 ‘당신이 직접 만들라’고 하는 거예요. 그때부터 같이 영화를 만들었고 오키나와에도 함께 갔지요.”

아름다운 바닷가와 함께 천혜의 관광휴양지로 알려진 오키나와는 전체 면적의 20%가 미군기지다. 주일미군의 74%가 오키나와에 주둔하고 있으며, 항공기 소음, 헬리콥터 추락사고, 기지 공해 등의 피해가 끊이지 않고 있다.

1995년 미군 3명이 12세 오키나와 소녀를 집단 성폭행하는 사건이 발생하자 85,000명이 참가한 현민 대회가 열리고 일본과 미국 정부는 후텐마 기지를 반환하겠다고 발표하기에 이른다. 그러나 이듬해에는 대체기지를 만들겠다고 협약하고 이전할 장소로 헤노코를 지목한다. 이에 헤노코 주민들은 ‘생명을 지키는 모임’을 결성한다. 1997년이었다.

▲ 오키나와 주민들의 미군기지 반대 투쟁을 그린 다큐멘터리 <러브 오키나와> (영상 갈무리)

카케야마 감독은 오키나와 주민의 긴 싸움의 힘은 무엇보다 역사적 경험에서 나온다고 설명했다.

“오키나와는 일본에 점령당하기 전까지 군대가 없던 비무장 섬이었죠. 그런데 1945년 오키나와 전투에서 주민들도 죽고 오키나와 전체는 초토화됐어요. 헤노코 신기지 건설 계획이 발표된 게 1997년이었는데 처음부터 지금까지 열심히 싸우는 분들이 대부분 할아버지, 할머니들이시죠. 전쟁을 경험한 분들인 거죠. 오키나와 사람들은 오키나와에 대한 애정도 깊지만 마음 깊은 곳에 ‘군대는 안 된다’가 자리 잡고 있어요.”

후지모토 감독은 “아름다운 곳은 모두 미군이 점령했다”며 “오키나와현 주민들은 자신의 바다도, 하늘도 마음대로 접근할 수 없다”고 덧붙였다.

그렇기 때문에 오키나와에서는 미군기지에 반대하는 여론이 대부분이다. 정당이 어디건 미군 문제에 대해 강력하게 반대를 표명하지 않으면 국회의원으로 당선될 수 없다. 후지모토 감독은 “비록 1%지만 무거운 1%”라고 말했다.

“작년에 후텐마 기지 게이트 3개를 현민 전체가 4일 동안 봉쇄한 적이 있어요. 그런데 경찰이 사람들을 떼어낼지언정 체포는 못했어요. 오키나와 전체의 힘이죠. 전체 일본 인구의 1%에 불과하지만 그 1%가 전부 반대하니까, 일본 정부도 일방적으로 신기지 건설을 강행하기 어렵죠. 국가와 현민이 맞서고 있는 상태예요.”

그러나 이런 대대적인 저항에도 미국과 동맹을 맺은 일본의 안보체제 방향은 강력하다. 후지모토 감독은 “미국의 전쟁에 협력하는 것이 일본의 국책이다. 자민당이건 민주당이건 정권이 바뀌어도 그 정책에는 변화다 없다”고 말했다.

8년, 긴 시간이다. 이렇게나 오랜 싸움에도 물러서지 않는 거대한 국가의 힘에 좌절한 적은 없는지 궁금했다. 감독에게 물었더니 감독은 인터뷰에 동행한 헤노코 주민 사사키 코분 씨에게 되묻는다. 기지 건설 반대운동을 해 온 사사키 씨는 환하게 웃으며 “무력감 같은 거 없어요”라고 답한다. 할 일이 너무 많기 때문에 절망할 틈이 없단다.

“헤노코 매립 허가를 방위성이 오키나와 현청에 제출했어요. 심사하는 과정이지요. 7월에는 선고도 있고, 1월엔 시장선거도 있고, 후텐마 기지 정문 앞에서는 매일 항의를 해야 하고요. 헬기 착륙장 건설도 막아야 해요. 원래 계획은 6개였는데 1개 밖에 안 만들어졌어요. 아, 할 일이 너무 많아요.”

▲ 오랜 시간 미국의 전쟁과 군대 문제를 다뤄 온 후지모토 감독은 “결국 미국을 중심으로 한 안보체제가 큰 문제”라고 강조한다. ⓒ문양효숙 기자

헤노코 주민들은 해상 시위를 위해 잠수 훈련을 하는가 하면, 튼튼해야  한다며 하반신 운동을 한다. 나이가 지긋해 보이는 한 주민은 “긴장의 끈을 놓아도 안 되고, 지치지 않도록 적당히 쉬어주면서 가야 해요”라며 바닷가에서 몸을 풀기도 한다.

<러브 오키나와>의 첫 번째 상영회는 제주 강정마을에서였다. 카케야마 감독은 “일본 본토에서 오키나와를 보는 시선과 한국에서 제주 강정을 바라보는 시선이 아주 비슷하다”고 말했다.

“본토와는 거리감도 있고 역사도 조금 달라요. 기지 문제를 오키나와만의 문제로 한정 시켜요. 일본 본토에서는 관심이 없어요. 오키나와 기지의 여러 사건사고는 오키나와에서만 보도되고 분노하고 투쟁해요. 하지만 본토에서는 의도적으로 그런 보도를 하지 않아요.”

카케야마 감독은 “오키나와 사람들은 피해자인 동시에 가해자”라고 말했다. 전투기와 군용헬기의 소음, 성폭행 등 끔찍한 사고를 경험한 피해자이지만 오키나와가 미군이 베트남, 아프가니스칸 등 여러 나라로 출격하는 거점 기지가 되기 때문이다.

<러브 오키나와>에서 신기지 건설을 반대하는 한 주민의 목소리가 떠올랐다.

“이걸 막지 못하면 공범자가 될 것이라는 느낌, 그게 괴로워요. 우리 돈으로 만드는 거니까요. 그래서 막고 싶어요.”

<러브 오키나와>는 전투기의 굉음과 함께 시작한다. 평화로운 후텐마 초등학교에서 뛰노는 아이들의 머리 위로 군용 헬기가 낮게 날아간다. 제주 강정의 미래가 오버랩됐다. 강정마을에서 상영을 시작한 <러브 오키나와>는 군산, 평택, 서울 등을 순회했고, 6일 인천 영화공간주안에서 마지막 상영회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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