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수진 기자

“철폐하라! 철폐하라!”

서울역 광장에서 들려오는 익숙한 구호소리. 전국에서 앓는 소리가 끊이지 않는 요즘이다. 무대에 오른 사람들은 구호에 맞춰 프라이팬과 냄비를 두드렸다. 이들이 원하는 것은 최근 개정된 유통산업발전법의 폐지다.

유통법 개정안 통과는 대형마트 영업시간을 오전 10시부터 자정까지로 제한하고, 월 2회 휴일 휴무, 사전 입점 예고 등을 골자로 하는 박근혜 대통령이 내세운 ‘경제 민주화 공약’의 대표 선수였다. 그런데 민중가요 ‘바위처럼’에 맞춰 구호를 외치는 이들이 왜 이 법을 반대하고 나선 걸까. 의문은 무대에 걸린 집회 제목을 보고 금세 풀렸다.

“농어민, 중소기업, 영세임대상인 유통악법 철폐 총 투쟁”. 대형마트 납품 업체와 생산자, 대형유통업체 관계자들이 대동단결해 만든 연대단체에서 조직한 집회였다. “‘을’을 죽이는 유통악법”이라고 적힌 피켓을 보며 헷갈리기 시작했다. 진짜 ‘을’은 누구일까. 망원시장 야채 가게 사장님인가, 홈플러스에 야채를 납품하는 농민인가. 마트 계산대 직원인가, 퇴직금 털어 마트에 입점한 튀김집 사장님인가. 꼬리에 꼬리를 무는 을과 을의 싸움이 시작된 가운데, 문제의 원인을 제공한 슈퍼 갑은 이러나저러나 돈만 잘 번다.

(5월 29일, 서울역 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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