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알청춘일기 - 조대웅]

▲ 나의 부모님 (사진 제공 / 조대웅)
오늘은 제 이야기를 해볼까 합니다. 5월이 가정의 달인 만큼 제 가족에 대해서 이야기해보려 하는데요. 사실 누구나 우리 가족들의 이야기만큼 하기 싫은 게 없을 것입니다. 밖에서 보면 부러운 가정도 저마다의 상처가 있고, 가족들의 아픔은 또 자기 것이기 때문에 아마도 다른 사람들에게 이야기한다는 게 정말 쉽지 않을 겁니다. 저 또한 친한 친구들에게도 우리 가족에 대해서 쉬이 말한 적이 없었습니다. 어릴 적 가난한 형편과 몸이 편찮으셔서 집에서 술로만 지내던 아버지로 인해 집이 너무 싫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이제는 사람들과 가족에 대하여 서로 이야기하고 나누려고 노력하는 편입니다. 나이도 들었고 이제 조금은 경제적으로 나아진 이유도 있지만, 가족이란 것이 어느 한 구석에 숨겨두고 묻어두면 끝나는 것이 아니라 평생을 함께 걸어가는 여정의 동반자이자 서로의 울타리라는 것을 어느 피정을 다녀오고 나서 깨달았기 때문입니다.

나는 항상 아들이라는 위치에서 받기만 하면 되는 존재인줄 알았고, 그런 것을 주지 못하는 부모님을 원망만 하며 학창시절을 보냈습니다. 왜 다른 집 친구들처럼 난 내 방이 없을까? 왜 우리 아버지는 등하교 길에 멋진 자동차로 나를 태워다주지 못할까? 왜 어머니는 다른 어머니들처럼 나에게 멋진 신발과 옷들을 선물해주지 않을까 등등, 항상 친구들을 부러워했습니다.

그렇게 집에 대해 원망만 하는 동안 간과하고 지나간 것이 있었습니다. 바로 부모님이 저를 사랑하셨던 마음입니다. 난 항상 숨기기만 급급해서 거짓말로 친구들과 학교 선생님이 집에 오려 하는 것을 막았지만, 부모님은 문밖 10미터만 나가셔도 제 자랑하기에 끝이 없으셨습니다. 자연히 난 동네 어른들에게 제일 착하고 공부도 잘하는 아이로 소문이 났습니다.

하지만 어렸던 나는 그런 것보다 물질적인 풍요로움이 훨씬 갖고 싶은 마음이었고, 갖고 싶은 물건을 얘기하면 어머니는 어떻게 해서든 구해주시곤 하셨습니다. 지금 생각하니 분명 그 시절 우리 형편으로는 할 수 없었던 것들인데 어떻게 해주셨는지 가늠조차 할 수 없습니다. 이렇듯 부모님은 무엇보다도 나를 사랑해주고, 나를 위해 본인들의 시간을 바치셨는데, 다 커버린 저에게 아직도 지난날 못해줘서 미안하다고 하십니다.

이제는 어른이 된 제가 부모님께 필요한 게 없으신지 물어보아도 한결같이 아직은 네 도움 받을 때가 아니라는 말씀만 하십니다. 생각해보면 혼자 서울로 올라와서 산지 10년이 다 되었는데 부모님이 부탁하신 건 딱 한 가지, 가끔 전화해달라는 말씀뿐이었던 것 같습니다.

몇 달 전 어머니가 편찮으셔서 서울에 있는 제가 근무하는 병원에 오신 적이 있습니다. 다행히 큰 병은 아닌 걸로 검사결과가 나와서 얼마나 다행인지 몰랐습니다. 그런데 어머니는 고향에 계신 의사 선생님이 별일도 아닌데 서울로 올려보내 아들을 귀찮게 했다며 푸념을 늘어놓으시는 겁니다.

도대체 제가 얼마나 더 커야 어머니의 이런 마음을 이해할 수 있을까요? 자기 몸보다도 아들의 잠깐의 불편함이 아직도 더 걱정이신 부모님 마음. 예전 같았으면 당연했는지 몰라도, 하지만 이제는 저도 조금이마나 그 마음을 헤아릴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가진 것을 다 주고도 모자라지 않을까 하는 부모님 마음과 자식들이 더 해드리고 싶은 마음이 만나려면 얼마나 오랜 시간이 걸릴까요? 아마 부모님이 돌아가시기 전까지는 그 시간을 따라잡을 수 없을 것 같습니다.

지금 여러분 곁에 부모님은 어떤 얼굴을 하고 계십니까? 어릴 적 원망스러웠던 그 모습입니까? 아니면 존경스럽던 그 모습입니까? 아마 제 부모님과 같은 얼굴을 하고 있겠지요. 아직도 내가 태어났을 때 젖 물리던 그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고 있지 않나 생각이 듭니다. 3살 때도, 18살에도, 33살이 되어버린 지금의 나도, 부모님에게는 본인의 전부인 것처럼 나를 바라봐 주고 계십니다.

어머니, 아버지, 제가 두 분의 마음을 다 헤아리고 잘해드리려면 아마 억겁의 시간이 지난다 해도 힘든 일이겠지요. 두 분이 저에게 그러하셨듯이 이제는 제가 두 분께 아무 조건 없는 사랑 바치겠습니다. 두 분께선 그저 그 시간만 저에게 허락해주세요. 사랑합니다.


 
조대웅 (요한)
서울대학교병원에서 남자간호사로 일한다. 직업적 이미지와 달리 농구, 축구, 야구 등 거친 운동을 즐긴다. 술잔에 담긴 술보다는 마주 앉은 사람의 마음속에 담긴 이야기를 좋아하며, 특별한 이유 없이 사람 만나는 것을 좋아한다. 사람과 또 다른 만남의 장을 여는 소통으로 글을 쓰며, 지금 이 순간을 즐기며 살려고 노력하는 보통 청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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