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 - 애들이 모이는 곳엔 이유가 있다 1] 아델의 청소년 문화공간 청청청

<연재 순서>

청소년사목 현장의 목소리
① 주일학교, 변해야 산다
② 청소년사목을 위한 극약 처방

애들이 모이는 곳엔 이유가 있다
① 문을 열어라! ‘아델의 청소년 문화공간 청청청’
② 청소년과 교사들의 에어백, 사목코디네이터

약국이 있는 골목으로 들어가 첫 번째 오른쪽 골목에서 우회전. 미로 같은 주택가에서 잠시 헤매다 알록달록한 벽화를 발견했다. 제대로 찾아왔구나! 좁은 계단을 따라 지하로 들어서니 복도 안쪽 방에서 남자 아이들이 떠드는 소리가 들렸다. 이윽고 십여 명의 아이들이 우르르 쏟아져 나와 복도를 점령하고는 순식간에 사라졌다.

“얘들아, 파이팅! 참, 연락처 안 적은 사람은 알려주고 가세요. 어디로 갈거니? OO학교 운동장? 그래, 거기가 놀기엔 좋지. 잘 가라!”

아이들을 배웅하고 돌아온 강 로사 수녀의 얼굴엔 활기가 넘쳤다. 이곳은 서울 양천구 마리아의 딸 수도회 지하에 위치한 ‘아델의 청소년 문화 공간 청청청’(이하 청청청). 2012년 초에 문을 열고 근방에 있는 지역아동센터와 연계해 어린이 · 청소년을 대상으로 한 문화 프로그램을 제공하고 있다. 최근에는 주변 학교에서 동아리 활동을 하는 청소년들에게도 연습 공간을 내주고 있다. 세상과 단절돼 조용한 침묵으로 가득할 것 같은 수녀원은 어떻게 동네 아이들의 시끌벅적한 놀이터가 됐을까?

▲ 아델의 청소년 문화공간 청청청을 이끌고 있는 강 로사 수녀(오른쪽)와 ‘콩샘’ 김홍근 씨 ⓒ한수진 기자

출발은 6년 전, 강 수녀가 수녀원 근처에 지역아동센터가 문을 열었다는 소식을 듣고 주 1회 밥을 해주는 봉사활동을 시작하면서부터였다. 그러다 1년에 한 번 수녀원 식당에서 아이들이 음식을 준비해 엄마를 초대하는 잔치를 벌이면서 동네 아이들과 수녀원 사이에 교류가 생겼다.

“지역아동센터가 겪는 어려움 중의 하나가 활동공간의 부족인걸 알게 되면서 이따금씩 수도원 공간을 빌려줬어요. 그러다 2010년 수도회 총회에서 결의를 한 거죠. 우리가 사는 공간의 일부를 지역의 소외된 이들에게 내놓자.”

모임과 피정 공간으로 쓰이던 수도회 건물 지하는 동네에서 카페 겸 작업실을 운영하는 문화예술인들의 자발적인 참여를 거쳐 아이들이 좋아할만한 공간으로 탈바꿈했다. 공간에서 운영하는 프로그램은 아이들의 의견에 따라 하나씩 늘어났다. 현재 청청청에서는 인근에 위치한 지역아동센터 3곳의 어린이 · 청소년을 대상으로 난타와 풍물, 연극, 밴드 교실을 운영하고 있다.

지역아동센터 ‘나무와 숲’ 교사 곽복덕 씨는 “청청청이 문을 열면서 아이들이 꿈만 꾸던 밴드 활동도 하게 되고 선택의 폭이 넓어졌다”고 말했다. 그는 지역 아이들을 돌보는 일을 함께 고민할 동료가 생긴 것도 든든하다고 했다. “아이들에게도 그렇지 않을까 싶어요. 다양한 어른과 선생님들이 생긴 거니까요.”

수도회 수녀들은 아이들의 달라진 반응을 동네 골목길에서 먼저 체감했다. 강 수녀는 아이들만큼이나 동료 수녀들도 기뻐하는 일이 많아졌다고 했다. 그 덕분에 수도회는 크게 늘어난 냉난방비와 전기요금, 수도요금으로 매달 허리띠를 졸라매야 하지만 “수녀님들은 ‘우리 아이들을 위한 일’라고 말하면서 싫은 소리 한 번 하지 않으신다”고 강 수녀는 말했다.

“이 자리에 수도원이 30년이나 있었는데도 동네 사람들은 수도원이 있다는 걸 잘 몰랐어요. 길을 지날 때도 몇몇 신자들과 인사를 나누는 정도였죠. 그런데 이제는 수녀님들이 길에 나서면 아이들이 달려와서 인사하고 안기거든요. 수녀님들은 그게 정말 기쁘셨대요. 아이들이 자신을 보고 달려오니 얼마나 행복하셨겠어요.”

수녀원과 동네 청소년들에 대한 지역 주민의 인식도 달라졌다. 종교와 상관없이 수녀원을 통해 아이들에게 도움을 주고 싶다는 주민들의 연락을 받으면서 강 수녀는 “감동적이었다”고 표현했다. 동네 안경점에서는 형편이 어려운 아이들에게 무료로 안경을 맞춰주겠다고 알려왔고, 미용실을 운영하는 이는 ‘언제든지 아이들 머리를 잘라줄 수 있다’고 연락을 해왔다. 벽지 가게 사장님도 도배를 해주겠다고 나섰다. 강 수녀는 “작고 사소하지만 동네에서 어른과 아이들이 (청청청을 매개로) 연결되고 있다는 것이 기쁘다”고 말했다.

▲ 청청청으로 들어가는 입구에 그린 벽화는 마을 주민과 아이들의 합작품이다. (사진 제공 / 청청청)

청청청에서 ‘콩쌤’이라 불리는 김홍근 씨는 “아이들이 편히 쉬어간다는 생각으로 청청청을 찾아주길 바란다”고 말했다. 그는 올해 1월부터 강 로사 수녀와 함께 청청청의 실무 책임자로 일하고 있다.

“솔직히 아이들을 보면 대책이 안 서죠. 말도 안 듣고 기물을 부술 듯이 뛰어다니고요. 하하. 그런데 밖에 나가면 더 심하다는 이야기를 들었어요. 특별한 프로그램으로 심성교육을 하지 않더라도 이 공간 자체가 아이들에게 그런 역할을 해주고 있는 거죠. 아이들이 밖에서 몰려다니며 게임방에 가거나 담배를 피우기보다 여기서 편하게 쉬어가면 좋겠어요.”

강 수녀는 김 씨의 말에 공감하면서 “아이들에게 필요한 것은 교육자가 아니라 동반자”라고 강조했다. 파견된 본당에서, 지역아동센터에서, 청청청에서 어린이 · 청소년들을 만나며 그가 얻은 깨달음이다.

“돈보스코 성인이 하신 말씀 중 ‘어른들이 아이들을 사랑하는 것보다 아이들이 사랑 받고 있다고 느끼는 것이 중요하다’는 말을 마음에 새기고 있어요. 아무리 많은 걸 계획하고 실행해도 그건 우리가 사랑하는 거예요. 그보다 아이들 자신이 교회와 어른들, 하느님에게 사랑받는 존재임을 느끼는 것이 훨씬 더 중요함을 아이들을 보면서 배우고 있어요.”

강 수녀와 김홍근 씨는 다른 수도회나 동네마다 있는 성당에서도 지역 아이들을 위해 문을 여는 곳이 더 많아지길 바랐다.

“솔직히 공간 유지비용이 문제지만, 그 대신 장점이 정말 많아요. 용기를 내서 공간을 개방하면 엄청난 효과가 있을 거예요.” (강 로사)
“하늘에서 내리는 비가 사람을 가리지 않잖아요. 교회가 종교와 상관없이 지역 아이들에게 문을 열면 그 혜택은 그대로 신자인 아이들과 비신자 아이들 모두에게 돌아갈 거예요.” (김홍근)

강 수녀는 청청청이 경쟁 위주의 교육체계에서 동네 아이들을 지켜줄 대안학교나 마을학교로 커나가는 꿈을 꾸고 있다. 지금은 청청청을 찾는 아이들을 먹일 간식비용도 부족하고, ‘콩쌤’의 월급날이 다가오면 강 수녀의 마음이 콩닥거릴 정도의 작은 규모지만, 물질적 어려움쯤이야 “하느님의 빽”으로 어떻게든 해결될 거라는 믿음이 있어서다. 무엇보다 동료 수녀들의 말처럼 ‘우리 아이들을 위한 일’이기 때문이다.

▲ (왼쪽부터 시계방향으로) ① 지역아동센터 ‘기린’의 청소년밴드 ② ‘콩쌤’과 연극 대본 연습을 하는 아이들 ③ 아이들에게 기타 연주를 가르쳐주고 있는 카타리나 수녀 (사진 제공 / 청청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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