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여기 첫 독자모임 ‘빛따라 길따라’

철모르는 바람이 쌀쌀하게 불어와도 마냥 좋은 봄날. 가톨릭뉴스 지금여기 첫 독자모임 ‘빛따라 길따라’가 4월 13일 남한산성 성지에서 열렸다.

남한산성은 삼국시대 이래 지리상 요충지로 조선 중기에 광주 유수의 치소와 마을이 성안으로 이전하면서 천주교 박해와 밀접한 관련을 맺게 됐다. 최초의 박해인 1791년 신해박해 때부터 신자들이 남한산성에 투옥되었다는 전승이 내려오고 있다. 1801년 신유박해 때에 한덕운 토마스가 처형되면서 천주교 순교지가 되었고, 이후 1839년 기해박해와 1866년 병인박해를 거치며 300여 명에 달하는 천주교 신자가 남한산성에서 고문당하고 순교했다.

▲ 4월 13일 가톨릭뉴스 지금여기 독자모임 ‘빛따라 길따라’ 첫 번째 순례지로 남한산성 성지를 찾았다. ⓒ한수진 기자

이날 독자모임에 참가한 이들은 모두 11명. 좁은 성곽 길을 따라 걷기에 많지도 적지도 않은 인원이었다. 참가자들은 남한산성 성지 성당에서 오전 미사를 봉헌하고 성당 옆에 세워진 순교자 현양비 앞에서 ‘순교자들을 위한 기도’를 드리는 것으로 순례를 시작했다.

유선근 지금여기 운영위원의 설명을 들으며 첫 번째로 찾은 곳은 박해로 끌려온 신자들이 고문을 받았던 포도청 터였다. 지금은 음식점 앞에 작은 표석으로 남아있을 뿐이지만 당시 포도청에 딸려있던 감옥에서 신자 22명이 옥사했다는 기록이 남아있다.

다소 소란스러운 음식점들을 뒤로하고 조선시대 임금의 별장이었던 행궁을 지나 남한산성 북쪽 전승문에 도착했다. 문지방을 넘듯 문 밖으로 발을 내딛자 성곽 길을 가로지르는 방향으로 사극에 나올법한 흙길이 이어졌다. 길을 따라가면 경기도 하남시에 있는 천주교 구산성지가 나온다. 200년 전 포도청에 끌려가지 않고 남은 신자들이 신분을 숨기고 동료 교인들의 옥바라지를 하기 위해 걸었던 길이다.

▲ 남한산성 전승문에서 구산성지로 이어지는 숲길. 200년 전 교인들은 목숨을 걸고 이 길을 걸어 감옥에 갇힌 형제, 자매들을 옥바라지했다. ⓒ한수진 기자

“신앙을 지키기 위해 목숨을 걸고 이 길을 걸었던 조상들은, 비록 피를 흘리지는 않았지만 자신에게 주어진 순교의 몫을 충실히 따른 것이 아니었을까 생각합니다.”

유선근 운영위원의 이야기에 모두의 시선이 길 끝에 닿았다. 이 길을 따라 걸으며 신앙을 지키기 위해 목숨을 걸었던 옛 교인들의 마음을 조금이나마 헤아려볼 수 있으면 좋으련만. 안타깝게도 현재는 구산성지에 다다르는 길 양옆으로 재개발 공사가 한창이라 걸어가기 어렵다고 한다.

어깨 높이의 성곽을 왼쪽에 두고 오르락내리락 쉬어가며 남한산성 동문까지 두 시간 남짓 산길을 걸었다. 걸음을 더할수록 사람들 사이에 오가는 말수가 늘었다. 산행 중 첫 휴식 때에는 각자 싸온 간식을 정중하게 권하며 살짝 어색한 기운마저 감돌더니 마지막 휴식에 이르러서는 웃음소리가 끊이지 않았다. 똑같은 리본을 달고 수십 명씩 몰려다니는 산악회 회원들에게도 밀리지 않을 기세였다.

“함께 순례를 하고나니 여러분이 마치 십년지기 친구 같이 느껴집니다. 하하하.”

순례 참가자 중 가장 연장자지만 스스로 ‘꼰대’가 아님을 자랑스러워하는 민병설 어르신의 건배 제의에 뽀얀 막걸리를 담은 사발들이 “쨍” 하고 소리를 냈다. 살아가는 이야기에 살아온 이야기가 더해지며 친해지기의 즐거움은 곱절로 더해졌다. 하지만 가정의 평화와 숙취 없는 귀갓길을 위해 약속한 시간은 여섯시 반! 5월에 있을 두 번째 모임을 기약하며 하루 순례길 동행이 끝을 맺었다.

* ‘빛따라 길따라’ 첫 번째 모임에 함께해주신 권정옥 · 김은자 · 김진희 · 김홍기 · 민병설 · 윤태호 · 이상헌 독자님께 감사드립니다.

▲ 어느새 웃음이 끊이지 않는 순례길 휴식시간 ⓒ한수진 기자

▲ 동문에 위치한 시구문. 박해시기 순교자들의 시신이 시구문으로 나와 옆 계곡에 버려졌다. 이곳에서 순례 마침 기도를 바쳤다. ⓒ한수진 기자

▲ 걸음을 더할수록 사람들 사이에 오가는 말수가 늘어갔다. ⓒ한수진 기자

▲ “함께 순례를 하고나니 여러분이 마치 십년지기 친구 같은 느낌이 듭니다.” ⓒ한수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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