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병우의 그림 에세이]

 

엊그제 부처님 오신 날에
근처에 있는 용주사에 다녀왔다.

마침 저녁 예불을 시작했는지 독경 소리가 절 마당에 퍼진다.
나도 모르게 모아지는 손.
저녁이 되어도 떠나지 않는 많은 사람들
합장을 하고 머리를 조아린다.
무엇을 저리도 간절히 빌까?

절 마당엔 하늘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연등이 빽빽하다.
하늘에 펼쳐진 꽃밭
연등마다 등표가 달려있는데 자세히 보니
한 가족의 태어난 해와 이름이 적혀 있다.
그 애착이 짠하다.

슬며시 눈을 감으니 다시 연등의 바다가 펼쳐진다.
알록달록한 예쁜 색의…….

20일 송전탑 공사를 재개한다는데
결의를 다지고 있을 밀양과 청도 할머니들을 위한 등 하나
울산의 송전탑에 올라가 있는 천의봉, 최병승 님을 위한 등 하나
혜화동 종탑 위에 올라가 있는 여민희, 오수영 님을 위한 등 하나
평택의 송전탑에 올라갔던 복기성, 한상균 님의 건강 회복을 위한 등 하나
자본의 폭압에 벼랑 끝으로 내몰린 노동자들을 위한 등 하나
성장과 개발이라는 이름 아래 고통 받고 신음하는 이 땅의 모든 사람들을 위한 등 하나
그 폭력으로 사라져간 뭇 생명들을 위한 등 하나

그리고
나라를 다스리는 사람들을 위한 아주 크고 화려한 등 하나
(관세음보살처럼 백성의 소리에 귀기울여 달라고)
삼성과 현대, 쌍용, 재능, 남양유업, 모든 기업주를 위한 등 하나
(부디 회향하여 노동자들과 상생하는 마음을 내달라고)

작고 볼품없지만 구석진 자리에 달려 있는
내 마음의 연등도 하나.
 

 
 

윤병우
화가. 전공은 국문학이지만 20여 년 동안 그림을 그려 왔다. 4대강 답사를 시작으로 사회문제에 관심을 갖게 됐고, 탈핵, 송전탑, 비정규직, 정신대 할머니 등 사회적 이슈가 있는 현장을 다니며 느낀 것과 살아가면서 떠오르는 여러가지 생각을 글과 그림으로 표현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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