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여기(hic et nunc)’에서 영성 다시 보기 - 2]

▲ 심백섭 신부(예수회)
“광야를 달리는 사나이, 사나이. 오늘은 북간도 내일은 만국.
흐르고 또 흐르는 부평초 신세. 고향을 떠나온 지는 몇몇 해던가.
석양을 등지고 달려라, 사나이. 사나이 일생은 회한도 없다.”

20대 때 배운 노래 중 오래도록 마음에 남아 흥얼거리곤 하는 노래다. 이 노래를 부르면 언제라도 훌훌 털고 떠날 준비가 되어 있는 ‘고달픈 사나이, 행복한 전사’의 모습이 떠오른다.

죽음의 겨울이 가고 생명의 봄이 왔다. 세월도 언제든 떠날 준비를 하고 있다. 나의 삶도 마음도, 무엇에서든 누구에게서든 늘 떠나는 데에 매임이 없고 막힘이 없으면 좋겠다. 그런 자유인이 되어갔으면 하는 것이 자유를 본질로 하는 이 생명의 봄에 품는 바람이다.

봄꽃 향기가 있으려면 추운 겨울을 견뎌야 한다

하지만 자유의 나무는 피를 먹고 자란다고 한다. 정말이지, 민주주의의 꽃에는 핏자국이 서려 있다. 그래서 1960년의 4월과 80년의 5월을 기리는 ‘진달래’와 ‘5월의 노래’에서도 “그날 쓰러져 간 젊음 같은 꽃 사태가 맺혔던 한이 터지듯 여울여울 붉었네”라고도 하고, “붉은 꽃잎 져 흩어지고 꽃향기 머무는 날”이라고도 노래하고 있다.

집단적 차원의 자유와 민주주의를 위해서도 그렇지만 내적 자유와 참된 나 됨을 위해서도 피 같이 고귀한 희생이 요구된다. 그래서 시경에서도 “한고청향(寒苦淸香)”이라고 하여 매화 같은 봄꽃의 아름다운 향기가 있으려면 먼저 추운 겨울의 아픔을 견뎌내야 한다고 말한다.

시경 저자의 눈은 봄꽃 향기 속에서 겨울의 추위를 놓치지 않고 통찰한다. 마찬가지로 우리는 부활하신 주님 안에서 십자가의 수난을 기억한다. 아시시의 프란치스코는 “십자가의 수난을 달게 받으신 착한 목자를 바라보라”고 권한다. 여기서 그리스도교 영성, 특히 이냐시오 영성에서 유의해야 할 대목이 있다. 그것은 무엇보다도 그리스도와의 인격적 만남이 중요하다는 사실이고, 이때 인격적으로 만나게 되는 그리스도란 바로 ‘지금 여기’의 세속적 · 도시적인 현실세계 안에서 발견되는 그리스도, 지금 여기에서도 여전히 가난하고 겸손하게 수난하고 있는 내 안의 그리스도라는 사실이다.

예수의 향기가 나는 신앙인, 예향신

그리스도인은 그리스도 예수의 향기가 나는 신앙인(줄여서 ‘예향신’)을 뜻한다. 예수의 향기가 나려면 예수를 닮아야 한다. 참된 자유인은 권력 있고 돈 있고 지위 있고 인기 있는 사람이 아니다. 참으로 행복한 사람은 늘 가난하고 겸손한 그리스도를 따르는 것이 자기 삶의 목표가 된 사람이다. 그리스도를 따르기 위해서는 먼저 지금 여기에서 그리스도 예수와 인격적으로 만나야 한다. 언제든 실천할 수 있는 한 가지 방법을 제안한다.

먼저, 지난 몇 시간 동안이나 하루 동안 나는 언제 어디에서 얼마나 자주, 얼마나 진실로, 예수님의 모습을 떠올렸는지 성찰해 본다. 누구를 보면서, 무엇을 보면서 예수의 모습을 볼 수 있었는가? 그리고 그렇게 예수의 모습을 떠올릴 수 있게 된 행복한 순간에 감사드린다. 그리고 다음에 더 자주, 더 진실하게 예수의 모습을 떠올려 볼 수 있으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생각하고 다짐하고 기도한다.

다음으로, 지난 몇 시간 동안이나 하루 동안에 나는 사람들에게, 자연 피조물에게, 그리고 일을 통해서 얼마나 자주, 얼마나 진실로 예수의 모습을 보여 주었는지에 대해서 역시 성찰하고, 감사드린다. 그리고는 다음에 내가 더 잘 내 안에 예수의 모습을 담아내기 위해서 어떻게 해야 할지 생각하고 다짐하고 기도한다. 가난하고 겸손한 예수의 모습이 아니라 지위와 돈, 내 욕심이나 세상의 시선 등에 휘둘리며 붙좇는 모습이 많았다면, 그것이 얼마나 나와 세상을 위해 불행한 일인지 통감하고 아파한다. 그리고 어떻게 하면 거기에서 해방될 수 있는지 생각하고 염원한다.

이 기도는 길을 걸을 때에 해도 좋고, 버스나 지하철을 기다릴 때에 해도 좋으며, 특히 잠자리에 들기 전에 해도 아주 좋다. 내 경우에 이런 방법으로 잠자리에 든 경우, 그때마다 꿈자리가 좋았다. 꿈에 예수님 대신 프란치스코 교황님을 뵙기도 했다. 중요한 것은 늘 예수님을 그리며 어떻게든 예수님 생각으로 내 마음자리를 채우려는 것이다. 이것이 내 삶을 변화시키는 작은 출발이 될 것이다. 그리고 이런 삶의 변화는 궁극적으로 “반역의 어두움 뒤집어 해방의 새날을 여는” 데에도 긴요하지 않을까 한다.


심백섭 신부
(유스티노, 예수회 후원회 부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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