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병우의 그림 에세이]

 

지금은 고인이 되셨지만 한동안 ‘행복 전도사’로 이름을 날린 분이 있다.
조금 튀는 염색 머리에 늘 행복한 미소를 지으며 행복하라 당부하던 분.
방송에서만 뵙던 분이 우리 동네 시청 강당에서 강연을 하신다기에 한달음에 달려갔었다.
역시나 내내 즐겁고 유쾌한 강연이었다.
강연이 끝난 후, 집에 돌아가려 건널목 신호등에 서있었는데
옆을 돌아보니 그분이 서 계신 것 아닌가?
반가운 마음에 인사라도 드리고 싶었지만 쑥스러워 말을 건네지 못하고 말았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좀 전 강연에서 그토록 행복하라고 당부하던 분이
정작 본인은 하나도 행복해 보이지 않았을 뿐더러 몹시 우울해 보였다.
나는 두 모습이 일치되지 않아 당황했는데
그로부터 얼마 후, 그분이 남편과 함께 스스로 목숨을 버렸다는
뉴스를 보고 큰 충격을 받았다.
당시 병마에 시달리고 있었는데 그 고통이 너무 컸기 때문이란다.
그때에야 비로소 그 우울한 모습이 이해되었다.
그런데 강연할 때 보인 모습에는 깜빡 속을 수밖에 없었다.
너무나 행복해 보였으니까.

주변에서 그런 경우를 가끔 본다.
예를 들어, 샌님처럼 얌전하게 생긴 사람이 무시무시한 가정폭력을 행사한다거나
조신하고 얌전해 어디 가서 큰소리 한 번 못 쳤을 것 같은 여자가
치마 두른 남자라는 평이 있을 정도로 크게 사업을 한다거나
자유분방할 것 같은 모습인데 연애도 한 번 못해 본 쑥맥이라거나…….

왜 그럴까?
왜 사람들은 속내와는 전혀 다른 모습을 보이는 걸까?
자신의 본색이 약점이라 여겨 그렇게 감추는 것일까?
때로는 사기꾼의 감언이설에 깜빡 속아 넘어가는 경우도 있는 것처럼
겉모습만 보면 판단을 그르치기가 쉽다

사람을 만날 때 오랜 시간을 두고 교류해 보지 않고는
섣불리 그 사람에 대해 판단을 내려서는 안 되는 듯하다.
오랜 만남 끝에 약점을 감출 수밖에 없었던 그 저간의 사정까지 이해해야
진정한 만남이 되지 않을까?
그 저간의 사정에 대한 연민까지 생겨야…….

요즘은 사람들의 겉모습을 보고 나름대로 이면을 유추해 보는 재미에 빠졌다.
거기에서 더 나가 예를 들어 그림을 그릴 때 유난히 꽃을 많이 그리는 사람이 있다면
‘여성성을 발현시키고 싶은 게야’라고 유추까지 하니
미술 심리를 공부하지 않은 나로서는 선무당이 사람 잡는 격인가?
자꾸 이면을 들여다보고 싶어 하는 이 심리는 일종의 엿보기일까?

세상이 갈수록 각박해지다보니 보이는 것만 믿지 않는 세상이 되어버렸다.
융의 말대로 무의식을 자꾸 의식화시킨다면 겉모습과 속이 같은 사람이 될까?
아무튼 보이는 것이 다는 아니다.

그런데 내가 때 빼고 광내고 성장을 하고 나갔을 때
사람들이 설마 내 방에 옷가지와 그림 도구들이
어지럽게 널브러져 있을 거라고 상상하지는 않겠지?
아는 사람은 알겠지만…….
 

 
 

윤병우
화가. 전공은 국문학이지만 20여 년 동안 그림을 그려 왔다. 4대강 답사를 시작으로 사회문제에 관심을 갖게 됐고, 탈핵, 송전탑, 비정규직, 정신대 할머니 등 사회적 이슈가 있는 현장을 다니며 느낀 것과 살아가면서 떠오르는 여러가지 생각을 글과 그림으로 표현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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