댐 건설 반대하는 경북 영양군 수비면 주민들

아침 여덟시에 서울 양재동에서 출발한 차는 오후 세시가 되서야 경상북도 영양군에 도착했다. 주말이라 서울을 빠져나가는 길이 다소 북적거렸던 것을 감안하더라도 꽤 먼 길이었다.

영양군청 앞에는 이미 30여 명의 사람들이 모여 풍물을 치고 있었다. 영양댐 건설을 반대하는 수비면 일대의 주민들이다. 마을 주민 송재웅 씨는 “고추 모종 심기가 한창인 농번기라 어르신들은 나오지 못하셨다”고 했다.

서울에서 온 농활대와 함께 한 거리 행진
“작은 마을이라 드러내놓고 관에서 하는 일을 반대하는 게 쉽지 않아요”

서울에서 온 영양 농활대원 15명이 차에서 내렸다. 영양 농활은 녹색당 재자연화 모임에서 제안했고, SNS를 통해 소식을 접한 이들이 함께했다. 서울대교구 환경사목위원회는 차량을 후원했다. 이들은 주민들과 반갑게 인사를 나눈 뒤, 함께 “군수는 자진사퇴! 검찰은 구속수사”라 쓴 현수막과 “NO 댐”, “비리군수”라 적힌 작은 깃발을 들고 행진을 시작했다.

▲ 영양댐 건설을 반대하는 주민들과 서울에서 온 농활대가 영양 읍내에서 거리 행진을 벌이고 있다. ⓒ문양효숙 기자

▲ 부모님과 함께 댐 건설 반대 행진에 참가한 영양군 수비면 어린이들 ⓒ문양효숙 기자

▲ “옳지 않은 건 옳지 않다고 말할 수 있어야죠.” 젖먹이 아이와 함께 거리 행진에 참여한 장미옥 세라피나 씨 ⓒ문양효숙 기자

경찰은 캠코더와 사진기로 행진하는 주민들을 연신 찍어댔다. 농활대 중 한 명인 가미 씨가 다가가 지금 무엇을 하고 있느냐고 묻자, 경찰은 자연스럽게 “채증하는 중”이라 답한다. 가미 씨가 “그건 불법이잖아요”라고 하자 다른 경찰들이 와서 카메라를 든 경찰을 데려간다. 주민 중 한 명은 “댐 이야기가 나오기 전까지 영양에서는 경찰이 이렇게 나설 일이 거의 없었다”고 귀띔해준다.

장날인데도 읍내는 한산했다. 시위대의 신나는 풍물 소리와 그다지 많지 않은 이들의 구호가 매우 크게 느껴질 정도였다. 산으로 둘러싸인 작은 읍내를 한 바퀴 도는데 걸린 시간은 불과 40여 분. 읍내 주민들은 창가에서 무표정하게 시위대를 쳐다봤다.

젖먹이 아이를 유모차에 태우고 댐 건설 반대 집회에 나온 장미옥 세라피나 씨(영양성당)는 대학을 다녔던 4년을 제외하고는 줄곧 영양에 살았다. 고향이 수몰 예정지인 수비면 송하리 바로 옆 동네라는 그는 “워낙 작은 동네라 잘못 나서면 먹고 살기 힘들어지는 분위기”라고 말했다.

“드러내지는 않지만 영양 사람 대부분이 댐 건설을 반기지 않아요. 댐이 꼭 필요하면 지을 수도 있죠. 하지만 영양에는 필요하지 않아요. 저수지도 충분히 많고요. 댐이 필요하다는 군수의 말에 타당성이 전혀 없어요. 민주주의 시대인데 내 주장 정도는 할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옳지 않은 걸 옳지 않다고 말이에요.”

집회를 마친 서울 농활대와 주민들은 댐 건설로 수몰될 예정인 수비면 송하리를 향했다. 굽잇길을 40여 분 달려 도착한 마을은 읍내보다 훨씬 고요했다. 마을을 감싸고 흐르는 장파천은 바닥이 그대로 보일 정도로 맑고 깨끗했다. 마을 뒤로 펼쳐진 높지 않은 산들은 선이 아름다웠다. 약초도 많이 난다 했다. 농활대원 중 한 명이 “심마니들이 좋아할만한 산”이라 했다.

산과 강 모두 사람 손이 닿지 않은 듯 잘 보존되어 있었다. 마을 초입에서 펄럭이는 댐 건설 반대 깃발과 여기저기 붙은 현수막이 아니라면 이곳이 댐 건설 예정지라는 것을 연상하기 어려웠다. 댐 건설 소식을 듣고 잠깐 들르려다가 6개월째 마을에 살고 있는 성림 씨는 “한번만 와보면 이런 곳에 댐이 생긴다는 게 완전히 말도 안 된다는 걸 금방 알 수 있다”고 말했다.

▲ 마을 초입. 댐 건설을 반대하는 깃발이 바람에 흩날리고 있다. ⓒ문양효숙 기자

▲ 마을을 휘감아 흐르는 장파천은 사람 손이 닿지 않아 맑고 투명했다. ⓒ문양효숙 기자

180㎞ 떨어진 경산시에 산업용수 공급하기 위해 짓는다는 3천억짜리 댐

지난해 말 국토해양부는 댐건설장기계획을 발표했다. 앞으로 10년간 3조원의 예산을 들여 영양 장파천, 구례 내서천, 평창 오대천 등 전국에 14개의 댐을 짓겠다는 계획이었다. 많은 지자체에서 환경보존과 관광수익을 이유로 댐 건설 반대 입장을 고수하는 반면, 영양군은 권영택 군수가 여러 번에 걸쳐 직접 댐 건설을 요청했다. 홍수와 가뭄을 대비하고, 180㎞나 떨어진 경북 경산시에 산업용수를 공급한다는 목적이었다.

하지만 영양군은 지난 10년간 대형 저수지를 만들어 97개의 저수지를 확보한데다, 홍수를 대비해 골짜기마다 하천 정비를 완료한 상태다. 게다가 경산시는 4대강 사업으로 8억톤의 물이 확보된 낙동강에서 40㎞ 거리다. 환경부 국토환경정책과는 이렇게 문제가 많은 영양댐을 댐건설장기계획에서 제외하라고 제안했다. 그러나 국토해양부와 수자원공사는 이런 권고를 무시하고 지난 2월 26일 새벽 6시, 굴착장비를 동원한 타당성 검토 작업에 들어갔다. 이를 막으려는 주민들을 진압하기 위해 경찰도 투입됐다.

영양댐반대공동대책위원회(이하 대책위) 이상철 사무국장은 댐 건설의 이유가 “도저히 납득되지 않는다”며 “군수가 댐 건설에 집착하고 있다”고 말했다.

실제로 권영택 군수는 군내 각종 공사를 도맡아 했던 태화건설의 대주주였을 뿐만 아니라, 2008년 경상북도 종합감사에서 주의 처분을 받고도 자신이 대주주로 있던 건설업체의 수의계약 위반과 해당 공무원들의 위반사항 등을 소극적으로 처리했다는 이유로 재판을 받았다. 법원은 무죄를 선고했다. 또 최근 한 방송보도에 따르면 권영택 군수가 지방 공무원 및 사업가들과 도박을 하는 정황마저 포착돼 비난의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이상철 사무국장은 “군수가 지역 주민들을 완전히 무시했다”며 “이렇게 엉터리로 사업을 추진해도 시골 사람들이니 아무 것도 모를 거라고 생각한 것”이라고 말했다.

귀농 · 귀촌한 이들부터 시작한 댐 건설 반대
“아이들에게 자연을 물려주고 싶다”

처음 댐 건설에 문제를 제기한 것은 귀농 · 귀촌한 이들이었다. 읍내 행진에서 만난 한 부부는 여섯 살, 여덟 살 된 두 딸에게 자연을 보여주고 싶어서 귀농한지 3년째라고 했다. 댐 건설에 반대하는 이유를 묻자 “거창한 뜻이 있는 건 아니고, 상식적으로 댐이 들어설 이유가 없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아이들에게 아름다운 자연을 물려주고 싶다”고 말했다.

농활대가 수몰 예정지 계곡을 돌아보는 동안 마을회관에서 시끌벅적하게 저녁식사를 준비하던 이들도 주로 귀농 · 귀촌을 한 젊은 부부들이었다. 귀농한 기간도 2년부터 15년까지 천차만별이고, 수몰되지 않는 죽파리 · 기산리에 사는 이들도 많았다. 그러나 이들은 댐 건설 반대에 마음을 모아왔다. 타당성조사를 한 지역은 100% 댐이 건설됐다는 것을 아는 이들은 지난 2월 이후 타당성조사를 막기 위해 3교대로 조를 짜 마을 입구 초소를 지켜왔다. 3월초까지 대치 상태가 계속되면서 업무방해로 연행되고 주민 12명이 고소되는가하면, 5,600만원의 손해배상 청구까지, 조용한 귀농 생활에서는 생각지도 못했던 일들이 이어졌다. 자신을 ‘영양댐 체포1호’라 소개한 한 주민은 이렇게 말했다.

“아름다운 자연을 찾아 도시를 떠나 귀농을 선택합니다. 하지만 오래가지 못합니다. 그런 곳마다 댐이 들어서기 때문이지요. 하지만 요즘은 정말 주민이 되는 듯합니다. 싸움을 가열 차게 하면서 말이죠. 하하. 말도 안 되는 댐 건설을 추진한 군수에게 오히려 고맙습니다.”

시간이 지나면서 “군이 하는 일에 무슨 반대를 하냐”던 마을 어르신들도 하나둘 힘을 보태기 시작했다. 옆 동네 주민인 양혜정 씨는 “어르신들이 참 많이 변했다”고 했다. 전형적인 경상도 지역에다가 오래된 마을인지라 변화를 싫어하고 외부인들의 방문도 탐탁지 않게 여기는 분위기였다고.

“학생들에게 이렇게 싸우는 분들이 있다고 이야기할 수 있어서 기뻐요”

저녁이 되자 ‘환경과 생명을 사랑하는 전국 교사 연대’ 회원 15명이 생태사진작가 박용훈 씨와 함께 마을회관에 도착했다. 내성천을 걷고 오는 길이라 했다. 함께 온 한 중학교 교사는 “이 싸움이 3년에 접어든다는데 소식을 처음 들었다. 죄송하다”면서 “길이 막혀서 고생했는데 오길 참 잘했다. 학생들에게 이렇게 싸우는 분들이 있다고 이야기할 수 있어서 참 기쁘다”고 소감을 말했다.

다음 날 아침 6시 반, 산등성이를 넘은 햇살이 밭을 비춰오자 멀리서 마을 어르신들의 트랙터 소리가 들렸다. 일할 차비를 마친 마을 주민들이 밭으로 향한다. 긴 여정과 늦은 밤까지의 대화가 주는 피로를 뒤로하고 농활대원들도 하나둘 일할 차비에 나선다. 영양의 명물, 고추 모종 심기를 돕는 날이다. 고추를 빼놓고는 영양군 수비면의 5월을 말할 수 없다 할 정도로 고추 심기는 주민들의 삶에 중요한 축이다. 오랜 시간 이들은 때가 되면 고추를 심고, 때가 되면 거두면서 자연의 흐름에 몸을 기대 살아왔다. 이들은 물었다.

“우리의 삶이 댐건설 보다 하찮은 것입니까?”

수비면 주민들은 앞으로도 이 삶이 계속 되기를 바란다. 지금까지 살아온 방식으로 땅에서 계속 살아가고자 한다. 이름을 기억하고 싶다. 경상남도 영양군 수비면. 댐 건설을 막고 땅을 지키는 이들이 살고 있는 곳이다.

▲ 농활대가 마을 주민들의 밭에서 고추 모종을 심고 있다. (사진 제공 / 조상우)

▲ 아침 햇빛을 받아 반짝이는 마을회관 앞 고추밭. 이 땅은 오랜 시간 수비면 주민들에게 삶의 터전이었다. ⓒ문양효숙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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