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알청춘일기 - 배선영]

의사는 내 배 속에 주먹 크기만 한 혹이 있어 당장 수술을 해야 한다고 했다. 검사 후 이틀 뒤에 수술이 잡혔다. 수술실에 들어가는 것은 이번이 두 번째였다.

2년 전, 처음 수술실에 들어가게 되었을 때, 난 수술 도중에 깨어날까 봐 너무 무서웠다(이런 내용의 영화를 본 적이 있다). 올해 또 한 번 수술실에 들어가게 되었을 때, 다시는 깨어나지 못할까봐 두려웠다. 생명과 직결되지 않더라도 수술이라는 것이 사람을 비장하게 만드는 측면이 있는 것 같다. 유서라도 써두어야 하나 고민했고, 가까운 사람들에게 전화라도 하고 싶었다. 그러나 정작 가장 그립고, 듣고 싶은 목소리의 주인공에게는 전화하지 못했다. 눈물이 날 것만 같았고, 하염없이 바닥으로 주저앉는 스스로의 약한 모습을 마주하게 될까봐 두려웠다.

수술이 끝나고 말도 못할 정도로 기운이 없는 상태에서 혹이 하나가 아니라 두 개라는 소리를 들었다. ‘혹’이 아니라 ‘혹들’이었다. 참담했다. 왜 이런 일이 있는 것일까. 도대체 혹들은 어떻게 생겨난 것일까. 언제부터 내 몸속에 자리 잡고 있었을까. 하마터면 암으로 발전할 수도 있었던 이 혹들에 대해 아무리 생각해봤자 내가 알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혹들에 대해 생각한다는 것 자체가 무의미했다.

그 어떤 말로도 위로가 되지 않는

어떤 사람들은 내가 둔하고 미련하다고 했다. 어떻게 혹이 그만큼 커질 때까지 모를 수가 있었냐며 답답해했다. 지난 내 삶의 그 많은 눈물과 불행을 아는 사람은 나를 안쓰러워하고 위로해 주고 싶어 했다. 또 어떤 사람들은 별 일 아니라고, 요즘 비슷한 경우를 겪는 사람들이 많으며 나보다 훨씬 젊은 20대 초반의 사람도 내가 받은 것과 같은 수술을 받은 일화를 얘기해주며, 그러니 너도 괜찮다고 했다.

하지만 나는 그 어떤 말에도 위안을 받지 못했다. 예민한 탓에 잔병치레는 하겠지만 큰 병은 안 걸릴 것이라고 자부하며 산 스스로가 한심했고, 매번 받는 연민과 동정은 지겹게 느껴졌으며, 살면서 누구나 겪는 아픔이라는 말은 힘들어할 내 권리마저도 빼앗고 스스로를 나약한 인간이라는 비난에 빠트리게 했다.

2년 전, 화상을 입어 수술을 받아야 했을 때도 사람들의 반응은 비슷했다. 이만하길 다행이라고, 감사하라고, 괜찮다고 하는 말을 수없이 들었지만, 나는 어떤 위안도 받지 못했고 오히려 시간이 지날수록 화가 났다. 아픔은 둘째 치고라도, 갑작스런 사고로 계획했던 미래와 목표를 잃어버렸는데 어떻게 이것이 감사할 일인가. 일어나지 않았다면 훨씬 좋았을 일이었다. 일어나지 않았다면 겪지 않아도 될 아픔이었다.

그래, 불행은 언제든 찾아오게 마련이지. 그러니 그 불행에 별 수 없이 슬퍼하고 힘들어하기 보다는 감사하고, 이만하길 다행이라고 긍정적으로 생각해야겠지. 하지만 오히려 나에게는 이런 합리화가 더욱더 처참하고 안쓰러운 발버둥으로 여겨졌다.

얼마나 더 ‘긍정적’이어야 만족할래?

힘든 상황은 가지각색의 다양한 형태로 오고는 한다. 가난, 복잡한 가정사, 사고, 질병 등……. 이런 일들을 겪을 때마다, 긍정적인 마음으로 최선을 다해 어려움을 이겨내려고 갖은 애를 다 쓰며 살았다. 앞으로 어떻게 힘을 내어 어려운 상황을 딛고 일어날 것인가 하는 데만 초점을 맞추려고 했다. 나에겐 힘든 사회생활을 묵묵히 견디는 동생과 오랜 아픔으로 무기력해진 엄마, 그 어느 때보다도 쓸쓸해 보이는 아버지가 있다.

함께 힘들어하는 가족들을 생각해서 힘든 감정은 숨기고 파이팅하는 삶의 자세로 열심히 살다보면 좋은 날이 올 것이라는 믿음을 가지려고 했다. 아주 어려운 고생 끝에 성공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줄줄이 보여주는 TV 프로그램과 힘든 청춘을 위한 수많은 책들, 멘토들의 강연을 들으며 위안을 받고 힘을 내보려고 했다. 그리고 아주 잠깐은 힘이 나기도 했다.

하지만 평온한 시간은 잠시. 누군가 앞에서 누구보다도 더 스스로의 인생을 지겨워하며, 처참한 모습으로 힘든 상황을 이야기하는 일은 끝없이 반복되었다. 그리고 문득문득 올라오는 분노와 돌덩이를 얹은 것 같은 가슴 속의 화살은 어느새 가족들을 향하고 있었음을 알게 되었다.

삶은 전혀 나아지지 않았고, 그래도 더 이상 최악의 상황은 없을 것이라고 자조적으로 스스로를 위로했음에도 늘 최악의 상황은 또 오고야 말았다. 도대체 언제쯤 이 험난한 삶은 끝이 나고 행복의 시간이 온다는 말인가. 왜 가족들은 힘이 되는 존재가 아니라 오히려 미움과 원망의 대상이 되어만 가는 것일까. 괜찮다는 말은 언제쯤 이루어지는 것일까. 뭘 더 어떻게 힘을 내고 얼마만큼 더 긍정적이어야 긍정적인 상태가 되는 것일까.

▲ “안 괜찮아도 돼. 무서워해도 돼. 울어도 돼.” SBS 드라마 ‘그 겨울, 바람이 분다’의 한 장면.

오랫동안 꾹꾹 눌러 담은 원망과 억울함, 분노가 스멀스멀 올라오고, 스스로의 감정을 어쩌지 못해 감정이 온몸을 다 뒤덮게 되어, 이런 감정들 때문에 죽을지도 모른다는 위협이 느껴지는 순간까지 오게 되어도, 나는 나를 어떻게 해주어야 할지 알지 못했다. 이제는 지치고 피곤한 채로, 껍데기만 남은 것 같았다. 어떤 마음도 먹을 수가 없고 오늘을 버텨내는 것 외에는 할 수 있는 것이 아무것도 없었다. 나는 / 괜찮지 / 않았다.

그러다 울음이 터져 나왔다. 엉엉 소리내어 오래도록 울었다. 내 몸과 마음은 내가 이렇게 다 토해내길 원하는 것 같았다. 이렇게 온몸으로 울고 난 후 상쾌해지는 기분을 느끼며, 어렴풋이 ‘이제 괜찮은 건가’ 싶었다.

슬픔을 긍정하며

나는 무엇을 두려워했던 것일까. 감정은 지속되지 않는다는 너무도 당연한 말이 엄청난 위안이 되는 것을 보면, 슬퍼하고 아픔을 마주하면서 한없이 무너져 내리는 스스로의 모습을 약하다고 규정하고, 다시는 일어서지 못할 것이라고 여겼던 것은 아닐까.

슬프면 슬퍼하고 아프면 아파하면 된다. 슬픔과 아픔, 분노는 순간의 감정일 뿐 언젠가 지나가 버릴 테고, 잠시 슬퍼하고 분노한다고 해서 내가 부정적이고 약한 사람이 되는 것도 아니다. 어쩌면 내 삶이 못난 것은 내 탓이라고, 나약해서라고, 열심히 살지 않아서라고 스스로를 비난하는 대신 차라리 불평을 하고 화를 내고 내 슬픔에 깊이 공감했더라면 어땠을까. 힘든 일을 안 힘들다고 애써 부정해서 더 힘들었던 것은 아니었을까. 자기연민이라도 얼마나 힘들고 고단한지 스스로에게 한번이라도 물어봤더라면 삶이 조금은 덜 억울하지 않았을까. 끝도 없는 불행을 이겨내겠다고 끊임없이 스스로를 채찍질하는 대신 말이다.

이제 와서 혹들에 대해 생각하는 것은 무의미할 수도 있다. 이미 잘려나간 것들이니 더는 마음을 쓰지 않아도 될 것이다. 다만 혹들과 함께 잘려나간 내 장기(臟器)의 일부분과 나의 아픔에 애도를 표하겠다. 어쩌면 이 혹들은 이제는 나에게로부터 온 “스스로를 돌보야 한다”는 메시지일지도 모른다. 그러므로 충분히 슬퍼하겠다. 스스로를 위로하기 위해 충분한 시간을 보내겠다. 지금은 슬퍼해도 괜찮다.

 
배선영 (다리아)
내가 왜 이 모양 이 꼴로 살고 있을까를 고민하며 20대를 보냈다.
이 사회는 왜 이 모양인가를 고민하며 30대를 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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