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월은 확실히 잔인한 달이다. T. S. 엘리엇이 앞서 그런 말을 하지 않았더라도 언젠가는 내 입에서 비슷한 탄식이 나왔을 것이다. 열두 달 주기로 순환하는 우리네 삶이 그렇다는 것을 해가 갈수록 더 확연히 느끼는데 올해도 예외 없이 당하고 말았다.

우리가 흔히 새봄을 가리켜 하는 말 중에 ‘꽃피는 춘삼월’이란 표현이 있다. 그 춘삼월은 아직 추위가 꽃샘이니 뭐니 하며 얼쩡대는 양력 3월이 아니고 봄기운이 완연히 자리 잡는 음력 3월, 즉 양력 4월을 얘기하는 것이다. 그러니만큼 4월이 되면 사람들은 동절기동안 움츠리고 경직됐던 심신이 절로 펴지고 이완되어 그 따스하고 화사한 절기의 축복과 위로를 한껏 기대하기 마련이다.

그런데 웬일인지 지난 수년간 이 시기만 되면 나는 멀쩡하다가도 병이 나고, 병이 이미 나 있던 차면 증세가 악화되곤 해서 이젠 4월을 맞기가 두려울 정도다. 혹자가 이런 현상을 두고 개선 또는 발전을 위한 성장통이라고 충고해 온다면 ‘봄가을’을 반 백 번도 더 넘긴 이 몸에게 성장통이 웬 말이냐고 짜증 섞인 대꾸를 하지 않을 수 없다.

올 4월에는 이런 짜증조차 맘 놓고 낼 수가 없다는 것이 더 문제였다. 휴전 중에 들이닥친 게릴라 같은 원인불명의 전신 가려움증에 월초부터 내도록 시달리노라니 우선 밤잠을 제대로 못 잤다. 자연히 심신의 피로가 극심해진 터라 약간의 정서적 불편감이나 심리적 불안감조차 증세를 곧잘 악화시키곤 했다.

이렇게 몸 상태가 좌불안석이니 무슨 일에도 5분 이상 집중하기가 어렵고 잠을 못 자 온종일 비몽사몽간으로 정신을 차릴 수가 없는데도 애써 태연, 대범함을 유지하자니 참으로 고역이었다. 양방, 한방, 민방 가릴 것 없이 갖은 치료법을 써봤으나 차도가 없을뿐더러 오히려 조금씩 더 나빠지던 끝에 ‘미워도 다시 한 번’ 찾은 피부과에서 그렇게도 기피하던 스테로이드 처방을 받고서야 겨우 병증이 가라앉기 시작했다. 그러나 오래 쓰면 심각한 부작용을 각오해야 하는 스테로이드 치료를 마냥 지속할 수 없는지라 일반 약 처방으로 증상이 7할 정도밖에 해소되지 않은 상황에도 감지덕지하며 견디고 있다.

▲ 아일랜드 고대 수도원 유적지에서 ⓒ구자명

사람이 몹시 힘든 고통을 겪은 후에는 그보다 수위가 좀 낮은 고통은 일종의 평안으로 받아들이게 되는지, 4월도 막바지에 이른 지금 나는 평소대로의 일상에 복귀하여 이 글을 쓰는 것도 가능해졌다. 그러면서 지난 수 주간 ‘오체불만족’의 상태로 현대판 욥기를 써댔던 그 불우한 인간은 누구였던가 싶게 다시 사람들과 만날 약속을 잡고, 작업 일정을 새로 짜고 하는 나 자신이 신기하게 느껴진다.

사물의 가치판단에 있어 그 기준의 상대성을 중시한 선현들이 있었다. 나는 이번 일을 겪으면서 고통이란 것이 정도에 따라 고통이 아닐 수가 있으며, 나아가서 그 고통을 겪는 주체가 누구냐에 따라 고통의 성질 또한 달라질 것이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베이비부머 세대인 남편이 한창 군 생활이 삼엄했던 시절, 전방에서 복무하던 때를 회고하던 얘기가 떠오른다. 영하 35도를 밑도는 철원 최고지에서 야간보초를 서곤 했던 그는 산기슭 민간부락에 어쩌다 내려오면 그곳 기온조차 영하 20도 정도임에도 무릉도원에라도 든 듯 온몸이 녹아들면서 거의 환각 상태의 쾌감을 느꼈다고 했다. 이처럼 극한체험을 한 이들은 좀 덜 혹독한 상황에 놓이게 되면 거의 열락감과도 같은 것을 느낀다고 한다.

그와 연관해서 올 연초 설 무렵에 겪은 마치 영화 속 장면 같았던 화재현장 탈출 사건도 떠오른다. 우리 일행은 저녁 9시경 4층 건물의 2층 카페에서 생맥주 한 잔씩을 시켜놓고 앉아 있다가 어느 순간 연기 냄새를 맡고 그 건물 지하에서 화재가 발생하여 화염과 연기가 급속하게 위로 번져 오르고 있다는 걸 알게 되었다. 우리는 업소 주인이 어렵게 구해 온 철제 사다리를 눕혀 주방 창과 옆 건물 옥상을 연결하여 초긴장 속에 한 사람씩 무사히 건너 가 카페 안에 있던 전원이 피해를 면했다. 자가 구조를 못한 위층 사람들은 소방대가 와서야 구조되었으나 이미 연기를 많이 마신 뒤라 병원에 이송되어 치료를 받고 있다고 다음 날 아침 뉴스가 보도했다. 그러니까 더 늦은 시간에 우리가 거기서 술에 취한 상태로 있거나 했다면 우왕좌왕하다가 제대로 대피를 못 하여 무슨 사태가 벌어졌을지 모르는 일인 것이다.

세밑에 벌어진 일이라 그 사건은 내게 신년운수를 암시하는 두 가지 점괘로 읽혔다. 액땜을 제대로 해서 새해에는 궂은 일이 없을 거란 게 그 하나. 또 하나는 사람의 일은 한치 앞도 알 수 없다는 것. 3월까지 건강도 제법 호조세였고 계획했던 작업들도 순조로이 풀려나가던 참이라 전자의 점괘가 맞다는 쪽으로 행복한 결론을 내리려는데 달이 바뀌기가 무섭게 시련이 덮쳐왔던 것이다. 삶이라니!

부활축일도 다 지난 연후에 들이닥친 그 고난의 시기는 무슨 까닭에선가 내게만 유별나게 음력으로 부과된 사순절처럼 여겨졌다. 하지만 어느덧 나는 새 희망의 부활절을 앙망하며 그 어느 때보다 간절하게 5월을 기다리고 있다. 엘리엇이 시 <황무지>에서 읊었듯이 “죽은 땅에서 라일락꽃을 피워내고”자 그토록 잔인했나 싶은 4월을 너그러운 미소로 떠나보내고 환한 기쁨으로 찾아오실 계절의 여왕을 맞고 싶다.
 

 
 

구자명 (임마꿀라타)
심리학을 전공했으나 소설 쓰기가 주업이고 이따금 부업으로 번역도 한다. 최근에는 동료 문인들과 함께 ‘문학적으로 자기 삶 돌아보기’를 위한 미니 자서전 쓰기 운동을 펼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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