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비평 - 박병상]

대통령이 바뀐 지 오래되지 않은 한국과 미국은 ‘한미원자력협정 개정’을 위한 협상에 들어갔다. 현재 23기의 핵발전소가 가동될 뿐 아니라, 짓고 있거나 지으려 하는 발전소까지 앞으로 40여 기의 핵발전소를 운영할 우리나라는 핵발전을 고집하는 한, 핵연료의 안정적 수급을 고민하긴 해야 한다. 우리 뿐 아니라 중국을 포함해 핵발전소가 세계적으로 늘어나면서 이미 크게 오른 우라늄의 가격이 더욱 상승하지 않겠는가.

우리 측 협상단은 핵무기가 아니라 경제적인 이유로, 사용 후 핵연료를 재처리하면 우라늄 수입을 줄일 수 있기 때문이라고 미국을 설득하려 하겠지만 쉽지 않을 거라고 전문가들은 예상한다. 핵무기의 독점적 지위를 유지하려는 미국은 재처리 과정에서 핵무기로 전용될 수 있는 플루토늄의 정제를 한사코 거부하기 때문이다. 한국의 사정을 이해해도 선뜻 받아들일 수 없는 게, 한국의 요구를 받아들이면 봇물처럼 다른 나라들도 자국의 핵연료 재처리를 강력히 요구할 테고, 결국 핵무기 확산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다고 미국은 판단할 게 아닌가.

우리 협상단이 미국의 강경한 의지를 모를 리 없다. 따라서 순수한 플루토늄이 정제되는 습식처리가 아니라 순수하지 않은 플루토늄을 추출하는 건식처리를 요구할 것으로 전문가들은 예상한다. 그렇다면 미국 협상단은 우리 측의 안을 받아들일 것인가. 그건 알 수 없다. 외교란 그리 단순하지 않을 것이다. 주고받는 걸 요모조모 따져 자국에 유리할 때 합의로 이어질 테니까. 핵무기로 이어지기 어려운 건식 방식을 허용해주는 대신 미국은 우리에게 무엇을 요구할까. 그것이 무엇일까.

▲ “한국과 미국은 한미원자력협정 개정을 위한 협상에 들어갔다. 현재 23기의 핵발전소가 가동될 뿐 아니라, 짓고 있거나 지으려 하는 발전소까지 앞으로 40여 기의 핵발전소를 운영할 우리나라는 핵발전을 고집하는 한, 핵연료의 안정적 수급을 고민하긴 해야 한다.” 사진은 신고리원자력발전소의 모습 ⓒ문양효숙 기자

미국은 ‘핵연료 재처리’ 대가로 무엇을 요구할까

미국 무기는 우리가 구입하기로 이미 약속했으니 핵연료 재처리 협상의 반대급부로 부상할 가능성은 없어 보인다. 미국이 우리에게 받고 싶어 안달하는 게 있다. 물론 핵재처리 협상 테이블에 버젓이 내놓지 않겠지만, 미국산 쇠고기 추가 수입을 약속하라고 요구하지 않을까. 고기용으로 사육하지 않아 미국인들이 즐기지 않는 30개월 이상의 쇠고기, 다시 말해, 죽어라고 송아지만 낳던 암소와 정액만 내놓아야 했던 적은 수의 황소, 그리고 죽어라고 우유만 쏟아내다 지친 천만 여 젖소를 도축해 포장한 쇠고기를 한국에 떠넘길 가능성을 지울 수 없다.

현재 30개월 미만의 쇠고기만 우리나라에 수출하는 미국은 30개월 이상의 쇠고기를 팔아도 무방하다고 독단적으로 여긴다. 2008년 광화문 일대를 밝힌 촛불시위와 미국에서 재발된 광우병에 이은 거센 논란 때문에 수출업자가 자발적으로 자제하고 있지만, 앞으로 달리질 것으로 함부로 믿는다. 미국 무역대표부는 ‘2013년도 국가별 무역장벽 보고서’에서 “세계동물보건기구(OIE) 지침과 과학 근거에 따라 한국이 쇠고기시장을 완전 개방하도록 계속 촉구할 것”이라고 고집을 부렸다는 게 아닌가. 미국이 요구하면 거의 예스맨이었던 우리를 대하는 미국의 일관된 방식이 그렇다.

미국은 우유 생산량을 어린 나이부터 늘리기 위해 소에게 성장호르몬을 주입하는 나라로 악명이 높다. 그래서 유럽의 시민단체는 호르몬이 포함된 미국산 우유의 수입을 차단하려 애를 쓰고, 미국의 소비자단체도 일상적으로 성장호르몬이 투여되는 젖소 약 200만 마리를 매우 위험한 소로 분류하고 있다고 언론은 밝혔다. 광우병 희생자가 가장 많았던 영국은 광우병에 걸려 소각한 소의 80퍼센트가 문제의 젖소였다고 덧붙였다. 그렇게 우유를 펑펑 내놓아야 하는 젖소는 면역력이 떨어지는 까닭에 항생제 투입이 많을 수밖에 없다.

우유를 위해 품종을 무모하게 개량한 젖소는 고기 맛이 떨어진다. 보통이라면 송아지에 불과한 생후 1년부터 임신을 유도하고, 출산하자마자 계속 우유만 쏟아내야 하는 젖소는 고작 30개월이 지나면 지쳐 버리고, 지방이 부족한 근육은 질겨진다. 그런 살코기는 온갖 첨가물로 뒤범벅인 햄버거용 다진 고기로 가공되는 게 보통이다.

하지만 질겨도 잘 요리해 먹는 한국에 수출한다면 미국의 쇠고기 산업체는 훨씬 많은 수익을 챙길 수 있을 것이다. 정부를 흔들 권능을 가진 미국의 쇠고기 산업계는 미국 무역대표부와 사용 후 핵연료 재처리 협상단에 영향력을 발휘하지 못할 이유가 없을 텐데, 사용 후 핵연료의 건식 재처리를 허가받는 대가로 우리는 그런 쇠고기와 더불어 불안까지 얹힐 수 있다.

우라늄 핵발전보다 위험한 ‘고속증식로’

건식처리하여 얻는 플루토늄으로 핵무기를 못 만드는 건 아니라고 전문가들은 주장하지만, 우리 정부와 핵산업체는 액체 나트륨을 냉각재로 사용하는 ‘고속증식로’라는 핵발전소를 지으려 은근히 움직일 가능성이 높다. 북한의 핵무기에 대응해 우리도 핵무기를 만들자고 큰소리치는 국회의원이 없지 않지만, 미국의 강경한 통제를 견딜 것 같지 않다. 건식 재처리가 허용되면 우리 정부는 근거도 부족한 고속증식로의 장점을 늘어놓을 것이다. 핵연료의 수명을 늘리면서 전기를 생산하겠다고 기염을 토할 가능성이 높은데, 고속증식로는 벌써 세계적으로 6번이나 폭발한 우라늄 발전 방식보다 믿음직한가.

나트륨은 공기에 노출되면 불이 붙고 물과 접촉하면 폭발로 이어지는 가벼운 금속이다. 우리나라를 포함해 핵발전소를 가동하는 나라 대부분은 냉각수 누출 사고가 빈번하다. 나트륨과 냉각수가 만나면 고속증식로는 폭발할 테고, 이어 체르노빌과 같은 핵폭발로 이어질 수 있다. 우리 동해안을 바라보는 일본에 고속증식로인 몬주핵발전소가 있다. 1995년 가동하자마자 나트륨 유출로 정지한 뒤 2010년 재가동했으나 하루 만에 다시 사고가 발생해 영구 폐쇄를 검토하고 있다. 사실상 고속증식로를 검토하는 국가는 없다. 안전이 검증되지 않은 워낙 위험한 방식이므로.

우리나라가 핵 재처리를 거쳐 고속증식로를 가동하려는 건, 관련 산업과 정책을 끌어가는 자와 그 방면 연구자들의 이기심일 뿐이라고 의심하는 반핵 전문가들이 많다. 자신들의 지위를 지키려는 탐욕이라는 건데, 아닌 게 아니라 불안한 만큼 연구할 사안은 많을 것이다. 고속증식로를 만들어 가동하다 고장 나고 다시 가동하는 과정에서 막대한 이권을 챙길 수 있지 않겠나.

위험성을 직시하는 대부분의 국가에서 고속증식로를 외면하는 이유는 분명하다. 후손의 생명을 우라늄 핵발전 방식보다 훨씬 위협하는 까닭이다. 고속증식로 관련 연구와 건설에 막대한 돈이 낭비되더라도 민주적으로 철저하게 감시 · 통제한다면 후쿠시마 폭발과 같은 사고는 미연에 방지할 수 있다. 완공 후 가동을 포기한 독일이나 폐쇄를 검토하는 일본의 몬주 핵발전소처럼.

30개월 이상 미국산 쇠고기,
핵보다 더 위험할지도 몰라

성장호르몬과 항생제로 범벅일 30개월 넘는 미국산 소는 어떨까. 미국은 광우병 위험에서 완벽하게 벗어나지 못했다. 소 도축 부산물을 소 사료에 바로 섞는 일은 자제한다지만 교차오염 가능성은 아직 통제하지 않는다. 소 도축 부산물을 닭이나 돼지에 사료로 주고, 닭과 돼지의 도축 부산물을 소에게 주는 까닭에 광우병 원인물질인 ‘프리온’이 소에 전해질 가능성이 사라지지 않았다는 의미다. <얼굴 없는 공포>의 저자 콤 켈러허는 소에 도축 부산물을 먹인 이래 미국에서 치매가 무려 9,800퍼센트 늘었다고 증언한다, 그는 미국에서 늘어난 건 치매가 아니라 광우병일 것으로 의심한다. 그 30개월 넘는 젖소의 쇠고기가 들어올 경우, 우리나라에 고속증식로 불가피론과 더불어 치매도 늘어날지 모른다.

유럽 불임학회는 2007년 3월, 성장호르몬이 들어간 쇠고기가 남자의 정자 수를 줄여 불임 가능성을 높일 수 있다고 경고했다고 언론은 전한다. 30개월 이상의 소에 성장호르몬만 들어 있지 않을 게 틀림없다. 사람이 먹는 항생제의 8배가 가축에 들어간다는데, 젖소는 특히 그럴 가능성이 높다. 그런 소를 도축한 쇠고기를 먹으면 먹을수록 우리 몸에 들어오는 세균에 항생제 내성이 커질 것이다. 이른바 ‘슈퍼세균’으로 인한 질병이 늘어날 수 있다.

고속증식로는 커질 반핵운동의 목소리를 피하며 조심스레 추진하겠지만 불임 환자와 젊은 나이의 치매는 전에 없이 증가할 수 있다. 그렇다면 30개월이 넘는 미국 소는 1945년 이후 폭발하지 않은 현실의 핵무기보다 우리의 생명을 더 위협할 수 있다.


박병상 (인천 도시생태 · 환경연구소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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