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병우의 그림 에세이]

 

밀양에 다녀왔어요.
연일 밀양의 긴박한 소식이 SNS를 통해 전해지면서
더이상 지체할 수 없어 희망버스가 시동을 걸고
금요일 밤을 달려 전국에서 250여 명의 사람들이 밀양 땅에 모였어요.

뜨거운 뙤약볕 아래 굴삭기에 쇠사슬로 몸을 엮은 할머니들이
두려움도 없이 앉아있네요.

통증을 전혀 느끼지 못하는 희귀병이 있다고 해요.
아픔을 느끼지 못하니 벌레가 몸을 갉아먹어도 모른대요.
상처가 깊어져 치명적인 지경에 이를 수도 있으니 정말 끔찍한 병이죠.

얼마 전 한홍구 교수가 후쿠시마에 대한 강연에서
‘고통에 대한 감수성’에 관해 말한 적이 있어요.
고통에 대한 감수성이 상황을 인식하는 첫걸음이랬어요.
지금 사는 것에 지쳐 타인과 자신의 고통에 점점 무감각해지는 것은 아닐까요?
우리가 밀양 땅에 사는 것은 아니지만
언젠가 힘있는 자들이 불시에 우리에게 희생을 강요할 때
겁에 질린 채 체념하고 받아들여야 할까요?
지금 밀양을 외면하지 않는 것이 어쩌면 우리의 고통을 미리 예방하는 것은 아닐까요?
지금 모으는 연대의 에너지가 우리가 알지 못하는 어떤 힘으로
지구촌 곳곳에, 시간을 초월해 공명을 일으키지는 않을까요?
우리에게 고통을 느끼는 통각점(痛覺點)이 아직은 살아 있을까요?
개구리를 뜨거운 물에 넣으면 곧바로 뛰쳐나오지만
찬물에 넣고 서서히 온도를 높이면 그 변화를 모르고 끝내 파국에 이른다고 하네요.

그런데 저 남쪽에서 밀양 할머니들이 아프다고 소리치고 있어요.
우리가 느끼지 못하는 아픔을
할머니들은 온몸으로 느끼는 거죠.
국가가 저지르는 무도한 폭력에
할머니들이 살가죽만 남은 나신으로 저항하고 있어요.
지금 일어나고 있는 일이에요.

밀양이 아파요.
아주 많이요.

밀양성당에 계시면서 송전탑반대대책위에서 주민들을 돕고 계신 김준한 신부님이
얼마 전에 SNS에 올린 글입니다.

“밀양의 현재 상황은 일촉즉발의 상황입니다.
끝이 없는 싸움 속에서 결정적인 해결점이 무엇일까?
암울한 전망을 떠올리며 주저하게 되신다면
이렇게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어르신들은 바로 지금 오늘 하루 잘 막아내는 것에 모든 것을 걸고 계십니다.
먼 미래의 장밋빛 전망에 현혹되지 않고
오늘 하루의 소강상태가 쌓여
더이상 거스를 수 없는 흐름을 만들어내고 싶어 합니다.
참 바보 같고 우직한 방법이지만 지금껏 그래 왔습니다.
그러기에 단 한 사람이라도 그들이 머물러주는
그 순간에 만끽하는 소강상태는 지겨움도 암울함도 아닌
싸움의 승리를 향한 밑거름입니다.”
 

 
 

윤병우
화가. 전공은 국문학이지만 20여 년 동안 그림을 그려 왔다. 4대강 답사를 시작으로 사회문제에 관심을 갖게 됐고, 탈핵, 송전탑, 비정규직, 정신대 할머니 등 사회적 이슈가 있는 현장을 다니며 느낀 것과 살아가면서 떠오르는 여러가지 생각을 글과 그림으로 표현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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