쌍용차 해고자들과 함께 해 온 탁이미정 세라피나 씨의 연대 발언 전문

여러분들 앞에서 무슨 말을 해야 하나 고민이 많이 되었습니다. 오늘의 이야기를 먼저 저의 개인적인 소개와 고백을 드리는 것으로 시작할까 합니다. 제가 대학 다닐 때 공부했던 것은 신자유주의적 관점에서 가르치는 경영학이었습니다. 졸업 후 현재까지 20년 넘게 IT 기업에서 일하고 있습니다. 기업 이익의 극대화를 위해서 구조조정을 하고 정리해고를 하는 것은 생산성의 향상과 효율화를 위해서 당연한 것으로 사람보다는 기업이 우선이라고 배우고 생각해 왔습니다. 오랜 사회생활을 통해 제 관념 속에는 직장에 적응을 하지 못하거나 생산성이 떨어지는 이의 해고는 당연했고, 저 또한 경영 효율화를 위해 평가하고 판단하는 관리자로서 회사생활을 해왔던 사람이었습니다.

▲ 4월 29일 대한문 앞에서 연대발언하는 탁이미정 씨. 그는 거의 매일 대한문을 찾아 쌍용자동차 해고자들과 함께 해 왔다. Ⓒ문양효숙 기자
2011년 3월 정혜신 선생님의 트위터를 보고 우연한 기회에 쌍용차를 알게 되었습니다. 14번째 죽음으로 기억하고 있습니다. 더 이상의 죽음을 보고만 있을 수 없다며 평택으로 상담을 가야 하는데 아이를 돌봐줄 봉사자들을 찾고 있었습니다. 쌍차에 대한 지식이 전혀 없는 상태에서 아이들을 돌보는 봉사라는 것에 참여하기 위해서 평택까지 찾아가게 되었습니다. 우리들의 첫 만남이 그렇게 반가운 것은 아니었습니다. 국가의 폭력 그리고 지역 주민들과 동료조차도 그들에게 적대적이었던 것을 경험했던 해고노동자들은 낯선 사람들을 경계하는 빛이 역력했고 저희들을 불편해 하였습니다. 저 또한 해고자들에 대한 선입견과 편견을 갖고 있어서 선뜻 다가가지 못하고 아이들과의 놀이에만 집중하였습니다. 심지어 알코올중독자 같은 모습을 하고 있는 해고자를 보고는 저러니까 해고를 당하지 하는 생각까지 하게 되었습니다.

마음 한편에 그런 편견을 품은 채로 아이들과 하루 종일 온몸을 던져 놀았습니다. 놀고 나면 몸은 피곤했지만 아이들을 더 많이 이해할 수 있게 되었고, 그러면서 아이들과 정이 들고 매주 평택으로 가는 발걸음은 멈출 수가 없었습니다. 이러한 경험은 제 아이에 대한 이해를 넓혔습니다. 아이들과 친해지자 아이들과 아빠들과의 관계가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아이들은 아빠를 무척 좋아하고, 아빠는 아이들을 돌보고 놀아주는 것에 어색해 하거나 조금도 귀찮아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면서 든 의문은 저렇게 가정에 충실한 사람이라면 회사 일도 열심히 하지 않았을까 하는 것이었습니다. 그 의문을 풀기 위해 쌍용차 관련 사항들에 대해서 공부를 하게 되었습니다.

회계 조작에 의한 불법 정리해고, 노조에서 제시한 일자리 나누기, 1,000억 담보 개발자금 제공 등 노조의 자구안에 대한 경영진의 거부, 77일 동안의 투쟁에서 물과 전기, 음식까지 모두 끊어버리는 비인간적 행위, 살인적인 진압을 통한 노동자들의 구속, 그리고 그 모든 것을 압축적으로 보여주는 영상을 보게 되었습니다. 시위노동자를 폭력적으로 진압하는 영상이었습니다. 도저히 국가공권력이 국민에게는 할 수 없는, 해서도 안 되는 짐승 같은 폭력을 보았습니다. 그 폭력을 당했던 이들 중의 한 사람이 바로 제게 알코올중독자 같은 모습으로 비쳤던 이, 해고가 당연하지 라고 생각했던 이였습니다. 그는 폭력을 당하기 전에 회사에서 람보라는 별명을 가졌을 정도로 몸이 건장했으며 두 아이의 아빠였습니다. 집을 가꾸는 것이 취미여서 그의 집을 방문했을 때 정원과 집안 구석구석 그이의 손이 미치지 않은 곳이 없었습니다. 그는 가정에서나 공장에서나 성실하던 사람이었습니다. 국가 공권력에 의해 살인적인 폭력을 당한 그는 오랜 동안 병원에 있어야 했고, 지금도 정상적인 활동을 못하며 하루하루를 살아가고 있습니다. 폭력의 결과는 온전히 그와 가족들이 고통스럽게 고스란히 지고 있습니다.

사람을 죽이는 기업이 존재할 가치가 있는지, 국민을 보호하지 않는 국가공권력이 과연 정당한지 제 스스로에게 묻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제가 알고 있던 경영학과 기업, 노동자에 대한 생각들이 많이 잘 못 되어 있었다는 혼란에 빠졌고, 그 문제를 풀기 위해 공부하기 시작했습니다. 하느님께서 ‘너희는 서로 사랑하여라’ 하신 것처럼, 당신이 가장 사랑하시는 인간을 가장 우선으로 놓고 모든 문제를 봐야만 했습니다.

그들과 약속했습니다. 앞으로는 절대 외롭게 싸우지 않도록 함께 하겠다고. 이 싸움이 끝날 때까지 함께 하겠다는 약속을 겁 없이 해버렸습니다. 14번째 죽음 이후 24번째까지 왔습니다. 그 동안 그들이 겪은 아픔과 살기 위해서 죽을 각오로 싸우는 모습을 지켜봤고 또 함께 아파하면서 오고 있습니다. 작년 4월 23번째 죽음은 제게도 쌍차 해고자들에게도 엄청난 공포와 힘듦으로 다가 옵니다. 22번째 죽음까지는 77일동안 함께 투쟁했던 이는 없었습니다. 끝까지 싸우는 이는 죽지 않는다는 스스로에 대한 삶에 자신감이 있었던 것 같습니다. 저도 직접 아는 이의 죽음이 아니어서 늘 제 3자의 아픔으로 다가오다 23번째 투쟁했던 동지의 죽음으로 그 믿음이 깨지면서 죽음이 바로 옆에 다가왔다는 공포로 극도의 불안함을 느꼈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살기 위해 대한문에 분향소와 농성장을 세웠고 그날부터 우리의 대한문 미사는 시작되었습니다.

사실 전 이 자리에서 도망가고 싶습니다. 쌍차를 몰랐던 이전의 시기로 돌아가고 싶습니다. 주위에 잘 나가는 친구들과 어울려 놀며 세상은 살만한 곳이고 아픔 없는 곳이라며 저 혼자 잘 먹고 잘 사는, 약자는 눈에 보이지 않는 강자들만의 세상에 가서 살고 싶습니다. 하지만 이제 돌아갈 수가 없습니다. 이들의 고통과 아픔을 알았고 더 이상 피할 수도 없습니다. 세상은 99% 약자들의 희생으로 유지되고 있다는 사실을 안 이상, 더 이상 강자가 되기 위해서 살 수도 살아갈 수도 없습니다.

어떤 이유로 하느님께서 저를 이곳으로 이끄셨는지 모르겠습니다. 당신의 놀라운 섭리로 전 이 자리에 있는 것 같습니다. 하느님 당신의 도구로서 저를 이곳에 데려다 놓은 것 같습니다. 이들과 함께 한다는 것이 어떤 고통을 겪어야 하고 견디어야 하는지 알지도 못한 채, 경솔하게 함께 하겠다고 약속한 제가 후회되기도 합니다. 하지만 여기 함께 하시는 신부님과 수녀님, 수사님들 그리고 저를 포함한 신자들, 우리는, 수년 째 쌍차 노동자들이 불의의 세상과 싸우며 드리고 있는 간절한 기도의 응답이라고 생각합니다.

약자들과 늘 함께 하셨던 예수님의 뜻을 따르고자, 하느님과 함께 하고자 저는 오늘도 이 자리에 함께 합니다. 쌍차 노동자들이 더 이상 죽지 않고 서로 아끼고 사랑하며 잘 싸워서 승리할 때까지, 지치지 않고 ‘웃으며 끝까지 함께’, 가고자 하는 것이 저의 희망입니다. 짧지 않은 시간 동안 함께 하면서 이렇게 앞에 나 선적이 없습니다. 오늘 이렇게 여러분 앞에 선 이유는 여러분들께 함께 기도해주십사 부탁드리기 위해서 입니다.
 
오늘도 제 안에서 도망가고 싶은 마음과 함께 하고자 하는 마음이 충돌하는 저를 위해서 기도해 주십시오. 함께 끝까지 있도록 기도해 주십시오. 쌍차 문제가 하루 속히 해결돼서 그들이 공장으로 돌아갈 수 있도록 기도해 주십시오. 저도 여러분들을 위해 기도하겠습니다. 이 자리에 끝까지 쌍차 해고노동자와 함께 해주시도록 무릎 꿇어 간절히 기도 하겠습니다. 고맙습니다. 아멘.

탁이미정(세라피나)

* 이 글은 주교회의 정평위의  미사와 기도행진 후 이어진  대한문 앞 마무리 집회에서 탁이미정 씨가 한 연대발언 전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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