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타리나의 주말영화 - 정민아]
<우리에겐 교황이 있다>, 난니 모레티 감독, 2011년작, 현재 상영 중

▲ ‘우리에겐 교황이 있다’, 난니 모레티 감독, 2011년작
교황이 주인공인 종교영화가 있다. 벌써 하품 나올 것 같다. 그러나 이 영화를 ‘이탈리아의 우디 앨런’이라 불리는 블랙코미디 영화의 대가이자, 베를루스코니를 노골적으로 공격하는 정치적 언사로도 유명한 난니 모레티가 만들었다면? 어, 그럼, 마음을 고쳐먹고, 봐줄만할 것 같다.

이 영화는 2011년에 제작되었으니, 교황 베네딕토 16세의 전무후무한 교황직 사임 이후, 바로 지금의 프란치스코 교황을 맞이하게 된 올 가톨릭계의 핫이슈 이전에 만들어진 완전한 상상물이다.

영화를 보고 난 후 소감은, ‘끝내주게 재밌다’는 것이다. 교황도 사람이었으니, 그는 갈등하고 도망가며, 우울해서 상담 받고, 그러고도 해결되지 않아 어린 시절의 애정결핍을 의심한다. 그는 모든 것을 신에게 의탁하지는 않는다. 그는 흔들리는 소심한 남자이며, 남의 시선을 두려워하며, 이루지 못한 꿈을 품고 있다. 나는 교황이 된 연약한 이 남자가 맘에 들었다.

“나 교황 하기 싫어요”

영화의 각본을 쓰고 연출한 난니 모레티는 <아들의 방>(2001)으로 칸느영화제 황금종려상을 수상한 이탈리아의 명장이며, 대부분의 자기 영화에 출연한 배우다. 모레티 감독은 정치적 발언과 활동으로도 유명하여 이탈리아의 대표적인 행동하는 지성이기도 하다.

가톨릭 집안에서 태어났지만 무신론자임을 강조하고, 블랙유머로 가득한 코미디 영화를 만들던 그가 바티칸을 소재로 하는 영화를 만든다고 했을 때, 현 교황과 가톨릭교회를 비판적으로 바라볼 것이라 예상하는 것이 당연했다. 이 영화가 그 해 칸느영화제 경쟁부문에 초청되어 상영되자 가톨릭계는 둘로 나뉘었다. 영화를 보이콧 하자는 움직임과 이 영화가 담고 있는 논쟁적인 부분을 환영하는 의견.

그리고, 영화가 마치 예지몽을 가진 듯이 가톨릭교회는 베네딕토 16세의 사임을 맞이했다. 실제로 스스로 직을 벗어 던진 교황을 목격한 후이므로, 지금의 우리에게 이 영화가 던지는 충격은 덜하다. 우린 영화의 사후에 현실에서 벌이진 일을 목격한 특별한 시대의 사람들이고, 영화는 교황직을 부담스러워하는 한 인간의 소명과 소망 사이의 갈등을 담아 진심으로 말한다. 그에게 완벽함을 기대하지 말라고. 잠시 그를 좀 내버려두라고.

새 교황을 선출하기 위해 세계 각국에서 추기경들이 한 자리에 모이지만 누구도 교황이 되고 싶어 하지 않는다. 추기경들은 하나같이 “제발 제가 되지 않게 해주세요”라고 기도를 올리고 콘클라베의 결정은 자꾸만 미뤄지며 굴뚝에서는 검은 연기만 솟아오른다.

성 베드로 광장에는 세계 각국에서 온 열혈 신자들이 모여들었다. (스크린에 가득 담긴 아르헨티나 국기가 눈에 확 들어오고, 난 소름이 끼쳤다. 난니 모레티 감독은 진정 예지자란 말인가.) 그들은 밤새 기도하며 새로운 교황이 발코니에 서서 연설하는 첫날의 “하베무스 파팜”(Habemus Papam, 영화 원제이기도 하다)의 역사적 현장에 서 있기를 애타게 기다린다. 온화한 성품의 멜빌 추기경이 선출되고, 생각할 겨를도 없이 그에게는 붉은 교황 망토와 십자가가 수놓인 휘장이 입혀진다. 발코니로 끌려간 그는 대중 앞에 나서기 전에 어린아이처럼 울음을 터트린다. “나 교황 하기 싫어요.”

 

추기경들은 대책 회의를 하고, 신자들은 조용히 그들의 결정을 다시 기다려야 하며, 미디어는 호들갑스럽게 이 사태를 진단하기에 바쁘다. 모든 것이 종료되고 이제 생크림으로 뒤덮인 카푸치노와 달달한 도넛을 먹으며 카바라지오의 그림을 구경하며 놀고 싶은 추기경들은 다시 원래 자리로 돌아가야 한다. 이 황당한 사태를 빨리 정리하고 근엄한 바티칸의 일상으로 돌아가기 위해서는 준비가 안 된 교황을 달래서 발코니 위에 세워야 한다.

정신분석학자(난니 모레티가 연기한다)가 비밀리에 바티칸으로 불려온다. 그래도 해결이 되지 않자, 바티칸 측은 007 작전을 세워 멜빌 교황을 시내로 데리고 가 정신과 의사에게 상담 받게 한다. 그러나 그의 정체는 알려져서는 안될 일. 아내도 자식도 식구도 없는 여든 살 먹은 노인이 하는 일도 없이 홀로 살아왔다는 것만 가지고는 도대체 심리 상담이 될 턱이 없다. 교황은 얼떨결에 자신은 ‘배우’라고 말하고, 의사는 부모로부터의 애정결핍이 지금 불안증으로 나타나는 것이라고 진단한다. 그래도 그가 받은 소명을 받아들여야 할 이유를 찾지 못한다.

우연히도 교황은 경호원들을 따돌리고 시내로 도망가는데 성공한다. 낡은 호텔에서 그는 이루지 못했던 배우로서의 꿈을 기억해내고 연극 극단에 합류한다. 영화는 이제 두 개의 축으로 전개된다. 사람 사는 동네로 흘러들어간 교황과 바티칸에 갇혀 추기경들에게 둘러싸인 정신분석학자.

교황은 버스 안에서 연설 연습을 하거나 방금 구운 빵을 얻어먹거나 연극 리허설을 구경하며 자신이 누구인지 탐색한다. 정신분석학자는 대륙별 추기경 배구팀을 만들어 토너먼트 경기를 주도한다. 그리고 비어있는 멜빌 교황의 방에서는 한 운 좋은 경호원이 빈둥대며 가끔씩 커튼을 흔들어주는 것으로 대중과 추기경들을 안심시킨다.

 

‘아무도 교황이 되고 싶지 않다’
대담한 설정 끝까지 밀어붙인 영화

영화는 깨알같이 가톨릭의 고리타분함을 공격하여 웃게 만든다. 오세아니아에서 온 추기경이 달랑 세 명이라 팀이 구성되지 않자, “그러게 신자 수 늘리도록 잘 좀 하지 그랬어요”라는 식의 대사나, 정신분석학자가 별거 중인 아내가 보고 싶다고 울먹이자 “사랑이 중요한 거지”라고 말하는 한 추기경에게 다른 추기경이 “당신이 사랑에 대해 뭘 알아요”라고 하는 식의 농담은 배꼽을 잡게 만든다. 웃기기만 한 게 아니다. 우울증에 빠진 안타까운 노인 멜빌의 맑은 눈동자는 사제로서 그가 얼마나 인내하며 살아왔는지 보여주며, 무거운 짐을 홀로 짊어진 교황에게 미안해하고 최약체 팀을 응원하는 추기경들의 순수함은 가슴 뭉클하게 한다.

‘아무도 교황이 되고 싶어 하지 않는다’는 그 누구도 상상하지 않았던 대담한 설정으로 영화를 시작하여 영화가 끝날 때까지 감독은 용기를 발휘한다. 방황하던 교황은 발코니에 서서 ‘킹스 스피치’를 완벽하게 해낼 수 있을까. “지금 이 교회는 변화를 필요로 하고, 교황은 십억 명의 신자와 함께 변화를 주도할 리더가 되어야 한다”는 그의 연설은 제대로 마무리될 수 있을까. 민주주의자 난니 모레티는 끝까지 기대를 저버리지 않는다.

가톨릭을 정신적 토대로 삼는 누군가에게는 불경스러운 영화일 수도, 충격적인 영화일 수도 있을 것이다. 누군가에게는 가톨릭의 폐부를 찌르기에는 예봉이 무디며 용기가 부족했다고 여겨질 수도 있다. 영화는 수천 년 이어진 교황 제도, 가톨릭교회의 아이콘으로 신화화되어 버린 이 제도가 인간이 수행하기에 적절한지에 대해 의문을 표하는 것으로 보인다. 영화 속 너무도 인간적인 교황 캐릭터를 놓고 이러한 질문을 던져보는 것만으로도 엄청나게 정치적인 영화다.

최초의 비유럽 출신 교황을 맞이한 것만으로도 한 걸음 진보하고 있다고 여겨지는 지금, 교황도 좌절에 빠진 남자이며, 어깨에 짊어진 거대한 짐에 힘겨워 하는 노인이라는 점을 인정하게 된다면, 그 다음 변화는 저절로 따라오게 되지 않을까. 

 

 
 

정민아
영화평론가. 영화학 박사. 동국대, 수원대 출강 중. 옛날 영화를 좋아하고, 사랑스러운 코미디 영화를 편애하며, 영화와 사회의 관계에 관심을 가지고 공부합니다. 삶과 세상에 대한 사유의 도구인 영화를 함께 보고 소통하길 희망합니다.

<가톨릭뉴스 지금여기 http://www.catholicnews.co.kr>

저작권자 © 가톨릭뉴스 지금여기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