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볼리비아 선교 일기]

언제나 그렇듯이 처음에는 잘 모른다. 그러나 그동안 내가 얼마나 많은 것들을 기본적이라는 이유로 당연하게만 여겨왔는지 금방 깨닫게 된다. 어쩌면 언어나 문화, 기후 같은 낯설음과 불편함은 선교사로서 우리가 미리 준비하고 각오했기에 감당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아무리 준비를 하고 단단히 각오를 했어도 힘들 수밖에 없는 것들도 있다. 개인적으로는, 지난 몇 년 간 볼리비아에서 살면서 끊임없는 도전이었던 ‘물’이 바로 그것이다.

물이 얼마나 귀한 줄 아십니까

▲ 마을에서 공동으로 사용하는 우물 ⓒ이윤주
볼리비아는 기본적으로 물이 매우 귀한 나라다. 비가 잘 오지 않을 뿐 아니라 사막과 황무지가 많아 늘 건조하다. 게다가 상수도 시설이 잘 되어 있지 않아 대부분의 가난한 사람들은 늘 물에 굶주려 산다. 우리 동네도 사정은 마찬가지다. 집에 상수도나 우물이 없는 경우에는 물을 배급해 주는 트럭이 올 때마다 물통이며 양동이를 들고 나가 물을 사온다. 아니면 비가 오는 날 빗물을 받아 두었다가 조금씩 아껴서 써야 한다.

내가 사는 집에는 상수도가 있지만 그나마 물이 끊겨 나오지 않을 때가 많다. 그래서 우리도 비가 오는 날이면 빗물을 집안 곳곳에다 받아 놓고 한 동안 사용한다. 그러니 나의 가난한 이웃들이 잘 씻지도 못하고 여러 가지 질병에 시달리는 것이 놀랄 일도 아니다.

인간이 생존하기 위해서 뿐만 아니라 양질의 삶을 살기 위해서 물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굳이 더 설명할 필요는 없을 것 같다. 그러나 상수도 시설은커녕 아예 물 자체가 너무나 귀해서 얼마에 한 번씩 뜸하게 동네를 지나가는 물 배급 트럭에서 물을 사서 써야 하는 형편이라면 금방 깨닫게 될 것이다. 그동안 내가 얼마나 이것을 당연하게만 생각하고 귀한 줄 몰랐는지를 말이다. 그리고 그렇게 귀한 것은 비단 물뿐만은 아닐 것이다.

특히나 볼리비아의 역사 속에서 수많은 민중에게 물이 어떠한 의미였는지를 배우게 되면서 나는 또 한 번의 의식화(!)를 경험했다. 그들에게는 물이 생존의 문제를 넘어 이 정의롭지 못한 세상에서 평등한 권리를 되찾기 위해 투쟁하는 문제였다는 것을 배운 것이다.

오랜 식민생활과 그 후에 이어진 지극한 가난으로 인해 충분히 누려보지도 못했던 인간으로서의 생존권. 그 생존권에 직결되는 물적 자원에 대한 평등함을 되찾으려는 볼리비아 민중의 절박하면서도 단호한 노력을 보여주는 역사적인 예는 바로 2000년도에 있었던 ‘물의 전쟁’이다. 그 역사적 사건은 내가 지금 살고 있는 이곳 코차밤바에서 일어났다.

▲ 빗물을 받아 사용하는 모습(왼쪽)과 트럭에서 배급받은 물 ⓒ이윤주

물 한 모금과 밥 한 끼 중 하나 고르라는 잔인한 정책

1998년, 국제통화기금(IMF)은 볼리비아 정부에 13억8천만 달러의 자금을 빌려주어 인플레이션을 막고 경제 성장을 촉진하게 하겠다는 계획을 승인했다. 이 자금을 빌려주는 조건 중 한 가지는 볼리비아 정부가 가진 공공부문에 대한 구조적 개혁이었는데, 국민의 실생활과 밀접하게 관련된 전기, 물, 광산 등의 공공 부문을 개인 기업에게 넘기는 민영화 계획이 포함돼 있었다.

IMF와의 협약에 따라 볼리비아 정부는 이듬해, 그동안 운영하던 수자원 관리국에서 손을 떼고, 비밀협상을 통해 다국적 자본가 연합인 아구아스 델 투나리(Aguas del Tunari, 약칭 AdT)에게 40년 임대 조건으로 2억 달러에 수자원 관리권을 넘겼다. 그리고 이 AdT의 최대 주주는 바로 당시 미국에서 세 번째로 큰 민영 기업이었던 벡텔(Bechtel) 사(社)인 것으로 알려졌다.

국민들이 마시는 공공 식수에 대한 이 어처구니없는 민영화 작업을 정당화하기 위해 볼리비아 정부는 2029라는 법안을 통과시키기에 이르는데, 그 법은 실제로 볼리비아의 모든 물은 AdT가 소유한다는 것을 명시하고 있었다. 이 나라 안의 모든 산과 강에서 흐르는 물, 빗물, 하수도 물, 심지어는 일반 가정집의 우물물까지도 모두 AdT의 소유이며, 사람들이 어떤 물을 사용하고자 할 때는 요금이 부과된다는 내용이었다.

AdT는 통제권을 쥐게 되자 바로 물값을 35% 인상했고 그 이후에 추가 인상이 있을 것도 예고했다. 그것은 사실상 볼리비아 사람들로 하여금, 하루에 밥 한 끼를 먹을 것인지 아니면 밥 대신에 물 한 모금을 마실 것인지를 선택하게 만드는 잔인한 정책이었다.

▲ 2000년 볼리비아에서 벌어진 ‘물의 전쟁’ (사진 출처 / 유튜브 동영상 ‘Bolivian Water Wars’, ‘Cochabamba Water Conflict’ 갈무리)

마음껏 물을 마실 수 없는 가난한 이들의 목마름은 정의에 대한 목마름이기도 했기에 이곳저곳에서 항의 시위가 퍼지기 시작했다. 지구 다른 한 쪽에서는 목마른 이들의 외침에는 아랑곳없이 새로운 천년의 시작을 기뻐하며 샴페인을 터뜨리던 2000년이었다.

코차밤바에서 시위를 진압하던 정부군에 의해 수많은 부상자가 나고 십대 청소년 한 명이 살해된 소식이 전해지자 바로 이것이 ‘물의 전쟁’으로 이어졌다. 생존을 위협하는 공공 부문의 부당한 민영화에 반대하는 민중들의 입장은 매우 단호했지만, 그런 만큼 볼리비아 정부에 대한 다국적 자본가 연합과 IMF의 압력도 거세졌고, 무능한 정부는 어떠한 인명의 희생에도 책임을 지지 않으려 모든 것을 회피하고 있었다. 그 후로도 한동안 계속된 민중들의 거센 함성은 마침내 정부로 하여금 이 법안을 폐지하고 AdT와의 협약까지 파기하게 만드는 승리로 이어졌다.

그러나 벡텔 사는 국제사법재판소에 볼리비아 정부를 고소해 2천5백만 달러의 보상금을 요구했다. 2000년, 벡텔의 한 해 수익은 143억 달러였고, 같은 해 볼리비아 정부의 국가 전체 예산은 27억 달러였다. 다른 한 나라 전체 예산의 몇 배에 해당하는 수익을 올리는 한 기업이, 그 가난한 나라 국민들의 마실 물을 빼앗으려 했던 이 사건에 비하면, 대동강 물을 팔아먹었다던 봉이 김선달 이야기는 차라리 귀여운 이야기가 아닌가.

선교사는 자기가 섬기는 사람들이 겪는 고통부터 알아야

다윗과 골리앗의 이 이야기가 우리에게 낯설게 들리지 않는 이유는, 우리 역사 안에서도 정의를 위해 싸웠던 수많은 이야기들이 살아 있기 때문일 것이다. 하지만 어느 나라에든 민족과 국가를 위해 힘을 모아 투쟁했던 역사가 있다는 것을 우리는 자주 잊어버리곤 한다.

매일 매일 나는 볼리비아 사람들이 힘겨운 삶과 싸우는 모습을 본다. 남미에서 가장 가난한 나라라는 사실 때문에 볼리비아는 너무도 쉽게, 공무원들의 부정부패, 독점 재벌 기업의 횡포, 그리고 외부 강대국에 의한 희생자가 되고 있다.

지난 칼럼을 통해 선교사의 역할에 대해 이야기 했듯이, 불의한 것을 알리고 억압의 제도에 맞서 싸우는 것도 선교사로서의 책임이라는 것을 믿는다면, 우리가 섬기는 사람들이 어떠한 고통 속에 있는가를 먼저 이해해야 할 것이다.

선교의 시작이자 핵심은 선교지에서 내가 만나는 사람들과 관계를 맺는 것이다. 단절된 상태에서는 선교도, 그 다른 이름인 복음화도 존재 할 수 없다. 언제나 양방향으로 소통하는 관계 속에서, 나로 인해 그들이, 그리고 그들로 인해 내가 의미 있는 삶의 변화를 이루어 내는 것이 진정한 선교라고 나는 믿는다.

그러니 나는 볼리비아에서 물이 귀해 여러 가지 어려움을 겪으며, 또한 그것을 받아들이거나 이겨내는 경험들을 통해 내가 관계를 맺고 사는 사람들을 더 많이 이해하고, 그 안에서 선교의 의미를 발견하고 있는 것이다. 지난 성주간 전례를 지내며 내 가슴속에 유난히 많이 울렸던 예수님의 “목마르다”(요한 19,28)는 말씀이 어쩐지, 물이 부족해 늘 목이 마른 나의 이웃들, 그리고 정의에 목마른 수많은 나의 형제, 자매들의 고통을 이해하고 더 많이 사랑해 주라는 메시지로 새삼 다시 떠오른다.

이윤주 수녀 (메리놀 수녀회, 볼리비아 선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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