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준서(41. 요아킴)

농촌 들녘은 이제 풍요로운 잔등을 인간에게 내어주고 까칠한 모습을 드러낸 채 깊은 숨은 내쉬며 고요하다. 땅을 다독이며 살아온 인생은 그러나 여전히 쉼이 없다. 해야 할 일이 많고 필요한 것들이 줄을 섰기 때문이다. 그런 땅에 무지랭이 도시인이 터를 잡아보겠다고 발을 들여놓았다.

이준서(41. 요아킴) 씨는 지난 2005년 6월 강화에 이사를 왔다. 슬하에 초등학교 2학년 남자애와 유치원에 다니는 딸을 두고 양도면에 둥지를 틀었다. 서울 출신으로 성남에서 돈 잘 버는 아동용 장신구를 만드는 사업을 하던 그는 농촌과 아무런 연관도 없었다. 특별한 준비나 대단한 철학을 지니지 않았다.

다만 도시생활에 염증을 느꼈다. 과열된 경쟁에 인성을 내팽개친 듯한 도시교육이 싫었고 대신 생명교육에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 오순도순 살아가는 가족의 모습을 되살리고 싶었다. 이제 보면 ‘자연과 공동체를 찾아서’ 쯤으로 거창하게 포장할 수는 있겠다.

“언젠가는 아이들에게 농촌에서의 삶이 도움이 될 거라고 믿는다. 그들만의 진정한 경쟁력이 될 것이다. 아이들이 얻을 아름다운 경험과 기억은 훌륭한 자산이다. 분명 평생을 살아가는 밑거름이 될 것이다. 부모로서 아이들에게 무엇을 남기고 갈 것인가?”

그는 남다른 친구를 하나 갖고 있다. 국가보안법 위반으로 곤혹을 치렀던 사진작가 이시우가 바로 고교동창이다. 이미 강화에 살고 있으면서 강화행을 그가 권했다. 강화는 매력적이었다. 거대한 한반도 역사의 한 무대였다. 바다가 가깝고 처가가 있는 안산도 비교적 쉬 오갈 수 있었다. 단순 귀농이었으면 땅값 비싼 강화를 택하지 않았으리.

작정하고 도시생활을 과감히 청산했다. 사업체를 정리하고 아내도 잘 나가는 직장을 사직했다. 생계를 위해 후에 다시 나가게 됐지만. 일단 가면 먹고 살 방도가 있을 것이라 기대했다. 살아가며 조금씩 전망을 볼 수도 있을 것이다.

“시우가 그랬다. ‘많이 버리는 연습을 해라’라고. 그래서 마음을 그 전과는 다르게 먹어야 한다고 스스로에게 다짐했다. 생활방식 모두를 진정한 ‘생산’을 위해 바꾸겠다고…”

가족의 일상이 바뀌기 시작했다. “서로에 대한 관심이 많아졌다. 시시콜콜 이야기를 하고 서로 들었다. 도시에서는 서로의 얼굴을 찬찬히 들여다보기도 어려웠다. TV는 퇴출됐다. 책 읽는 시간이 부쩍 늘었다. 둘째 아이는 강화에 들어온 후 1천여권 이상 책을 읽었다. 들고 다니며 볼 정도였다. 잔병치레가 없으니 병원갈 일도 별로 없었다. 사방천지가 놀이터였지만 안전했다.”

아이들이 좋아하고 잘 적응하는 것을 보며 가슴을 쓸어내렸다. 돌이켜보면 늘 바쁘고 위험하고 허약한 도시생활이었다. 서울로 출근하는 아내를 대신해서 아이들 건사하고 집안일을 돌보고 있다. 새벽에 눈을 떠 잠들 때까지 몸을 움직이는 게 원칙이다. 자신의 시간을 뺄 수 없는 게 고통스럽기는 하다.

현재 이 씨는 강화환경농업영농조합에서 친환경 쌀을 학교급식으로 공급하고 있다. 강화환경농업농민회 활동도 한다. 마니산성당에서 영세를 받았다. 환경분과장을 맡아보면서 성당 옆 텃밭 ‘생태농장’을 관리하고 있다. 인천우리농 회원들이 작게나마 농사를 짓는데 도농교류차원에서 이 씨가 수고를 아끼지 않고 있다. 별스러울 것 없지만 의미만큼은 깊다.

성당 활동을 하며 우리농과 교류하다보니 농촌과 생태에 대한 교회의 관심과 정책이 매우 아쉽게 다가왔다. 교회가 무엇을, 어떻게 소비할지를 새롭게 결정해야 할 것이다. 각 본당, 단체, 개인들이 선택해야 할 문제이기도 하다.

그는 강화를 생태의 모범지역으로 가꾸는데 기여하고 싶다. 유명무실한 강화생협을 다시 활성화하고 농민 간 결속을 다지는데 힘을 쏟으려고 한다. 생명의 땅에 발을 들여놓은 이상 직접 농사 짓을 것도 생각하고 있다. 공신력을 따지는 소비자를 위해, 친환경 농업을 위해 유기농기능사 자격증을 지난해 취득했다.

여력이 생기면 쉼터겸 매장으로 쓰일 유기농까페를 운영할 생각이다. 또 있다. 지역농산물을 이용하거나 특성을 살린 상품개발이다. 천연염색옷이나 아이스크림류 등을 염두에 두고 있다. 이 대목에서는 사업을 알차게 꾸리던 그의 장기가 유감없이 발휘될 것으로 기대된다.

철없는 도시인으로 비쳤을 그. 이제 2년을 넘기며 까맣게 그을리고 거칠어진 모습에서 강화 사람의 냄새가 난다. ‘조금 버티다가 사라지겠지’라고 비켜서있던 주변 사람들도 놀랬을 터. 조금씩 묻어나는 바람냄새, 흙냄새가 어설프지만은 않다.

/지영일 2007.11.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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