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곧 세상의 주인이 바뀌리라[파블로의 필름창고] <혹성탈출: 진화의 시작>, 루퍼트 와이어트 감독, 2011년작

언제까지 인간이 이 지구의 주인으로 살아갈 수 있을까?

   
▲ ‘혹성탈출: 진화의 시작’, 루퍼트 와이어트 감독, 2011년작
늦은 밤 케이블 텔레비전 영화 채널을 돌리고 있으면 바이러스가 퍼져가면서 서서히 인류가 멸망해가는 내용을 다룬 영화가 꽤 많다. 가령 사람들의 신체를 변형해 무기화하려는 실험을 하다가 바이러스가 퍼지고, 감염된 사람들이 좀비로 변한다. 남아 있던 생존자들도 점차 좀비가 되어가고 인류는 멸망 직전에 이른다.

인간은 과학기술의 발전에 힘입어 자신들의 목적에 맞게 자연을 통제하려 했지만, 그건 오만에 지나지 않는다. 마치 모든 것을 다 안다고 생각하지만 지구상에 존재하는 생명체의 불과 10퍼센트 가량만 명명했을 뿐이며, 아직도 밝혀내지 못한 영역이 넘쳐난다. 온전한 통제가 불가능한 상태에서 인간의 탐욕이 이끌어낸 여러 산물들은 부메랑이 되어 세계를 파멸로 이끌곤 한다. 우리 문명은 자연재해나 소행성의 충돌보다 그로부터 더 강력한 위협을 받는 상황에 몰렸다. 여러 영화들이 그런 위기 상황들을 풍성한 상상력과 첨단기법으로 경고해주곤 한다.

<혹성탈출> 시리즈도 그런 두려움과 맞닿은 영화다. 인간의 멸종뿐만 아니라 언젠가는 인간이 지구별의 주인 행세를 못할 수도 있겠다는 위기감을 극명하게 드러낸다. 성서적 세계관을 축자적으로 따르자면 지구의 역사는 인류와 함께 시작했으며, 인간이 사라지면 지구도 더 이상 지구로 존재하지 않는다. 지금도 그러한 해석을 철석같이 신봉하는 사람들이 꽤 있는 듯한데 근대의 과학적 성과들은 언제나 인간이 지구의 주인이었다는 생각에 종지부를 찍었다.

우주인들은 유인원이 지배하는 다른 혹성에 도착했다고 생각했고, 겨우 탈출하나 싶었더니만 ‘자유의 여신상’을 목도하면서 멘붕에 빠지는 충격적인 장면으로 <혹성탈출> 시리즈 첫 작품은 끝을 맺는다. 파괴된 ‘자유의 여신상’은 핵전쟁으로 인류문명이 붕괴한 장면을 의미한다. 이 시리즈는 유인원의 지구 정복이라는 서사구조로 이어져왔는데, 가장 최근작 <혹성탈출: 진화의 시작>은 먼 훗날 유인원이 지구를 정복하게 되는 여러 단서들을 보여준다.

   
▲ ‘혹성탈출’ 1편에서 주인공을 멘붕에 빠트리는 바로 그 장면!

과학자 윌은 알츠하이머 병에 걸린 아버지를 치료하기 위해 손상된 뇌 기능을 회복시켜주는 치료제 ALZ-112를 개발한다. 임상실험을 했던 침팬지 ‘빛나는 눈’은 지능이 월등하게 향상된다. 투자자들에게 임상실험의 성과를 보여주기 위한 자리에서 ‘빛나는 눈’은 난동을 부리게 되어 사살 당한다. 이 침팬지는 임상실험 중에 새끼를 낳았고, 새끼를 보호하기 위해 난동을 부렸던 것이다.

윌은 새끼 침팬지를 집에 데려가 키운다. 이름은 ‘시저’로 지어준다. 시저, 카이저나 차르 같이 황제를 뜻하는 말의 기원이 된 역사적 인물의 이름, 참으로 의미심장하다. 시저는 <혹성탈출> 시리즈 내내 진화한 유인원의 선조로 기억된다. 시저는 윌과 윌의 아버지와 함께 한 가족처럼 지낸다. 윌은 시저를 키우면서 시저의 지능이 인간을 능가하고 있다는 점을 알게 된다. 시저는 임상실험 중이었던 ‘빛나는 눈’의 태내에서 ALZ-112의 영향을 받았던 것이다. 또 ALZ-112는 충분한 약효를 발휘해 윌의 아버지의 증세가 현격하게 개선된다.

윌은 시저와 간단한 수화로 대화를 나눈다. 시저는 점점 커가고 집이라는 공간은 뛰어놀기에 너무 답답하다. 그래서 윌은 시저가 마음껏 뛰어놀게 하기 위해 삼나무 숲으로 데려간다. 한번은 삼나무 숲에서 실컷 뛰어놀다가 윌에게 자신이 애완동물이냐고 묻는다. 윌은 넌 내 아들이라고 하는데 이때 시저에게 사실을 이야기해주고, 어떻게 시저가 똑똑하게 되었는가를 이야기해준다. 시저의 표정에서 우울한 기운이 가득해진다. 거의 인간과 다름없이 자라온 시저는 자신의 정체성에 혼란을 겪기 시작한다. 영화 속 내내 비쳐지는 시저의 다양한 표정은 그를 유인원이 아닌 고뇌하고 성장해가는 중요한 캐릭터로 인식하게 해준다.

ALZ-112의 약효가 점점 약해져 윌의 아버지는 예전의 상태로 돌아간다. 숟가락을 거꾸로 들 때 시저가 바로 쥐어준다. 이미 윌의 아버지 증세가 예전으로 돌아가는 걸 포착하는 시저다. 윌의 아버지는 시저에게 이름을 지어주었고, 시저를 아들이나 손자처럼 생각하며 키웠다. 그런 윌의 아버지가 차를 몰다 이웃집 차를 받아 이웃집 남자와 시비가 붙자 윌의 아버지를 본능적으로 보호하려는 과정에서 그 남자를 공격하게 된다. 이때 시저는 겁에 질려 떠는데 결국 유인원 보호시설로 가게 된다.

   
▲ 시저의 감성이나 지능은 인간과 크게 다르지 않다. 윌이나 윌의 아버지는 그가 아끼고 사랑하며 지켜야 할 가족이기도 했다.

유인원의 진화와 각성, 그리고 계급투쟁(?)

그곳에서 시저는 마구 취급되면서 자신이 결국 인간과 다른 존재라는 점을 뼈저리게 자각한다. 처음엔 사나운 유인원 틈에서 겁이 났지만 차차 하나씩 복종시켜감으로써 유인원의 리더가 된다. 시저가 스스로 유인원임을 각성하고 보니 자신과 동류의 존재들이 눈앞에 보인다. 그 동류의 존재들과 더불어 살아야 하고 무언가를 도모해야 하는데, 동류의 존재들은 여러모로 열등하다. 먼저 각성된 시저는 그들을 업그레이드시켜야 했기에 자신을 다른 유인원보다 월등하게 만들었던 ALZ-112를 훔쳐온 것이다. 하지만 시저는 인간과 유인원 사이의 존재다. 이미 인간에게 길들여졌기에, 그것도 비교적 상식적이고 마음 따듯한 사람들 사이에서 자라면서 학습되었기 때문에 무분별한 폭력에는 제동을 건다.

유인원 보호시설을 빠져나오면서 하나의 의미심장한 사건이 발생한다. 시저가 “안 돼!(No)”라고 외치며 말하기 시작했다. 음성언어는 인간 진화의 중대한 산물이다. 처음엔 네 발로 다녔을 인간의 조상이 어느 날 벌떡 일어서게 되고, 그러면서 앞발은 손이 되어 도구를 쓰게 되고, 목이 들리면서 말문이 트였다고 한다. 직립은 분명 육체적으로 꽤나 열등했을 인간의 조상이 지구를 지배하는 강력한 종으로 진화하게 된 계기다. 시저의 발화는 이제 다른 유인원의 발화로 이어질 것을 암시하며 영화 속에서 등장하는 유인원 진화의 한 국면을 상징한다.

   
▲ 유인원의 진화와 혁명을 위해서 이 약물이 필요하다.

   
▲ “시저는 집에 왔다.” 시저는 인간과 유인원 사이에서 그 무엇도 아닌 새로운 종으로 진화해간다.

시저는 ALZ-112를 계발했던 젠시스 연구소를 습격하고, 동물원의 동족들을 풀어주고, 인간과 한판 격돌을 벌인다. 그리고 금문교를 지나 자신이 뛰어놀던 삼나무 숲으로 들어간다. 윌은 시저를 따라와 집으로 가자고 하지만 시저는 “시저는 집에 왔다”고 말한다. 역사적 시저가 되돌아갈 수 없는 루비콘 강을 건넜듯이, 유인원 시저도 돌아올 수 없는 강으로 넘어서는 순간이다.

일군의 유인원 무리가 삼나무 숲으로 들어가면서 사태는 진정 국면처럼 보인다. 언론은 일부 유인원의 소란행위로 보도한다. <혹성탈출> 시리즈를 연계해보면 지구상 존재하는 일부의 유인원 무리가 지구를 장악한다는 게 개연성이 떨어진다. 하지만 영화 막판에 떨어지는 피 한 방울이 향후 이어질 ‘안 봐도 그림’인 상황을 암시한다. 이 영화는 이처럼 <혹성탈출> 시리즈의 맥락에서 어떻게 인류가 몰락하고 지구가 유인원들의 행성으로 변하게 될지 암시한다.

그런데 시저가 각성하는 과정은 영화를 다른 각도에서 보게 해준다. 계급적 각성 같기도 하고, 사회적 소수자의 자기 찾기 과정 같기도 하다. 그러면서도 한편으로 시저를 비롯해 각성되어가는 유인원들은 억압자로 비쳐지기도 한다. “꺅꺅” 소리 지르며, 주는 바나나나 받아먹으며 살아갔을, 그러면서 풀어진 상태에서는 폭력적으로 돌변할 유인원들이 시저의 지도 아래 조직적으로 인간에 저항한다. 유인원들의 저항이 난동이나 폭동이 아닌 해방운동으로 비쳐지면서 점차 유인원들에게 동조하는 마음으로 감정이입이 된다.

프랑스 혁명기의 바스티유 함락을 연상하는 보호시설 탈출 장면, 유인원을 조직하고 지도하는 혁명 지도자로서 시저, 유인원의 해방구가 될 삼나무 숲, 이 모든 요소들은 혁명의 서사구조를 떠올리게 한다. 모르긴 해도 지금 만들어지는 후속편에서도 승리, 갈등, 배반으로 점철돼온 혁명의 과정에 그려질 듯하다. 그건 자칫 식상해질 수 있는 인류멸망 서사를 넘어 영화의 재미를 더해줄 요소이기 때문이다.


김지환
(파블로)
마포에서 나서 한강과 와우산 자락의 기운을 받으며 살아왔다. 역사를 공부했고 그중에서도 라틴아메리카 역사를 한참 재미있게 공부했던 시절이 있었다. 지금도 이 지역 이야기는 가슴을 뜨겁게 한다. 현재 출판사 편집자로 일하고 있다. 여전히, 좋은 책이 세상을 바꾼다고 믿는다.

<가톨릭뉴스 지금여기 http://www.catholic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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