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아버지가 입원하셨습니다. 대장암이었습니다. 수술 자체를 거부하시던 아버지를 겨우 설득해 종양 절제 수술을 마쳤습니다. 그리고 퇴원을 앞둔 며칠 전 병원에서 어머니는 저를 따로 부르셨습니다. 그리고는 아버지가 항암치료를 안 하시면 오래 살지 못한다는 말씀을 제게 하시며 어머니는 우셨습니다.

우는 어머니 모습을 보며 제 가슴 한 켠이 무너지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사실 어머니도 수년 전 갑상선암 치료를 받으셨지만, 늘 기도 속에 병을 이겨내고 계십니다. 예민하고 무뚝뚝한 아버지와 평생을 살아오시며 당신의 몸도 분명 힘들진대 자식들보다도 아버지를 더 극진히 돌보시는 내 어머니. 그런 어머니의 흔들리는 모습을 보니 제 마음이 많이 아팠습니다.

돌이켜보면 아버지는 제가 고등학생 때 천주교에 입교하였으니 좀 늦된 신앙인입니다. 하지만 어머니는 결코 아버지께 신앙을 강요하지 않았습니다. 그저 두 아들을 유아 영세시키고, 매일 저녁이면 함께 무릎 꿇고 기도하면서 신앙을 가르쳐 주었습니다. 세례를 받기 전 아버지는 기도문도 모르고, 신앙인도 아니었지만 저녁 기도 시간이면 우리와 같이 옆에 앉아 가만히 고개 숙이고 계셨죠.

커서 만난 옆집 살던 누나는 그런 제 어머니를 천사 같은 분이라고 기억하고 있었습니다. 얼마 전 만난 친구 신부님은 신학생 시절, 우리 집에서 어머니가 뚝배기에 끓여주시던 그 장맛을 지금도 잊을 수 없다고 합니다. 세상의 모든 어머니가 그럴 테지요. 남편을 봉양하고, 자식을 정성껏 키우며 한없는 희생 속에 정작 자신은 돌보지 않는 그런 희생의 삶. 그게 어머니의 삶이겠지요.

그런 제 어머니의 모습에서 예수의 어머니, 마리아를 봅니다. 해방신학자 구티에레즈 신부는 이런 어머니 마리아의 모습을 ‘어머니 대지(大地)’같은 모습이라 표현했지요. 제 어머니를 비롯해, 이 세상 모든 어머니는 땅과 같은 존재입니다. 그렇게 모두를, 모든 것을 받아들이고, 품고, 키워내고, 다시 살려내고, 다시 받아들이는 땅과 같은 존재, 어머니.

얼마 전 아버지가 병원에서 퇴원하시고, 아내와 두 아이들 함께 부모님이 살고 계시는 양주 집에 다녀왔습니다. 어머니는 손자들을 위해 손수 지은 따뜻한 밥과 구운 김과 반찬들을 차려 맛난 밥상을 주시며, 여느 때와 다름없는 웃음으로 맞아주셨습니다. 항암치료를 걱정하는 이 못난 아들이 볼 때, 어머니는 이미 아버지의 뜻을 헤아리고 계시는 듯 했습니다. 아버지가 정말 원하시는 것을 해주고 싶은 그 마음을 저는 느꼈습니다.

어느새 기도 속에 어머니는 땅처럼 아버지와 아버지의 병을 품고 계셨습니다. 어머니, 땅과 같은 그 마음속에 분명 생명이 다시 싹틀 겁니다. 그럴 겁니다.
 

 
맹주형
천주교 서울대교구 환경사목위원회 교육기획실장, 주교회의 환경소위원회 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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