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업주의 교회에서 영성 구출하기-너는 누구냐⑨


세상이 많이 좋아지긴 한 것인지, 아님 세상과 상관없이 자유로운 입담을 퍼나르는 사람들이 많아진 탓인지, 인터넷 사이트를 검색하다 보면, 재미있는 대목들이 눈에 들어와 시름 많은 세상에서 잠시 웃고 넘어간다. 미디어 다음 아고라에 들어가 보니, 이름도 다복한 ‘행복한 아침’이란 닉네임을 쓰는 이가 이런 글을 올렸다.(직업의식을 버리고 수정 없이 원문을 그대로 옮겨본다.)

“도대체 다들 왜 우리 명박이를 못살게 구는게지?
비싼 밥들쳐먹고 그리도 할일들이 없나보지.
주가조작해서 이익좀 봤기로서니 그게 그리도 큰 잘못인가?
물론 주가를 조작해서 수많은 국민들의 재산을 빼앗고 절망에 빠지게한것이 사실이라면 양심의 가책은 느껴야 하겠지.
그렇다고 그깟일로 한국가의 운명을 살릴 위대한 영웅의 길을 막아서야 말이되것냐고 엉?
부시는 아프칸과 이라크에서 수십만명의 목숨을 빼앗고 수백만명을 절망에 빠뜨리고도 저렇게 존경받으면서 살고있쟎어.
거기다 비하면 우리 명박이는 천사여~!!
명박이가 사람을 죽였냐고오~?”

본래 이 분이 말하고자 하는 속내가 무엇이었는지 헛갈리지만, 요즘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사람들 입에 오르내리는 말의 한 자락인 것만은 분명하다. 대통령 후보에게 도덕성을 요구하지 말라는 말도 많고, 신(神)에게나 합당한 잣대를 들이대지 말라는 팬클럽의 이야기도 무성하다. 이들에겐 이명박 씨만이 한국경제를 살릴 불도저 같은 저력과 능력을 소유한 사람이라는 것이고, 그렇게 경제만 다시 살려준다면 도덕성은 문제되지 않는다는 입장이다. 물론 그 ‘경제’라는 게 누구를 위한 경제인지 잘 알 수 없는 대목이 많은 게 사실이지만 말이다.

요즘은 정말 경제가 세간의 가장 큰 관심사인 모양이다. 철모르고 살았던 나도 아이가 크니까 이제 돈을 좀 벌어야 하는데, 하고 생각하고 있으니 만인에게 경제가 화제가 될 법하다. 그런 민심을 잘 읽어서인지, 이명박 씨의 공식홈페이지에 들어가 보면, 그 첫 화면에 이런 구호가 나타난다. “합시다 정권교체” “국민 성공시대” “해냅시다 경제성공” “실천하는 경제대통령.” 그리고 그 옆에 이명박 씨 사진과 더불어 이렇게 쓰여 있다. “국민 여러분, 성공하세요.” 경쟁사회에서 국민 모두가 성공하면, 그 와중에도 실패하는 사람은 어떤 사람들인가? 국가란 성공할만한 사람이 성공하도록 돕는 기관인가? 그도 나쁘지 않겠다. 그러나 실패한 인생들에게도 살 자리를 마련해 주는 게 국가의 책무 아닌가? 그런데 어디에도 그늘진 사람들에 대한 연민어린 시선을 느낄 수 없는 게 이명박 캠프에 대한 솔직한 느낌이다. 실패한 사람만 약 오르는 형국이다. 그리고 이씨의 살아온 내력대로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치부(致富)하는 태도조차도 공적으로 정당성을 얻는 이상한 사회적 기풍을 만들 수 있다. 기업인으로서는 그렇다 치고, 대통령도 그런 사람인데, 하는 암묵적 동조가 우리 사회를 좀먹는다면, 이명박 씨는 경제회생의 공적(功績)을 쌓을 수 있을지 모르지만 결국엔 공적(公賊)으로 공적(公敵)이 될 수도 있다.

사회적 성공이라는 주제는 한국사회 일반의 의식을 좀먹고 있을 뿐 아니라 교회 안에도 만연하다. 일단 사회적으로 성공한 사람은 교회 안에서 중요한 위치를 장악함으로써 결국 교회 안에서도 은혜가 가장 많이 받은 성공한 신앙인의 사례로 입에 오르내릴 것이다. 특히 고위성직자들의 측근에는 이렇게 경제적 학문적 정치적으로 성공한 사람들이 신성한 기운과 접촉할 기회를 더 많이 입게 될 것이다. 제도교회에서 알게 모르게 그동안 가르쳐 온 것은 교계제도상 직급이 높을수록, 평신도보다 사제가, 평사제보다 주교가, 다른 주교보다 교황이 천상에 계신 하느님께 더 가까이 있거나, 안수를 하더라도 더 많은 은혜를 쏟아낼 수 있으리라고 기대한다. 천국으로 가는 계단마다 주인이 따로 있는 것처럼 더 높은 계단으로 갈수록 봉건시대의 군주처럼 홍포(紅袍)와 홍모(紅帽)를 걸친 사람들을 더 많이 볼 수 있을 것이라고 기대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교회 안에서 성공한 사람은 성직의 사다리를 밟고 높은 데로 올라가야 할 테고, 세속에 속한 평신도들은 세속에서 얻은 지위와 재산과 명예를 밑천삼아 교회 안에서 그런 그들과 더 가까이 지내야 은혜를 듬뿍 받을 수 있을 것이다.

세상에서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성공한다면 교회 안에서도 더 쉽게 유력한 위치를 차지할 수 있으리라는 망상이 자리잡고 있는 한, 교회와 세상에는 희망이 없다. 그 교회는 사람들이 주님으로 고백하는 그리스도와 아무런 상관이 없는 조직이 되고, 그 세상은 인류가 소망해 오던 천년왕국(유토피아)에서 더 멀어진다. 실상 현재 상황에 대단히 만족하고 있는 사람들은 천년왕국을 절대 꿈꾸지 않는다. 가난하고 비천한 무리들이 항상 율도국과 이여도와 용화세계를 꿈꾸었다. 그래서 하느님 나라조차 민중의 꿈으로 남는다. 오죽하면 예수님께서 “가난한 사람은 행복하다, 너희는 하느님 나라를 차지하리니!”라고 말씀하셨겠는가? 갈망하지 않는 자에게는 주님조차 도와줄 방도를 모르신다. 세상에서 이미 성공하였다고 자부하는 자들은, 이 지상에 천년왕국을 붙잡아 두기 위해 안간힘을 쓰기 마련이다. 보이지 않는 세계에 기대를 거는 것은 불확실한 투자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사람들에게 예비된 창구 중 하나가 ‘돈으로만’ 해결할 수 있는 거대한 성전의 꿈이다. 당장에 눈에 보이는 건축물을 통해서, 이 성전을 지어 바침으로써 하느님의 환심을 사려고 미리 애쓰는 것이다.

얼마 전에 우연히 인터넷 검색을 하다가 천진암 사이트에 들어가 보았더니, 100년 동안 짓겠다는 그 성전에 제대석을 먼저 가져다 놓았는데, 그 길이가 자그마치 10.5미터라고 했다. 천진암 대성당을 짓는데 드는 비용은 500억 원인데, 사이트에서는 “비록 수학적인 의미의 100년 계획은 아니지만, 소요예산 500억을 100년으로 나누면 매년 5억씩 지불하며 되고, 또 300만이 넘는 전국 신도들이 매월 1,000원씩만 봉헌하면 2,3년 정도 걸리게 되며, 따라서 우리도 전세계의 10대 성당 중 하나를 건립, 봉헌할 수 있게 된다.”고 친절하게 안내하고 있다. 그 성당을 지으면 무엇이 달라진다는 말인가? 이명박 씨의 대운하 건설계획처럼 거대한 건축물을 추진한 사람들치고 뒤끝이 아름다웠던 역사는 없다. 갈릴래아의 예수님이 기념사업에 목매는 존재인가? 그분이 우리에게 당부하신 말씀은 아주 단순하다.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처럼 서로 사랑하라”는 것이다. 대규모 성전 계획은 처음부터 이교도의 풍습이지 소박한 나자렛 사람 예수님의 비전과는 거리가 멀다는 것을 왜 모르는가? “국민성공시대”를 외치는 이명박씨의 뱃심에 가난한 이들에 대한 연민이 엿보이지 않듯이, 100년 성당 건축계획 안에도 가난한 이들은 그저 한달에 한번씩 1000원이라도 돈을 갖다 줄지도 모르는 투자자나 고객으로 비출 지도 모른다. 하느님 백성은 실종되고, 오로지 주판알과 뭔가 눈에 보이는 대단한 것을 성공시키려는 자의 야심만 엿보일 뿐이다.

<가톨릭뉴스 지금여기 http://www.catholicnews.co.kr>

저작권자 © 가톨릭뉴스 지금여기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