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블로의 필름창고] ‘청설(聽說, Hear Me)’, 청펀펀 감독, 2009년작

어쩌면 손의 대화가 음성의 대화보다
더욱 깊게 소통하는지 모른다

▲ ‘청설’, 청펀펀 감독, 2009년작
언젠가 청각장애인을 위한 수화 미사에 참석한 적이 있다. 수화와 자막을 통한 철저히 시각적인 미사였다. 그렇기 때문에 미사를 거행하는 공간이 어두워서도 안 되고, 앞에 있는 주례 사제와 해설자, 독서자들이 잘 보여야 한다.

미사가 끝나고 저녁을 먹는데 수화로 한참 대화를 하기에 밥을 먹다가도 서로를 주시해 잠시 식사를 멈춘다. 손짓으로 표정으로 무언가를 즐겁게, 가끔 심각하게 이야기 나눈다. 음성으로 대화를 나누는 사람들은 가끔 대화 상대방을 제대로 못 볼 때가 많은 것에 비해 상대방의 손을 보면서, 또한 표정을 유심히 보면서 대화를 나눈다. 훨씬 집중도가 강한 대화처럼 보였다. 나는 그 대화에 낄 수 없었고, 오히려 내가 장애를 겪고 있다는 느낌을 받기도 했다. 대화에 낄 수 없어 느꼈던 그 이방인의 느낌이 좀 신선하기까지 했다.

한 3년간 텔레비전을 안 보았다가 중고 텔레비전을 얻어서 다시 보게 되었다. 정말 텔레비전을 보기만 해야 했다. 소리가 나지 않기 때문이다. 따라서 자막이 없는 한국 영화를 보면 답답하기 그지없어 외화를 주로 보게 된다. 공포영화를 봐도 그렇게 무섭지 않은 것으로 보아 공포는 청각에 상당히 의존하는 듯하다.

하여간 저녁에 소리 없는 텔레비전을 보면서 청각장애인도 그런 심경이겠다는 점을 느끼게 된다. 가끔 텔레비전에서 청각장애인을 위한 수화통역이 있는 게 고무적인 일이다. 지난 대선 토론을 보면서 한 사람이 그 여러 사람 것을 동시에 하는 모습은 정말 바빠 보였다. 이왕 하는 수화통역인데 몇 명을 더 보충했다면 어땠을까. 사람들이 아주 가끔 오해하는데 수화는 세계 공통어가 아니다. 수화 또한 언어이기에 문화를 기반으로 하여 한국 수화가 있고, 미국 수화, 영국 수화, 호주 수화가 있고, 중국 수화가 있을 수밖에 없다. 하여튼 이 영화에서는 수화가 대부분의 줄거리를 이끌어간다.

그들은 모든 것으로 이야기한다

부모님의 도시락집 일을 돕는 티엔커는 청각장애인 수영경기장으로 배달을 나갔다가 언니 샤오펑을 응원하러 온 양양을 알게 된다. 언니와 수화로 대화를 나누는 양양, 티엔커는 양양에게 반하고 이 둘은 차츰 사랑을 싹틔우고 키워간다.

양양은 거리공연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수영선수 언니를 뒷바라지하느라 티엔커와 짧은 시간 어렵게 데이트를 한다. 티엔커는 지극 정성인데 양양은 자존심이 센지라 일방적 도움을 받고자 하지도 않는다. 가끔 부딪치기도 했지만 그렇게 두 사람 잘 지냈는데, 그만 샤오펑은 사고를 당해 올림픽에 출전하지 못하게 되고 양양은 이 모든 것이 자기 탓이라고 자책하며 티엔커를 점차 멀리한다.

▲ 양양은 샤오펑의 뒷바라지에 전념하고, 샤오펑은 그런 양양에게 늘 미안한 마음을 갖는다. 샤오펑은 양양에게 금메달을 안겨주고 싶었다.

하지만 이젠 떨어질 수 없는 두 사람이 되었다. 티엔커는 부모님께 양양에 대해 이야기하는데, 조금 앞서갔지만 말하지 못하는 며느리도 상관없다고 한다. 자신들도 수화를 배우겠다고까지 한다. 티엔커의 부모님은 참으로 마음이 따듯한 사람들이다. 티엔커가 한참 양양 때문에 힘들어할 때, 왜 힘들어하는지 알 수 없으나 어떻게든 아들을 달래고 위로해주려는 모습도 참 푸근하다. 과잉보호는 아니지만 아들 티엔커를 믿음과 사랑으로 대하니 그 아들이 저리 착할 수밖에.

양양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는 장면에서 참으로 사랑 가득한 세 사람의 모습을 바라보게 된다. 언니 양양도 처음엔 절망적이었지만 서서히 기운을 차리고 영화는 이래저래 많은 관객의 바람대로 따스한 결말로 흘러간다. 아, 그리고 한 가지 하지 못한 이야기가 있는데 영화를 보면 알게 될 것이다. 마치 <러브레터>의 마지막 장면과도 같았던.

사랑하는 두 사람은 서로의 얼굴을 온전히 마주보지 않으면 대화를 나눌 수 없다. 그만큼 이야기를 나눌 때에는 서로에게 철저하게 집중할 수밖에 없다. 혹시나 상대방과 이야기하고 싶지 않거나 하면 마주보지 않으면 된다. 그러면 더 이상의 의사전달은 단절되고 말 것이다. 영화 속 두 여인의 수화 대화는 온힘을 다해 이야기하는 모습을 보여주는데 그건 표정에서 드러난다.

작년 미국 뉴욕에서 재해가 발생했을 때 시장 옆의 수화통역사가 화제였다고 한다. 한 텔레비전 연예 프로그램에서 수화통역사의 표정을 희화화했다. 그랬다가 그 프로그램 진행자에 대한 비난이 폭주했고, 농인단체의 강력한 항의가 있었다고 한다. 수화에서 표정이 갖는 중요성을 이해하지 못한 데서 비롯된 일이다. 표정은 수화 문법의 한 중요한 요소라고 한다.

▲ 이들에겐 표정 하나하나에도 중요한 의미가 오고간다.

두 사람은 이렇게 풍성하고 깊게 온힘을 다해 소통한다. 심지어 서로에 대한 오해조차 미처 대화하지 못했던 더 심오한 대화로 승화되고 마니 이 둘은 모든 대화의 경지를 통달한 것처럼 보인다. 하여튼 영화 속 두 사람의 사랑 속에서 눈길을 끄는 건 ‘장애’ ‘비장애’의 문제가 아니라 이렇게 깊게 마음을 나누는 과정이다.

요즘은 참 복잡다단한 통신수단의 발전 때문에 서로 이야기하면서도 핸드폰 들여다보는 일들이 많다. 이렇게 갈수록 대화의 집중도가 떨어지면서 소통에도 많은 문제가 생기는 것 같다. 같이 있어도 같이 있지 않은 듯한 그런 느낌을 자주 갖게 된다. 이 영화는 갈수록 사오정이 되어가는 우리에게 어떻게 온전히 대화하고 소통할 수 있는가를 절묘하게 일깨워준다.

잿빛 소식 가득한 세상이다. 이럴 때 가끔 맑은 영화 한 편은 우리에게 위로를 줄지 모른다. 촉촉하고 따듯한 이 영화가 바로 그런 영화다.
 

김지환 (파블로)
마포에서 나서 한강과 와우산 자락의 기운을 받으며 살아왔다. 역사를 공부했고 그중에서도 라틴아메리카 역사를 한참 재미있게 공부했던 시절이 있었다. 지금도 이 지역 이야기는 가슴을 뜨겁게 한다. 현재 출판사 편집자로 일하고 있다. 여전히, 좋은 책이 세상을 바꾼다고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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