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의진의 시편 읽기 - 17장]

이 몸의 죄없음을 밝혀주소서. 야훼여, 들으소서. 이토록 울부짖는 소리 모르는 체 마옵소서.
이 애원하는 소리에 귀를 기울이소서. 이 입술은 거짓을 모르옵니다.
“너는 죄없다.” 판결하소서. 당신의 눈은 결백한 사람을 알아보십니다.
내 마음을 샅샅이 뒤져보시고 밤새도록 심문하고 불에 달구어 걸러보셔도
무엇 하나 나쁜 것이 내 입에서 나왔사옵니까?
남들이야 무얼 하든지 이 몸은 당신의 말씀을 따라
그 험한 길을 꾸준히 걸었사옵니다. 가르쳐주신 길을 벗어난 적이 없사옵니다.
나는 당신을 부릅니다. 하느님, 대답해 주시리라 믿사옵니다.
귀를 기울이시어 나의 말을 들어주소서.
한결같은 그 사랑을 베풀어주소서. 당신께로 피하오니
오른손으로 잡으시어 나를 치는 자들의 손에서 건져주소서.
당신의 눈동자처럼, 이 몸 고이 간수해 주시고 당신의 날개 그늘 아래 숨겨주소서.
이 몸을 짓밟는 악인들에게서 지켜주소서.
원수들은 미친 듯 달려들어 나를 에워싸고 있사옵니다.
그들의 심장은 기름기로 굳어졌고 그들의 입은 오만불손합니다.
달려들어 이 몸을 에워싸고는 땅에다 메어치려 노려보고 있습니다.
먹이에 굶주린 사자와도 같고 숨어서 노려보는 새끼 사자와도 같습니다.
야훼여! 일어나소서, 악인들 맞받아 때려 누이시고 칼로써 끝장내어 이 목숨 구하소서.
야훼여! 손을 펴소서. 흥청거리며 사는 자들의 손에서 이 몸을 구하소서.
저들이 당신의 곳간에서 배를 채우고 그 자식들도 배 터지게 먹고 남아
또 그 어린것들에게 물려주게 하시렵니까?
나는 떳떳하게 당신 얼굴을 뵈오리이다.
이 밤이 새어 당신을 뵙는 일, 이 몸은 그것만으로 만족합니다.
(시편 17장)

눈을 떴다고 말할 때, 그 떴다가 떳떳함에서 비롯되었기를……. 뒤가 켕기는 사람의 눈은 어디가 달라도 다를 것이다. 하느님인가 돈인가의 갈래길에서 우리는 자유로운가. 우리는 하느님께 떳떳한 눈을 뜨고 기도할 수 있는가.

“그리스도는 말한다. “너희가 가진 돈은 나를 위해 가난한 사람들에게 줄 돈이다.”
금융업자는 말한다. “너희는 하느님과 마몬, 두 주인을 섬기지 못한다.”
“당신은, 그리고 우리의 모든 교육은 하느님과 마몬, 두 주인을 섬기는 방법을 찾으려 애쓰고 있다.” 로버트 루이스 스티븐슨의 말이다.” (피터 모린, <푸른 혁명>)

ⓒ임의진
주님을 따르기 위해 자청한 험한 길, 마몬의 그늘에서 벗어나 소유를 나누며 작은 그리스도를 섬기는 길. 그 길에서 우리는 서로 반가이 만나야 한다.

엉거주춤 엎드려 있던 사람이 일어나 단추 구멍들을 메우고 바깥나들이를 준비하고 있다. 차비하는 저 차분차분한 모습 속에서 길거리의 신선한 공기가 느껴진다. 피서하듯, 피정하듯, 시원한 그늘 밑으로 달려가는 걸음들이여. 당신의 그늘은 안전하고 평화롭다.

나에게 집게가 있다면, 그 집게로 주님을 꽈악 붙들리라. 이 광막한 우주에 외롭고 무섭던 나는 주님을 만나 비로소 안도의 한숨을 쉰다.

“우리는 신실하라고 부르심을 받았지 성공하라고 부르심을 받은 것이 아닙니다.” 마더 테레사의 전언이다. 주님에게 보호받은 사람은 신실한 사람이다. 우리 교회 안에 가득 찬 성공신화, 성장주의, 배금사상, 승리주의는 한마디로 적그리스도다. 사단의 연막작전이렷다.

우리는 완전함을 뜻하는 ‘살렘’이 평화와 우정을 뜻하는 ‘샬롬’의 어근임을 잘 알고 있다. 인간의 완전함은 외형적인 무엇에서 찾을 게 아니라 신실한 마음가짐, 평화를 추구하는 올곧은 신앙심에서 찾으라고 예언자들은 말한다.

죄란 과연 무엇인가. 히브리어에서 죄라는 명사 ‘하타’는 과녁을 빗나갔다는 뜻이다. 살렘, 샬롬의 길을 가지 않으려는 모든 책동이야말로 명백한 죄다. 이기적인 독점과 부당한 폭력, 불화와 분쟁, 분단과 군사 책동이 바로 성서에서 말한 죄다. 이 어긋나고 비뚤어진 세상에서 그대는 평화의 길, ‘다른 길’을 택해야 한다. 그 다른 길을 걷는 사람들을 가리켜 '그리스도인'이라 부르는 것이다.

원폭이 터진 히로시마엔 이런 풍경이 펼쳐졌다.

“아사노 이즈미 저택의 연못에는 사체 사이로 잉어가 헤엄치고 있었습니다. 날개가 불탄 제비는 날 수가 없어서 종종거리며 땅 위를 걷고 있었습니다. 이재민에게 식량 배급이 있었습니다. 행렬 중에 할머니의 손주도 있었지요. 손자 앞에 벌거벗은 아가씨는 건빵 5인분을 받자마자 퍽 쓰러져서는 움직이질 않았습니다. 그 무렵 사람의 피를 빨아먹는 파리가 생겼습니다. 75년 동안은 풀도 나무도 나지 않는다, 그래서 사람도 살 수 없다, 그런 소문이 퍼졌지요. 간신히 목숨을 건졌다고 기뻐하던 사람들의 몸 여기저기에서 반점이 생긴다든지 머리카락이 몽땅 빠진다든지 하면서 서서히 죽어갔습니다.” (오에 겐자부로 평화 공감 르포, <히로시마 노트>에서)

전쟁이란 얼마나 무섭고 떨리는 것인가. 원자폭탄이란 또 얼마나 가공할 만한 파괴인가. 우리 몸을 짓밟으려는 악인들은, 민간인에게 총을 겨누고 공수부대를 투입하며 비밀경찰로 정보를 수집하며 사찰하기를 좋아한다. 거짓을 가리려고 유언비어를 유포하는 쪽은 오히려 권력자 쪽이렷다. 전쟁을 부추기며 거짓부렁으로 힘의 평화를 이야기하는 자들은 자기 살길을 마련해 놓은 뒤 우리들 모두를 죽음의 전쟁터로 내몰고 있다. 날개를 잃은 제비가 땅바닥에 몸을 질질 끄는 그 불구덩이에서 살아남을 사람은 아무도 없다.

“남들이야 무얼 하든지 이 몸은 당신의 말씀을 따라 그 험한 길을 꾸준히 걸었사옵니다.”

오직 평화의 길, 정의와 생명의 길……. 언제나 당신 앞에 설 때 떳떳한 길, 앞으로도 내내 가리이다, 이 길.
 

 
 

임의진
시인. 남녘교회 담임 목사를 역임했으며, 현재는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NCCK) 위원이다. 펴낸 책으로 <참꽃 피는 마을>, <예수 동화>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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