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블로의 필름창고] 위험한 상견례, 김진영 감독, 2011년작

▲ 위험한 상견례, 김진영 감독, 2011년작
다 괜찮은데 전라도만 안 돼!

유쾌하고 흘러가면서 재미로 보기에 딱 좋은 영화도 자세히 들여다보면 의미심장한 대목을 발견하게 된다. 이 영화, 그다지 완성도가 높은 것 같지 않고, 좀 당황스러울 정도로 썰렁한 장면도 없지 않지만, 사람들 발목을 잡는 정체성과 편견에 대한 대목은 눈여겨볼 만하다.

때는 바야흐로 1989년이다. 청춘남녀가 서로 사랑을 키워나간다. 세상에 보이는 게 서로밖에 없는 좋은 시절을 보낸다. 청춘남녀의 사랑이야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보기 좋고 적극 장려해야 할 일이겠는데, 문제는 이 선남선녀의 출신성분과 관련되어 발생한다. 남자는 전라도 광주 사람, 여자는 경상도 부산 사람이다. 웬수 같은 지역감정 때문에 두 남녀는 서로 사랑하지만 모든 게 껄끄럽다. 여자의 아버지, 누구라도 좋은데 단 전라도 사람은 안 된다고 딱 자른다.

‘현지’라는 가명으로 활동하는 순정만화 작가 현준. 사랑하는 경상도 여인 다홍이 아버지의 강요로 선을 봐야 하는 상황에 처하니 그녀와 결혼을 결심한다. 하지만 다 좋아도 전라도만 안 된다 하니 나중에 뽀록이 나더라도 일단은 전라도 사람인 걸 숨겨야 한다. 출신지역 세탁을 위해 서울말을 열심히 배운다. 노력은 참 가상하지만 어째 어색하다. 그런데 이 영화에서 서울을 통해 출신지역 세탁을 시도한 사람은 현준만이 아니다.

편견은 영혼도 좀 먹고 나라도 좀 먹는다

이 두 지역의 지역감정은 참 골이 깊다. 서로를 도저히 인정할 수 없을뿐더러 사람 취급도 하고 싶지 않은 듯하다. 물건을 향해서도 지역감정을 퍼붓는다. 영화 속에서는 부산에 가서 기를 쓰고 해태 제품을 찾으나 거기에는 롯데 제품밖에 없다.

사람들의 골수에 박혀 있는 편견은 참으로 지독한지라 어지간해서는 극복하기 힘들다. 말도 안 되는 좌빨 종북몰이가 여전히 먹히면서 사회발전을 가로막는 것이나, 별탈 없이 잘 지내는 동성애자들을 별세계에서 온 사람으로 몰아붙이는 것을 보노라면 편견이 갖고 있는 엄청난 힘을 절감하게 한다. 이런 편견은 강한 충격을 받지 않으면 좀처럼 깨지지 않는데, 편견의 대상을 새롭게 바라보거나 제대로 만나면서 서서히 완화되는 정도다. 패닉이 부른 <왼손잡이>도 알고 보면 우리 안에 뼛속 깊이 박혀 있는 편견을 질타한 노래였으리라.

▲ 이렇게 좋아 죽겠건만 참 사랑하기 힘들다. 그나저나 이 남자 어색한 서울 사람 흉내 내기 억수로 힘들다.
이런 편견은 특히 전라도 지역에 대해 일방적이다. 매체비평할 때 많이 나왔던 이야기이기도 하지만, 조폭들의 말투가 전라도 사투리가 많다는 사실이다. 예전에 어느 사진작가가 이문열의 수구극우적 행태에 항의해 ‘이문열 소설책 반환운동’을 펼쳤을 때, 이문열이 그에게 “당신 전라도지?”라고 윽박지른다. 그 사진작가가 “나는 부산 토박이”라고 하자 “그럼 당신 부모가 전라도지?”라고 재차 다그쳤다고 한다. (그러면서 자기 책 곱절로 되사주겠다는 이야기가 들렸다. 나는 하도 어이없어 헌책방을 뒤져 그의 책을 싸그리 모아 보내려고 했다.) “너 전라도지” 하는 호명 속에는 차별과 배제의 논리가 뒤범벅인 빨간 덧칠이 도사려 있곤 하다.

얼마 전 ‘일베(일일베스트 저장소)’라는 사이트에서 ‘홍어 말리는 중’이라면서 광주학살 피해자의 사진을 올렸다는 이야기에 경악을 금치 못했다. 철모르는 중고생들의 소행이라고도 하지만, 5․18을 폭도들의 난동이라 억지 부르는 역사의식이며, 그런 발상들에 영향을 주었을 기성의 의식에 문제제기를 하지 않을 수 없다. 이 어처구니없는 해프닝의 밑바닥에 흐르는 차별과 배제의 논리를 간과할 수 없다. 우리는 이렇게 첨단적 방법으로 야만이 횡행하는 사회에 살고 있다.

홍세화 선생은 언젠가 영남의 지역주의와 호남의 지역주의를 같은 선상에서 논할 수 없다고 말했다. 동감하는 바다. 호남은 오랜 세월 차별 받고 배제된 지역으로, 이 지역 사람들이 김대중 대통령을 자신들의 한을 풀어줄 메시아처럼 생각하는 것도 충분히 이해할 만한 면이 있다. 어딜 가나 똘똘 뭉치면서 잘 돌아가는 ‘호남향우회’도 그렇고.

공교롭게도 영화 속 배경이 1989년 광주와 부산이다. 1989년에는 민정당, 민주공화당, 통일민주당 3당이 통합해 ‘민주자유당’을 만듦으로써 한국의 정치구도를 극도로 기형화한 사태가 발생했던 해다. 이때부터 야도인 부산 경남지역이 여도로 편입되고, 지역구도가 더욱 교묘하게 고착돼 지금처럼 헤어날 수 없는 지경에 이른다. 역사는 이 험악한 지역주의란 골리앗에 맞선 다윗 노무현을 기억할 것이다.

생긴 그대로를 인정하고 받아들일 때 행복이 찾아온다

▲ 미래의 장모님, 이미 알고 있었다. 음식 하나만 봐도 알아차릴 수 있다. “이놈 정말 남같지 않다.”
영화 속 양가는 지역감정뿐만 아니라 양쪽 아버지의 개인적 원한관계까지 중첩되어 있다. 고교 야구 라이벌이었던 두 사람은 서로의 눈 한쪽과 다리 한쪽을 못 쓰게 만들어버렸으니 말이다. 이런 원한관계는 자신들의 편견을 훨씬 더 증폭시켰을 법하다. 영화 속 상황은 조금 극단적이지만 우리 대부분이 갖는 편견은 편견의 대상에서 받은 상처를 통해 증폭되곤 한다. 하여튼 현준의 어설픈 서울 사람 연기도 발각되고 다홍은 아버지가 점지해놓은 남자와 혼인하게 된다.

영화는 후반부로 가면서 여러 인간 군상들의 정체성 문제에 초점이 맞추어진다. 누군 그렇게 되고 싶어 전라도 사람이나 경상도 사람으로 태어났겠는가? 자신도 어찌할 수 없는 출신지역을 갖고 뭐라 하면 기분 좋을 리 없는 노릇이다.

사랑하는 두 남녀 거의 깨지는 상황에서 다홍 어머니가 극적인 커밍아웃을 하는데. 게다가 다홍의 결혼식, 결혼할 그 남자에게 다른 한 남자가 찾아오니. 왠지 음침하고 독특한 취향의 다홍 오빠 운봉이 자신의 우상인 순정만화 작가 ‘현지님’이 바로 현준이란 사실을 알게 되고 또 현준의 취향이 자신과 비슷하다는 생각에 안도감을 느끼게 되니. 순정만화나 그린다며 현준을 못마땅해 하던 아버지도 우연히 그의 만화를 보면서 감동하고 아들을 인정하게 된다.

통념상 온전히 받아들이기 힘들었던 각자의 생김새가 헛돌고 갈팡질팡하다가 제자리를 찾아간다. 하여튼 영화는 자신의 정체성, 그러니까 이런저런 생김새를 인정하고, 서로 그 생김새를 받아들임으로써 행복해질 수 있다는 메시지를 살며시 전해주는 듯하다.

 
영화를 보면 로미오와 줄리엣도 아니고, 흑인과 백인의 결혼도 아닌데, 이 좁디좁은 나라 안에서 이렇게 결혼하기 힘들어 난리버거지인가 싶다. 그런데 이게 대체로 우리 안에 실제로 존재해온 풍경이라는 사실. 한 시대에는 그 무엇이 일정한 당연성을 갖지만 시대가 지나면 폐기되어야 할 어처구니없는 어떤 것이 되는 법이다. 그렇게 흘러가고 흘러온 게 인간사였다. 아주 꽉 막힌 벽을 조금씩 허무는 데 사랑만큼 강한 힘을 발휘하는 게 없으리라. 심지어 혁명(REVOLUTION) 안에도 사랑이 들어 있으니 말이다.
 

 
 
김지환 (파블로)
마포에서 나서 한강과 와우산 자락의 기운을 받으며 살아왔다. 역사를 공부했고 그중에서도 라틴아메리카 역사를 한참 재미있게 공부했던 시절이 있었다. 지금도 이 지역 이야기는 가슴을 뜨겁게 한다. 현재 출판사 편집자로 일하고 있다. 여전히, 좋은 책이 세상을 바꾼다고 믿는다.

<가톨릭뉴스 지금여기 http://www.catholicnews.co.kr>

저작권자 © 가톨릭뉴스 지금여기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