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웃종교의 향기-8] 서울 인수동 아름다운마을 공동체

서울 북한산 자락 인수동 마을에 그리스도를 따르는 젊은이들의 공동체가 있다. 흔히 공동체라고 하면 한적한 시골에 모여 사는 방식을 떠올리게 되지만, 이들은 거대한 도시 한편에 빌라와 다세대주택 사이사이 서로 걸어서 닿을 수 있을 거리에서 삶과 신앙을 공유하며 살고 있다. ‘아름다운마을 공동체’에서 ‘마을 밥상’을 운영하는 신병철 씨와 공동체에서 발간하는 마을신문 <아름다운마을> 편집장을 맡고 있는 최소란 씨를 만나 21세기 그리스도교 공동체의 모습을 들여다봤다.

신병철 씨는 2006년 4월부터 아름다운마을 공동체에서 살았다. 당시 군대 제대 후 새로 다닐 교회를 찾고 있던 신 씨는 아름다운마을 공동체에서 만든 개신교 청년 양성 단체인 ‘기독청년아카데미’를 통해 이곳을 알게 됐다.

“그때를 돌아보면 삶을 진지하게 고민하고 나누는 교회를 찾고 싶었던 것 같아요. 보통 교회에서는 교회의 원칙을 따르고, 세상에 나가면 세상의 원칙을 따르면서 포기하고 타협하며 살게 마련이잖아요. 여기에서는 그렇게 살지 않을 수 있을 것 같았어요.” (신병철)

타협하거나 포기하지 않는 삶을 위한 선택

최소란 씨는 남편과 함께 공동체에 들어온 지 만 4년이 됐다. 진보적인 성향의 교회언론에서 기자로 일하며 비판적인 시각을 가지는 것 못지않게 구체적인 삶에서 직접 대안을 만들어가는 것도 필요하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

“진보적인 곳에서 살면 내가 진보적이라는 착각을 하게 되더라고요. 내가 나를 점검하고 나보다 나를 더 잘 아는 사람들과 함께 사는 게 필요했어요.” (최소란)

최 씨가 공동체에 들어와 살게 되면서 맞이한 가장 큰 변화는 아이를 낳아 엄마가 된 것이었다. 아름다운마을 공동체에서는 새로운 공동체원이 들어올 때 4개월간 서로를 알아가는 과정을 거친 뒤 모두 모여 입회를 결정하고 기도를 드리는데, 이때 최 씨는 아이를 낳는 것에 대한 불안을 이기고 싶다고 기도했다. 그는 험한 세상에서 아이를 낳아 기르는 것이 불안했고, 자신이 부모 역할을 제대로 하지 못할까봐 두려웠다. 공동체가 육아에 좋은 여건을 제공하기도 하지만 결국 자신이 해야 할 몫은 스스로 해결해야 하기 때문에, 공동체에 들어왔다고 해서 갑자기 불안감이 사라질 수는 없는 것이었다.

▲ 아름다운마을 공동체에서 매월 발간하는 마을신문 ‘아름다운마을’ 편집장 최소란 씨 ⓒ한수진 기자

공동체에 들어온 다음 해에 아이를 낳은 최 씨는 공동체 식구들과 육아 품앗이를 했다. 오전 10시부터 오후 4시 30분까지 아이 3명을 엄마 1명이 담당하고 나머지 엄마들은 자기 일을 했다. 처음에는 아이가 걱정되고, 아이를 떼어 놓는 것이 잘 하는 일인지 마음이 편치 않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서로 독립하는 시간을 배우는 것이 두 사람 모두에게 좋다는 결론을 내렸다. 또 그 시간은 육아 품앗이를 하는 다른 공동체 식구들을 신뢰할 수 있는 기회이기도 했다.

“공동체에서 아이를 낳아 기르면서 내 역량이 더 커지고 있음을 느꼈고 주변 사람들과 함께 해낼 수 있다는 생각을 갖게 됐어요.” (최소란)

신병철 씨는 공동체에 살면서 다른 사람들에게 자신의 모습을 그대로 보여주는 것이 편해졌다고 했다. 처음에 다른 공동체 식구들에게 좋은 사람으로 보이고 싶은 마음이 강해서 자신의 본래 모습을 보여주고 사람들과 부딪히며 산다는 것이 힘들었다. 그러나 이제는 그 마음을 내려놓게 된 것이다.

“예전에는 나 혼자 잘 하는 게 좋은 것이라고 배웠어요. 하지만 공동체에서는 다른 사람과 관계를 잘 맺고 소통하며 더불어 사는 것이 더 잘 사는 것이었어요. 지금도 그걸 배워가는 과정이에요.” (신병철)

그가 아내와 함께 운영하고 있는 마을 밥상은 소통하고 더불어 사는 공동체의 모습이 가장 많이 드러나는 공간이다. 마을 밥상은 아름다운마을 공동체의 ‘공식 밥상’이라 할 수 있는데, 본래 공동체 식구들이 돌아가며 밥을 하던 것을 3년 전부터 신 씨가 맡아 운영하고 있다.

신 씨는 마을 밥상을 공동체의 ‘성찬’에 비유했다. 예수가 제자와 가난한 사람, 세리와 죄인과 함께 밥을 먹으며 삶을 공유했던 것처럼 공동체 구성원들도 밥상에서 성찬의 본질적인 의미를 구현하고 있다는 것이다.

“밥을 같이 먹는 사람이 가족이라고 생각해요. 이야기를 나누고 밥 먹는 모습을 보면 요즘 그 사람이 어떻게 지내는지 알 수 있죠.” (신병철)

함께 밥 나누면 식구… 공동체의 활력소, 마을 밥상

최소란 씨는 마을 밥상에서 점심과 저녁을 모두 해결하고 있다. 공동체에는 최 씨처럼 ‘월식’을 신청하고 매일 저녁에 마을 밥상을 찾는 직장인들이 꽤 있다. 최 씨는 “마을 밥상에 오면 어린이들이 있어서 하루 스트레스를 전환하는데 도움이 되고, 같이 밥을 먹으면서 위로도 얻는다”고 말했다. 마을 밥상에서는 공동체가 운영하는 어린이집과 대안학교의 점심도 책임지고 있다.

이렇듯 마을 밥상이 공동체에서 중요한 위치에 놓이다보니 공동체 식구들은 마을 밥상이 오랫동안 안정적으로 유지되는 것을 중요하게 생각하고 있다. 이를 위해 매일 저녁 식사 이후 자발적으로 식당 정리를 도와 신 씨와 아내 중 한 명은 6시 30분에 퇴근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 아름다운마을 공동체에서 ‘마을 밥상’을 운영하는 신병철 씨(가운데)는 공동체 대안학교에서 일주일에 두 시간씩 아이들에게 체육을 가르친다. ⓒ한수진 기자

아름다운마을 공동체는 1991년 개신교 청년들의 모임으로 출발했다. 성서에 그려진 모습과 다른 교회의 현실을 극복하고 삶으로 신앙을 고백하려는 열정으로 가득 찬 이들은 성서와 신학, 교회사뿐만 아니라 세계사와 한국사를 함께 공부하며 사회운동에도 참여했다. 또 대학 캠퍼스 안에서 다양한 주제로 신앙 강좌를 열었다. 영성을 주제로 한 강좌에서는 천주교 이냐시오 성인의 영성을 공부할 정도로 열려 있는 신앙인이기도 했다.

대학가에서 공동생활을 하던 청년들은 졸업 후 직장을 갖고 결혼을 하면서 앞으로의 삶의 방향을 다시 고민하게 됐다. 일주일에 한 번 만나는 것만으로는 서로의 삶을 지켜주고 깊은 관계를 맺는 것이 부족하다고 여긴 이들은 한 동네에 모여 생활하며 신앙을 나누는 마을을 꿈꿨다. 오랜 고민과 기도, 발품을 팔아 2000년대 초에 자리를 잡은 곳이 서울 인수동이다. 자연과 가깝고, 재개발의 바람에서 비껴있고, 지역 활동이 아직 활발하지 않은 곳 등 모임 구성원들이 바라는 여러 조건에 가장 가까운 동네였다.

현재 아름다운마을 공동체에는 어린이와 어른을 포함해 서울 인수동에 160여 명이 살고, 2011년에는 강원도 홍천에도 공동체를 꾸려 40여 명이 살고 있다. 서울 공동체 식구들은 기초공동체 18개로 나뉘어 각각을 하나의 교회로 부른다. 기초공동체는 주일에 모여 예배를 드리고 밥상 나눔과 생활 나눔을 한다. 일 년에 몇 차례 모든 기초공동체가 모여 연합 예배를 드린다. 그 외에도 공동체 구성원들은 밥상과 찻집에서 만나게 되거나 취미활동을 하는 동아리에서 만난다.

▲ 아름다운마을 공동체 이사 오는 날 풍경 (사진 제공 / 아름다운마을)

대표 없이, 정해놓은 규율 없이 서로 섬기는 것이 원칙

특이한 것은 공동체에서 권위를 가지는 대표자를 두지 않는 점이다. 대신 각 기초공동체에 목회위원이 있지만, 역할과 상관없이 누구나 서로를 섬기고 목회하는 관계를 지향한다. 아름다운마을 공동체에서는 이를 ‘상호목회’라고 표현하는데, 목회자와 평신도의 수직적인 관계를 넘어 서로가 서로를 비춰준다는 의미다.

“공동체에서는 삶을 구체적으로 나누기 때문에 목회도 삶의 작은 부분까지 이어집니다. 같은 공간에 사는 것만으로도 서로를 목회하는 것이고, 남이 나에게 하는 아주 작은 잔소리도 목회가 됩니다. 오래 지내다보면 상대의 눈빛만 보고도 내가 잘하고 있는지 아닌지를 알 수 있게 되죠.” (신병철)

또 한 가지, 아름다운마을 공동체에 없는 것이 있다. 미리 정해놓은 규율이다. 새로운 공동체 구성원들에게 정해진 규율을 제시하기보다 새로 온 이들과 먼저 살고 있는 이들이 직접 묻고 답하는 대화를 통해 자연스럽게 공동체 정신과 분위기를 익히는 과정이 중시된다.

“솔직히 저는 공동체 모든 구성원들이 마을 밥상에 와서 같이 밥을 먹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해요. 하지만 이걸 강요할 수는 없어요. 어떤 규율에 맞춰 사는 것보다 자신이 할 수 있는 만큼, 즐거운 만큼, 자기가 살고 싶은 만큼 하는 게 중요하니까요.” (최소란)

아름다운마을 공동체에선 갈등 해결의 방법으로도 직접 나누는 대화만큼 좋은 게 없다고 믿는다.

“직접 대화를 하고 상대를 천천히 관찰하다보면, 그 사람의 다른 모습을 보게 돼요. 그러면서 서로가 변화할 수 있는 가능성을 다시 믿게 되는 거죠. 직장에서 동료들의 뒷담화를 하는 것은 변화의 가능성이 없다고 생각하기 때문이거든요.” (최소란)

▲ 토끼띠 어린이의 생일잔치에 공동체 삼촌과 이모들이 토끼 장식을 하고 축하 노래를 불러줬다. (사진 제공 / 아름다운마을)

각 공동체 구성원들의 내적인 성장을 위해 공동체에서는 수도원을 운영하고 있다. 아름다운마을 공동체 학교 건물이 낮에는 학교로, 밤에는 수도원으로 사용된다. 공동체 구성원 중 피정이 필요한 사람은 언제라도 신청할 수 있다. 그러면 낮 동안 직장과 가정에서의 일상을 그대로 지속하면서 나머지 시간을 수도원에서 지낸다. 아침 6시에 일어나 아침 식사와 산책을 하고 각자 일터로 흩어진 다음, 저녁에 돌아와 함께 저녁 식사를 하고 밤 9시에 수도원 바닥을 걸레질한다. 매일 닦아도 매일 먼지가 나온다. 각자의 몸에서 나온 먼지다. 걸레질이 끝나면 밤 10시에 모든 불을 끄고 잠자리에 든다.

“일상과 단절된 이벤트 같은 피정도 좋겠지만, 문제는 일상에 돌아오면 삶은 그대로라는 거예요. 그러니 마을 수도원에서 일상과 괴리되지 않고 자신의 삶을 돌아보고 변화시키는 것이 중요해요. 퇴근 후 가정에서의 역할에 충실한 것도 좋지만, 거리를 두고 홀로 하느님과 만나는 시간도 필요하지요.” (최소란)

인터뷰를 마칠 즈음 잠시 그쳤던 비가 다시 내리기 시작했다. 바람에 떨어진 꽃잎에 안겨 흐르는 빗방울과 북한산에서 내려온 안개로 촉촉하게 젖은 마을은 더욱 도시에서 멀리 떨어져 있는 듯 느껴졌다. 인사를 하고 돌아 나오는데 반쯤 열린 학교 창문으로 아이들의 웃음소리가 들려왔다. 도시에서 흔치 않은 풍경에, 흔치 않은 소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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