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가톨릭노동장년회 남명수 · 권기화 씨 부부

가톨릭노동장년회 인천교구연합회 남명수 회장. 인터뷰를 청하니, 가노장 활동을 함께 하고 있는 아내와 인터뷰를 같이 하고 싶다는 연락이 왔다. 물론 감사한 일. 택배 기사로 일하고 있어 부득이 일이 끝날 시간, 그의 집 근처에서 만나기로 했다. 오후 7시 반에 업무를 마치고 아내와 약속 장소로 나온 남명수 회장의 눈이 피로 때문인지 발갛게 충혈돼 있었다.

정해진 지역만 도는데도 얼마 전까지는 밥 먹을 틈조차 없었다는 그는 하루 꼬박 12시간 일한다. 오전 7시 30분에 일을 시작해 하루 평균 70~80개를 배달하고 나면 오후 4시. 이때부터 남 회장은 아내와 함께 오후 7시 반까지 하역작업을 한다. 택배 기사들의 파업이 이어지는 때라 별 탈 없느냐고 물었더니, 그나마 업체가 달라 조금 낫지만 차이가 나 봐야 건당 몇 십 원이라 형편은 별반 다르지 않다고 털어놓는다.

남명수 회장과 그의 아내 권기화 씨. 21년째를 맞는 그들의 결혼생활도 가톨릭노동장년회(가노장)와 함께 이어왔다. 가톨릭노동청년회(가노청, JOC)와 달리, 가노장은 부부가 함께 활동하는 것을 원칙으로 한다. 남명수 회장은 20살부터 가노청 활동을 했고, 결혼 후에는 자연스레 가노장 활동으로 이어졌다. 남 회장은 “부부가 같이 활동해서 좋은 것도 있지만, 서로 이해해주지 않는다면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 가톨릭노동장년회 인천교구연합회 남명수 회장(오른쪽)과 부인 권기화 씨. 남명수 회장의 가노장 사랑은 그가 들려준 하나의 에피소드로도 알 수 있었다. 누군가가 ‘가노장’을 ‘간호장’으로 잘못 표기한 것을 본 후로 그는 절대 줄여말하지 않고 ‘가톨릭노동장년회’라고 꼬박꼬박 말한다. ⓒ정현진 기자

선서, 노동 사도직으로의 투신, 그리고 변화

남편의 말을 듣고 있던 권기화 씨도 옆에서 말을 거든다. “우리 부부도 많은 위기를 겪었지만, 가노장 활동이 있어서 잘 풀어나갈 수 있었다”면서 “내성적이고 소극적인 성격이었지만, 그동안 정말 많이 변해서 지금은 내 이야기를 당당하게 할 수 있게 됐다”고 고백한다. 그러자 옆에 있던 남명수 씨가 “그 정도는 아닌 것 같은데”라며 아내를 놀린다.

인천 가노장에는 현재 6개 팀이 활동하고 있다. 그 중 두 팀은 부천 지역에서 모임을 여는데, 한 팀은 30년을 함께해 왔다. 서로 무슨 일을 하든 이해하고 격려해줄 수 있는, 둘도 없는 형제자매요, 인생의 동반자들이라고 했다.

“그동안 가톨릭노동청년회와 장년회 활동을 하면서 느꼈던 것은 우리가 분명히 노동자로 살고 있는데, 어떤 노동을 하는지 밝히고 싶어 하지 않는다는 안타까움입니다. 초창기에는 육체노동을 하는 친구들이 대부분이었는데, 그 열악한 환경 속에서 스스로 자부심을 갖기도 어려웠겠죠. 그런데 그 친구들을 찾아다니고 함께 모임을 한 지 2년여가 지나니, 스스로 ‘나는 ○○을 하는 노동자입니다’라고 당당하게 말하고 있었어요.”

남명수 회장은 가노장 활동에 있어 가장 중요한 것은 무엇보다 ‘변화’라고 했다. 자아를 찾아가는 변화, 자신이 노동자임을 자각하는 변화다. 가노장의 모토는 ‘스스로부터 변화’인데 그 변화가 참으로 느리다면서 내심 안타까움을 드러냈다.

가노장을 통해 변한 것은 부인 권기화 씨만은 아니다. 남명수 회장은 어릴 적 아버지를 일찍 여읜 탓에, 아들에게 어떤 아버지로 다가가야 할지 몰랐다고 했다. 그러다 몇 년 전부터 그저 아들을 안아주고 이야기를 듣기 시작했다. 처음엔 어색해하던 아들도 점점 그 진심을 받아들여, 이제 두 부자는 만나면 자연스레 얼싸안고 마음을 나눈다.

하지만 부부가 함께 고민하는 것이 있다. 바로 노동자의 자리가 여전히 열악하다는 것, 노동의 가치가 제 위치를 찾지 못한다는 것이다.

권기화 씨는 “미싱사로 일을 시작해, 남편의 의자 공장 일을 돕고, 지금은 집진기 필터 만드는 일을 하면서 25년을 지냈다”면서 “처음과 달리 지금은 내 노동 안에서 기쁨과 보람을 찾고 있다. 그러나 일에 비해 수입이 많아지는 것도 아니고, 내 노동이 제대로 평가받지 못한다는 것은 여전히 힘들다”고 토로했다.

가노장, 가노청, 어린이 사도직 … 양성과 실천의 흐름 필요
“본당에서 다시 뿌리를 찾아야 합니다”

“노동자 한 사람이 지구상에 있는 황금 모두를 합친 것보다 더 큰 가치가 있다.” (요셉 까르댕 추기경)

가톨릭노동장년회의 뿌리인 가톨릭노동청년회를 창설한 요셉 까르댕 추기경은 노동자를 온 황금보다 귀한 존재라고 일컬었다. 하지만 지금 우리 사회에서 노동자는 모두를 합쳐도 황금 한 조각을 이길 수 없는 존재가 되어 간다. 그 속에서 더욱 심각한 것은 스스로도 ‘노동자’라는 자신의 존재를 부정하고 있다는 것이다.

‘노동’의 가치가 땅에 떨어진 지금, 남명수 회장의 고민도 여기에 있다. 노동의 부활을 위해 가노청과 가노장의 역할이 시급하다고 보는 그는, 이들의 활동을 어떻게 부활시킬 것인가가 가장 큰 과제라고 했다.

“가노청, 가노장이 해왔던 노동운동은 사회 구조뿐만 아니라 노동자 각각의 삶을 고민하는 것이었습니다. 하지만 1980년대 노동환경과 노동운동이 급격히 변하고 거대해지면서, 가톨릭노동운동이 마치 뒤떨어진 운동 방식을 지닌 것처럼 보이게 됐어요. 아주 근본적인 것을 강조했는데 말이죠. 노동자들의 삶, 자존, 자부심, 변화……. 이런 것들이 평가 절하되면서, 우리 내부에서도 스스로 비전을 찾지 못한 것이죠. 20주년을 맞으면서, 이런 정세 속에서 어떻게 자리를 찾을 것인가를 가장 많이 고민하고 있어요.”

가노장의 제자리 찾기를 위해 남명수 회장은 ‘본당 활동’을 강조했다. 추기경이 만들고, 교회의 인준을 받은 국제적 사도직 단체인데도 불구하고, 교회 안에서 가노장은 점차 그 자리를 잃었다. 본당이 아닌, 지역 단위로 활동을 이어가고 있는 것이다. 남 회장은 이것이 사실 한국만의 문제가 아니라 일본 등 아시아 전체적인 현상이라고 했다.

남명수 회장은 “교회 안에 있는 거의 대부분의 사람이 노동자 아닌가” 하고 물으며 “그들 안에서부터 ‘노동’에 대한, ‘노동자’로서의 자각을 일깨워야 한다”고 역설했다.

1925년 가톨릭노동청년회가 시작되고 그들이 나이 들어 장년회를, 또 그들이 낳은 아이들이 ‘어린이 사도직’으로 이어졌다. 남명수 회장은 지금 그 맥락을 다시 이어야 한다고 말했다. ‘관찰-판단-실천’이라는 방법론을 익히고 노동에 대한 건강한 세계관을 형성하기 위해서, 무엇보다 타인과의 관계를 맺고 이어가기 위해서는 어느 날 갑자기 시작하는 것도 좋지만 체계적인 양성이 필수적이라는 말이다. 하지만 교회 안에서부터 뿌리를 찾고, 그 흐름을 이어가기 위해 무엇을 어떻게 시작해야 할지 모르겠다는 솔직한 심경도 드러냈다.

“신부님들도 가노장의 존재를 잘 모르시는 경우도 많아요. 물론 우리 스스로 활동을 꾸려가야 하는 것은 맞지만, 어쩔 수 없이 교회에 서운한 것도 사실이죠. 교회 차원에서 가노장, 가노청 활동에 대한 독려가 필요합니다.”

▲ 지난 12일 가톨릭노동장년회 인천교구연합회 20주년 기념 미사. 남명수 · 권기화 부부가 가노장 선언을 하고 있다. ⓒ한상봉 기자

가노청, 가노장은 노동자 사도직
노동의 자리에서 노동자와 함께

남명수 회장은 가노장 활동은 친목이나 봉사가 아니라 ‘노동 실천 단체 사도직’임을 강조했다. 가노청의 경우 노동 현장에서 사도로서 살겠다는 확신이 서면 선서를 통해 투신을 선언하지만, 가노장의 경우 그런 과정 없이 시작하는 경우도 있다고 했다. 남 회장은 이에 대해 “수련기간 없이 수도생활을 시작하는 것과 같다”며 “그렇게 되면 넘어야 할 벽도 높아지고, 활동에 대한 이해의 폭도 달라진다”고 말했다.

“내가 생각하는 사도란 예언적으로 모든 것을 버리고 가는 것입니다. 모든 것을 버리고 예수를 따르는 삶이죠. 가정을 버리라는 것이 아니라 최소한 자신이 희생할 수 있는 즐거움을 포기할 수 있어야 한다고 봅니다.”

그는 “가노장은 삶의 현장에서 노동자들의 아픔과 문제를 공감하고 함께 개선해나가는 사도직”이라면서 “그것을 위해서는 자신이 누구이고, 무엇을 하고 있는가에 대한 자각이 필요하다. 이념을 떠나 사도로서의 역할을 위해 노동자로서 계급의식이 있어야 한다”고 설명했다. 현실적으로 어렵더라도 지역에 노동 문제가 생기면 할 수 있는 만큼 연대활동을 하자고 독려하는 남명수 회장은 다른 회원들에게 “너무 강하다”는 평가를 받기도 하지만, “결국 그것이 우리의 가야할 길”이라고 답한다.

무엇보다 소중한 가톨릭노동장년회
처음의 선서가 내 마음속에 살아 있다

아침 7시 30분부터 오후 7시 30분까지, 때로는 2미터가 넘는 크기의 택배 물품을 들고 계단을 올라야 하지만, 가노장을 통해 늘 새로운 에너지를 얻는다고 했다. 권기화 씨는 남편이 지치고 힘들어하다가도 가노장 일을 할 때는 두 눈이 반짝거린다고 말했다. 아내로서도 두 부부의 버팀목이 되는 가노장이 한없이 고맙다.

“나는 나의 가정, 나의 동네,
나의 일터와 내가 속해 있는
사회 변화를 위하여,
그리스도의 정신으로
나와 같은 노동 형제, 자매들이
복음의 기쁨을 맛들이고,
복음적 삶을 살도록 함께할 것이며,
평신도 사도로서 주어진 소명을
충실하게 생활화할 것을 선서합니다.”

남명수 회장은 지난 20주년 기념식에서 다시 선서문을 읽자고 제안했다. 그 옛날 가톨릭노동청년회와는 다른, 현재를 사는 가노장 사도직 선언이다. 가노장이 그의 삶에 원천적인 힘을 주었던 것처럼 다른 이들에게도 그러하기를 바라며 여전히 꿈을 꾼다. 그 꿈 중의 하나는 다음 총회 때, 서로 회장을 하겠다고 나서며 가노장의 비전을 앞다퉈 제시하는 것이다. 그 꿈을 말하면서, 남명수 회장은 하느님이 지금껏 주신 은총으로 반드시 그렇게 될 것이라 믿는다고 힘주어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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