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원의 리얼몽상]

처음으로, 이 땅에서 엄마로 사는 게 창피하다. 국가를 위해 아이를 낳은 것이 아니라는 말조차 입에 담기가 창피하다. 입에 담으면 구토가 치밀 것 같다.

아이를 낳은 여자에 한해서 ‘경력 단절을 보상’해 주는 의미로 취업시 가산점을 주겠다고 한다. 새누리당 신의진 의원의 이름으로 국회에 대표발의됐다고 한다. 임신, 출산, 육아로 인해서 일을 그만둔 여성들에게 재취업시 2%의 각 과목별 가산점을 부여한다는 게 골자다.

한 마디로 촌극이다. 여성의 현실도, 대한민국 직장의 속성도, 국민의 절박함도 모르는 말장난이다. 만일 발의한 의원의 이름을 핫이슈로 띄우는 게 목적이었다면 대박이겠지만.

신의진 의원의 책을 내다버렸다

왕년에 소아청소년 정신과 전문의 신의진 박사의 책 중에 <아이보다 더 아픈 엄마들>이 있었다. 베스트셀러였다. 내가 산 건 아닌데 우리 집에도 어찌어찌 꽂혀 있게 되었다. 육아와 교육 문제가 ‘엄마의 능력’으로 혹은 ‘엄마의 잘못’으로 치부되는 사회 구조적 모순에 대한 공감을 불러일으키는 내용이었다. 자본과 결탁한 입시제도와 각종 경쟁 속에서 부모 개인의 힘만으로는 애를 쓸수록, 아이도 엄마도 ‘아픈’ 사람이 되는 이 사회의 부조리함을 깨닫게 했다. 책의 저자는 우리 사회의 문제점을 상당히 심층적으로 파악하는 분이라 여겼다. ‘조두순 사건’의 피해자인 그 가녀린 아이의 ‘주치의’로 방송에 자주 나오는 모습도 제도 개선을 위한 것이라 여기고 눈여겨봤다.

그런데 지난해 신의진 박사가 새누리당 비례대표 7번으로 이름을 올리던 날, 그 책을 갖다 버렸다. 나 같은 책벌레가 책을 버리는 일은 흔치 않을 뿐 아니라 대단한 결심을 요한다. 저자의 모든 생각과 말이 결국은 출세의 발판이자 도구였다는 느낌, 이 시대 수많은 이들의 아픈 속내와 사연을 들은 결론이 ‘새누리당 비례대표’라면 할 말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사건이 발생하면 ‘범인’ 한 명의 사이코패스 성향을 널리 보도하고, 대부분의 사회 문제는 ‘개인의 탓’으로 돌리는 정당을 택한 것이 본심이었다니!

민주당 이종걸 의원은, 성 노리개였음을 폭로하고 스스로 목숨을 버린 가엾은 신인배우 고(故) 장자연을 위하여 목소리를 낸 몇 안 되는, 사실상 거의 유일한 남성 국회의원이었다. 그 이종걸 의원이 작년 8월 박근혜 당시 새누리당 대선 경선 후보에 대해 쓴 트위터 표현을 빌미로 ‘여성 비하’라며 징계를 요구받았다. 징계안을 제출하는 새누리당 초선 의원들의 사진 속에서 신의진 의원 얼굴을 보며 생각했다. 역시, 버리길 잘했어.

전쟁터 같은 사회에 사는 슬픔

군가산점을 부활시키자는 법안과 동시에 발의된 ‘엄마 가산점제’는 국회의 수준을 의심케 한다. 군대가 왜 남자들에게 열패감과 좌절감을 주는 곳이 되었는지, 고위층 자녀들은 신체적 결함으로 갈 수 없는 그 군대를 왜 서민의 아들들만 가게 됐는지에 대한 사회적 분노는 끝내 모른 체 하려는 것인가. 엄마가 되는 세상에서 가장 소중한 경험마저 돈벌이의 장애 요소로밖에 인식 못하는 여당이, 무슨 ‘모성보호’와 ‘국민행복’을 논하겠다는 것인가.

참담하다. 우리는 기계였나. 남자들은 총알받이며 여자들은 아이 낳는 기계인가. 결국 남녀 성 대결로 약자들끼리 치고받으며 싸우라는 뜻인가. 가산점을 준다면서 갑자기 그게 무슨 ‘특혜’라도 되는 양 이분법 구도로 몰아가는 언론의 태도도 불편하다.

물가를 안정시키고 집값을 안정시키고 아빠들의 직장을 안정시키는 근본 대책은 왜 논의조차 안 되고 다 실종되었는가? 아이를 키우는 동안은 아이 돌보는 일을 기쁘게 하고, 아이가 좀 자란 뒤에는 일과 육아를 어렵지 않게 병행할 수 있는 사회가 우리의 꿈이다. 그게 사람이 사람답게 사는 세상이다.

무엇이 근본인가. 젖먹이 엄마가 생존을 위해 불가항력적인 밥벌이로 내몰리는 사회야말로 병들고 ‘아픈’ 곳이다. 점수 몇 점으로 그 꿈을 능욕하는, 여기는 사실상 전쟁터다.


 
김원 (로사)
문학과 연극을 공부했고 여러 매체에 문화 칼럼을 썼거나 쓰고 있다. 어쩌다 문화평론가가 되어 극예술에 대한 글을 쓰며 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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