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래로 흘러가는 노래 - 3]

이누카이 미치히로(犬養光博) 목사는 1961년 일본 동지사대학 재학 중에 북규슈 지역의 폐광촌을 처음 방문했다. 친구들과 봉사활동을 하기 위해 찾아간 그에게 “하늘 아래서 죽고 싶다”, “숨이 막힌다”, “가족이 보고 싶다”고 탄식하는 탄광 노동자들의 소리가 들려왔다. 그리고 돌보는 이도 없이 열악한 환경 속에 방치된 아이들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그는 휴학하고 1년간 탄광 노동자들과 함께 생활하다가 대학을 졸업한 1965년, 아내와 함께 탄광 지역의 마을 회관에서 신혼살림을 시작했다. 오사카 출신의 젊은 부부는 수도도, 전기도 없는 창고 같은 건물에서 살면서, 탄광 지역 아이들을 교육하고 일자리를 잃은 지역 주민들의 생계를 위해 취업을 주선했다.

일본의 산업화 과정에서 밑거름이 된 북규슈 지역 탄광 노동자들과 애환을 함께하던 그에게는 고통받고 있는 민중들의 삶이 예수 그리스도의 모습으로 다가왔다. 최창화 목사와 함께 재일 한국인의 지문날인 폐지운동에 앞장섰고, 가네미 유증(가네미 공장에서 잘못 만든 식용유를 사용한 사람들이 중독되고 사망한 사건) 피해자들의 억울함을 풀어주기 위해 공장 앞에 천막을 치고 농성하기 시작했다. 그렇게 50여 년을 재일 한국인들과 장애인들과 노동자들의 친구로 살아왔다.

▲ 5.18 민주묘지에서 헌화하는 이누카이 미치히로 목사 (사진 제공 / 김희용)

지난 5월 초, 이누카이 미치히로 선생님께서 광주 5.18 민주묘지를 참배하러 오셨다. 20년이 넘도록 내 인생의 방향타가 되어 오신 선생님에게 나는 ‘당신의 스승은 누구신지’ 물었다. 이누카이 선생님은 80년대 말 한국을 방문하였을 때 안병무 박사님(5월 17일 운명하신 박영숙 선생님의 남편)의 민중신학에 대한 강연을 들은 적이 있는데, 그때 그분의 강연을 듣는 내내 하염없이 눈물이 흘러내렸다고 한다. ‘당신의 말이 내 인생의 의미를 그대로 설명해준다’는 감격에 복받쳐 솟구친 눈물이었다고 하셨다. 아울러 당신의 인생에 커다란 변화를 가져다 준 분에 대해 이야기하셨다.

“처음 목사가 되어 마을 회관을 교회로 만들고 신혼살림을 시작했을 때 일이지. 그때는 ‘십자가도, 삶의 빛도 다 여기에 있으니, 모두 이곳에 와서 구원 받으라’고 외치고 다녔어. 하지만 시간이 지나도 교회에 찾아오는 사람이 아무도 없는 거야. 할 수 없이 덤프트럭도 운전하고 막노동도 해서 생계를 꾸려가면서 목회를 이어갔지.

어려운 생활이라 여러 사람들이 도와주었지. 그때 알게 된 사람들 가운데 나가노 죠기치(中野常吉)라는 알콜 중독자가 있었어. 나가노 씨는 먼 거리에 있는 도청까지 가서 알콜 중독자에게 주는 생활보조비를 받아와 살던 사람이야. 그런데 그렇게 받은 돈을 술을 사는데 다 써버리는 거야. 동네 사람들은 세상에 저렇게 사는 사람이 어디 있느냐며 다들 혀를 찼지.

나가노 씨는 한 가지 독특한 행동이 있었는데, 술이 취하면 어딘가를 향하여 큰소리로 고함을 지르는 거야. 한 시간이고 두 시간이고 “으~악” 고함을 지르며 뭐라고 계속 소리쳤지. 집 근처의 탄광사무소 앞에서도 소리를 지르고, 번화가의 병원 앞에 가서도 소리를 질렀어. 시청 앞에서도, 경찰서 앞에서도 소리를 질러댔지. 한번은 우리 집 앞에 찾아와서 “이누카이, 이 새끼! 이리 나와” 하는 거야. 나는 밖으로 나가 그를 바라보며 “나가노 씨, 할 이야기가 있으면 들어가서 합시다”라고 했어. 그랬더니 그는 술을 한 모금 마시고는 “뭐야? 이 새끼야” 하면서 침을 퉤 뱉고 가버렸어. 지역 주민들은 그런 나가노 씨와 함께 사는 것이 부끄럽다며 그를 병원에 보내기로 결정했어. 그 후 어느 날부터 나가노 씨는 더 이상 보이지 않게 되었지. 얼마 후 정신 병원에서 목을 매고 자살했다는 신문기사를 읽게 됐어.

나는 나가노 씨가 왜 정신병원에서 자살을 했는지 알 수 없었어. 또 술을 마시면 뭐라고 소리를 질렀는지 궁금해서 나가노 씨의 장례식장에서 지역 주민들에게 물어보았지. 사람들은 그가 ‘자신의 한맺힌 사연이나 고통’을 말하며 소리쳤다고 알려주었어. 탄광사무소 앞에 가서는 탄광에서 일하다 죽은 동료들의 이름을 들먹이며 “그들이 죽을 때 당신들은 뭐했냐”고 외쳤다는 거야. 또 의사에게 찾아가서는 “내 아내가 병들었을 때, 돈이 없다고 거절한 사실을 기억하느냐”고 외쳤다는 거야.

나는 나가노 씨가 소리를 지른 이유를 들으며 부끄러워서 고개를 들 수가 없었어. 술의 힘을 빌려서라도 자기 동료들의 한을 대변하고, 불의하고 무정한 사회에 저항한 것인데, 그런 사실을 전혀 감지하지 못하고 나가노 씨를 교회로 데려와야겠다는 생각만 한 것이 부끄러웠어. 오히려 그가 가진 한, 슬픔, 괴로움을 이해하고 들어주었어야 하지 않았는가 반성했지. 그가 나에게 찾아왔을 때 외쳤을 말을 생각해 보았어. ‘이누카이, 너는 목사가 아니냐? 다른 사람은 몰라도 너는 내 말을 들어줘야 하지 않느냐?’”

나의 스승 이누카이는 나가노 죠기치 씨와 얽힌 이야기를 전하며 나가노 씨야말로 당신의 삶을 바꿔놓은 스승이라고 말했다. 예수 그리스도는 하느님과 세상을 소통하게 하고 위로하러 오신 분인데, 나가노 씨는 어떻게 그러한 삶을 살 수 있는지 가르쳐준 스승이라고 말했다. 아무도 들어주지 않는 한을 가진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어주고, 그 아픔을 위로해주는 것이 예수의 삶이라는 것을 깨닫게 해준 스승이라고…….

이누카이 선생님은 2012년 3월, 1970년 8월부터 매달 넷째 주 토요일이면 어김없이 찾아가 천막을 설치하고 투쟁하던 가네미 공장 앞의 천막농성을 500회 만에 마쳤다. “다른 사람의 고통을 나의 문제로 받아들일 수 있는가”를 스스로 되물으며 살아온 42년의 세월이었다. 그의 농성장에는 언제나 나가노 죠기치 씨와 같은 사람들이 찾아와 소통하고 위로를 받았다. 이누카이 선생님의 삶을 돌아보면서 나는 눈을 감고 생각한다. ‘우리가 서로 소통하고 위로할 사람은 어디에 있는가?’
 

이장섭 (이시도로)
아산에서 사회복지사로 일하며 주님을 찾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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