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전 측 공사 강행에 주민 격렬하게 저항
“경찰병력 철수, 공사 중단하고, 전문가협의체 구성하라”
21일 오후 6시 민주당 의원들이 밀양 부북면 평밭마을을 방문한 자리에서 억울함과 절박함을 호소하는 주민들의 이야기와 울음소리가 이어졌다.
“어떻게 이런 일이 있습니까? 우리가 죄인입니까? 살인자입니까? 저는 65년을 살면서, 오늘 여자로서 정말로 치욕스런 상황을 겪었습니다. 우리 재산을 스스로 지키려는 것인데, 얼마나 절박했으면 여자들이 옷을 벗고 시위를 했겠습니까? 이게 무슨 민주국가입니까? 오늘 마을 주민이 목을 밧줄로 7~8번 감아 죽겠다는 것을 보고 나 또한 목숨을 내놓기로 결심했습니다. 민주주의를 부르짖으면서 이런 사태를 만듭니까? 경찰을 풀고, 사람을 개처럼 짓밟는다는 것이 이해가 안 갑니다. 우리가 돈을 달라고 했습니까? 있는 그대로 땅 파면서 살게 해 달라는데 왜 우리를 짓밟습니까? 나는 죽기로 막을 것입니다.”
“우리 상동면 철탑은 과수원, 논 한가운데 세워집니다. 청도면을 피해서 내려온 철탑입니다. 124번에는 200명, 109번에는 100여 명의 경찰이 와 있습니다. 한전은 이미 우리 재산을 다 빼앗았고, 이제 공권력을 투입하는 것은 우리 생명까지 내놓으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저는 이 자리에 우리 모두를 묻고 공사하라고 말했습니다. 이것이 정부에서 하는 일입니다. 이것이 민주국가입니까? 인간의 존엄성은 어디로 갔습니까? 살려주십시오. 박근혜 정부는 억울한 사람 없는 행복시대를 열겠다고 하지 않았습니까. 이것이 행복시대입니까? 우리는 살려달라는 말 밖에 할 말이 없습니다.”
“사람의 인권은 발로 짓밟히고 있고, 한전은 2조 7천억 원이라는 돈이 들어가서 대안을 받아들이지 못하겠다고 합니다. 이 주민들의 목숨이 2조 7천억 원보다 못하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처음부터 잘못된 기본 계획을 검토하고 제대로 사업을 해달라고 요구했습니다. 힘의 논리, 돈의 논리로 이뤄진 잘못된 사업으로 이미 우리 마을 공동체는 깨졌고, 서로 길도 오가지 못하게 할 정도로 원수가 됐습니다. 우리는 억지 주장을 하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가 더 이상 억울하지 않도록 해 주십시오.”
현재 주민들의 입장은 한전이 공사를 강행할 명분이 더 이상 없다는 것, 경찰 병력을 철수하라는 것, 공사를 중단하고 주민들이 제시한 대안을 검토할 ‘전문가협의체’를 구성하라는 것이다. 전력수급 위기는 밀양 주민의 탓이라는 한전 측의 주장은 거짓이며, 신고리 3 · 4호기의 전력수급은 이미 있는 송전탑을 통해 개통할 수 있다는 것이다. 무엇보다 주민들은 전력수급 문제의 본질적 이유와 그에 대한 대안을 제시했음에도 밀양 송전탑 건설 중단 때문에 전력대란이 일어날 것처럼 호도하는 것에 분노하고 있다.
단장면 고례리 84 · 85번 철탑, 바드리 88 · 89번 철탑, 상동면 산외리 109번, 상동면 여수마을 124번, 부북면 위양리와 평밭마을 127 · 132번(132번은 청도군과 경계지로 이미 세워진 133 · 134번에 이어 건설 중이다). 총 8개의 송전탑 건설 현장에서 공사가 진행 중이다. 각각의 현장에서는 주민들 10여 명에서 많으면 70여 명이 돌아가면서 공사 진행을 막고 있다. 이 과정에서 10여 명의 주민들이 다치거나 실신해 병원으로 실려가는 사태가 이어지고 있다.
첫날 시위 도중 심장 이상으로 혼절한 평밭마을 이금자 씨(82)는 현재 부산병원으로 후송돼 치료를 받고 있으며, 상동면 서흥교 씨(81)는 대치 중 함께 넘어진 인부들에게 깔려 허리 부상을 입었다. 상동면 이갑술 씨(74)는 인부들에게 밟혀 다리뼈가 골절됐고, 상동면 박삼순 씨(68)는 몸싸움 중 넘어져 머리 부상을 입었으며, 부북면 이재란 씨(70)는 손목 인대 손상을, 단장면 동화전마을 하복련 씨(82)는 시위 중 혼절해 병원 옮겨졌다. 공사 3일째인 22일에는 바드리 88번 현장에서 포클레인 아래 들어가 있던 주민 두 명이 강제로 끌려나오는 과정에서 머리에 부상을 입고 헬기로 이송되기도 했다.
현재 공사 현장의 ‘질서 유지’를 이유로 투입된 경남지방경찰청 기동대원은 총 500여 명이며, 이틀째부터 전투경찰도 투입된 상황이다.
주민들의 반대에도 한전 측이 공사를 밀어붙이자, 저항도 점차 격렬해지고 있다. 지난 20일 알몸 시위와 “이대로는 못 살겠다. 지금 내가 죽어야 그나마 할머니들이 편할 것”이라며 한 주민이 목을 매려고 하는 상황이 벌어진 후, 주민들은 한층 격해졌다. 주민들은 집에 돌아가지 못하고, 건설현장으로 향하는 각 길목마다 텐트를 치고 밤새 지키고 있으며, 새벽 3~4시부터 현장으로 달려가고 있다. 대부분 고령의 노인들인 탓에 건강이 좋지 않아, 진통제 5알을 한꺼번에 삼키면서 현장을 지키는 형편이다. 그나마 취재진이나 외부인이 있을 때는 공사를 멈추지만, 외부인이 없을 때나 주민들이 철수한 밤 시간을 틈타 장비를 옮기는 등 공사가 진행되고 있다.
현장에는 매일 시민들과 환경단체 활동가, 대학생 단체 회원들이 찾아 주민들을 격려하고 있다. 21일 오후 부북면 평밭마을 127번 현장에는 예수수도회와 천안 한국순교복자수녀회 수도자들이 주민들을 격려하기 위해 방문했다.
서울에서 홀로 부북면 현장을 찾은 김좌실 씨는 “그동안 기사로만 접하다가 오늘 처음 밀양을 찾았다”면서, 현장에 와서 보니 기사보다 훨씬 치열하고 격렬한 것 같다며 안타까워했다. 김 씨는 강정마을을 방문했을 때, 공권력에 대한 생각이 완전히 무너졌다면서 “시민을 보호해야 할 공권력이 오히려 시민을 핍박하는 상황은 어디에 신고하고 항의해야 하는지 모르겠다. 함께하면서도 이런 모순을 어떻게 바로잡아야 할지 고민”이라고 혼란스런 심경을 토로했다.
각 현장을 지키고 돌아온 주민들은 다음날 무조건 인부들보다 먼저 현장에 가야 한다며 움막에서 잠을 잔다. 그러나 밤 늦게까지 잠을 청하지 못하고 그날 있었던 일을 서로 털어놓는다. 분하고 억울한 일들이 기억나 쉽게 잠을 청하기 어려운 탓이다. 손자 같은 이들에게 심한 욕설을 들은 이야기를 내놓던 끝에, 누군가 “나 죽으면 어떻게든 내 관을 청와대 앞마당에 가져다 놓으라”고 당부한다. 주민들이 잠을 청하는 각 현장의 움막은 그나마 6월 초까지 철거하라는 통보를 받았다.
밀양의 노인들은 “우리가 무엇을 더 어떻게 해야 하느냐, 이렇게 힘없는 사람들에게 국가가 이럴 수 있느냐”고 가슴을 치면서도, 매일 새벽같이 산을 오르고, 현장에서 밤을 지새운다. 이제 밀양뿐만 아니라 그 어디에도 송전탑은 세울 수 없을 것이라면서, 그러려면 꼭 이 밀양에서 이겨야 한다고 다짐하면서 매일 목숨을 지고 산을 오른다.
<가톨릭뉴스 지금여기 http://www.catholic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