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원의 리얼몽상] ‘테이크 쉘터’, 제프 니콜스 감독, 2011년작

▲ ‘테이크 쉘터’, 제프 니콜스 감독, 2011년작
그런 방공호 같은 거라도 있었으면 좋겠다. 이 한 몸 비를 피할 오두막 같은 거, 의지할 피난처, 이 세상 한 구석 어디라도 좋으니 있기나 했으면 좋으련만.

모두가 ‘힐링’을 말하는 시대다. TV 예능 프로그램까지도 힐링을 내걸고 세상 모든 것을 ‘치유’할 수 있는 듯이 군다. 가히 힐링을 가판대의 상품처럼 구매할 수 있을 것 같은 요즘이다. 누구나 수십 개의 설문 항목들을 체크하고 나면 ‘정신분열증’ ‘우울증’ 따위를 자가 측정할 수 있고, 서적과 무료 혹은 유료 상담 프로그램을 통해 자신의 ‘망상’과 ‘환각’을 ‘발견’할 수 있다. 전문의의 복용 약 처방도 받을 수 있다. 그럼, 그것으로 된 것일까?

폭풍우가 몰려와 이 세상을 한 순간에 뒤덮는 ‘멸망의 전조’로 불안에 떠는 35세 남자가 있다. 커티스(마이클 섀넌 분)는 아내와 딸과 단란한 가정도 꾸렸고, 남들은 그의 행복을 부러워한다. 어린 딸이 비록 청각을 잃는 중도장애를 겪고 있지만, 엄청난 은행 대출을 끼고 집을 사긴 했지만, 직장이 있는 한 건강보험도 튼튼하므로 딸의 청력회복수술도 전액 보험으로 받을 수 있다. 해고되는 일 없이, 직장을 이대로 유지할 수만 있다면 말이다.

그런데 커티스는 정작 밤마다 폭풍우의 악몽에 시달려 초죽음이 돼 간다. 꿈인지 생시인지 모를 전조들이 너무 생생해 견딜 수가 없다. 하늘에선 엔진오일 같은 누런 비가 내리고, 먹구름이 폭풍으로 변하는 건 순식간이며 해일이 온 땅을 삼킬 듯 밀려온다. 악몽 때문에 잠을 설치고 입맛도 잃고 근무조차 제대로 할 수가 없다. 주변 사람들은 이런 그를 ‘미쳤다’고 수군거린다.

이 모든 게 ‘착각’이 아니라면?

온몸의 세포와 신경이 들끓어대는데, ‘진정제’ 두 알로 잠재울 수 있는 불안이겠는가. 의지와 이성으로 이 모든 ‘신호’들을 묵살하려고 저항하다가 커티스는 피를 토하고 실제 숨이 막히는 증상에 고통 받는다. 만에 하나라도, 그 ‘망상’으로 진단받은 예감이 실제적으로 닥쳐올 물리적 위협이라면? ‘마음으로’ 극복할 수 있는 종류의 것이 아니라면?

▲ “대다수가 못 살겠다고 ‘아프다’고 아우성쳐도 전문가들은 많은 경우 ‘마음을 바꾸라’고 처방한다. 그런다고, 그렇게 입을 다물게 하는 것으로 폭풍우 자체가 사라질까?”

커티스는 자신의 불안과 사투를 벌인다. 모든 노력을 다한다. 가족을 지키기 위해, 이 일상을 지키기 위해 온갖 ‘전문가’들의 도움을 받아 하라는 대로 다 해본다. 그러나 결국은 그 상담일지 자체가 도돌이표로 돌아가는 순간이 온다. “기록을 보면, 어머니가 30대에 발병하셨다던데, 당신도 30대군요. 그 얘기부터 시작해 볼까요?” 이런 돌림노래 말이다. 그나마 미국이나 되니 ‘무료상담 프로그램’도 쉽게 찾을 수 있었다. 하지만 상담의 정석이랄 수 있는 교과서적 ‘배려’ 또한 실은 매뉴얼은 아니었을까 하는 서글픔과 함께, 상담 유행 시대에 진정한 치유가 얼마나 요원한지도 깨닫게 한다.

커티스의 숨통을 죄어오는 폭풍우의 정체는 무엇인가? 한 사람만 보던 것을, 끝내 모든 눈 달린 사람들이 직접 목도하고 당해봐야만 비로소 ‘현실’로 인정되는 폭풍우의 실체 말이다. 한 사람만 인지할 때는 그를 미친놈 취급하면 묻어버릴 수도 있을 것처럼 보인다. 대다수가 못 살겠다고 “아프다”고 아우성쳐도 전문가들은 많은 경우 “마음을 바꾸라”고 처방한다. 그런다고, 그렇게 입을 다물게 하는 것으로 폭풍우 자체가 사라질까?

제프 니콜스 감독의 영화 <테이크 쉘터>(Take Shelter)는 의외로 그 어떤 메타포도 없던 건조함을 보여준다. 그냥 뙤약볕 아래 내동댕이쳐진 듯한 기분마저 들게 했다. 모든 자연재해를 맞이하는 태도는 그저 맞닥뜨리는 것뿐일까? 예감이 실현됐다고 해서 좋을 건 하나도 없다. 오히려 그 반대다. 설령 방공호를 지은 덕택에 우선 몸은 피했다 치자. 그 다음은? 폭풍 속에 살아남는다 해도 가재도구 하나 못 건진 경제적 파산 속에 살아남을 방법은 없다. 피난처로 피하라는 영화의 제목이 사람을 더 막막하게 한다. 피난처는 ‘마음’으로 지어지는 것이 아니라 실제로 지상에 존재해야 하는 까닭이다.
 

 
 

김원 (로사)
문학과 연극을 공부했고 여러 매체에 문화 칼럼을 썼거나 쓰고 있다. 어쩌다 문화평론가가 되어 극예술에 대한 글을 쓰며 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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