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월 14일 (부활 제3주일) 요한 21,1-19; 사도 5,27-32.40-41

오늘 복음은 갈릴래아 호수에서 고기를 잡던 제자들에게 부활한 예수님이 발현하신 이야기였습니다. 초기 교회는 그런 발현의 이야기들로써 부활하신 예수님이 그들과 함께 살아 계시다는 사실을 말합니다.

예수님이 돌아가시자 흩어졌던 제자들입니다. 그들이 예수님은 부활하여 하느님 안에 살아 계시다는 사실을 각자 체험하면서 예루살렘으로 모여 들었습니다. 그들이 실망하여 각각 자기 고향으로 가던 모습과는 전혀 다릅니다. 오늘의 제1독서, 사도행전이 전하는 바와 같이 그들은 성전 경비대장과 수석 사제들 앞에서도 돌아가신 예수님이 살아 계시다고 당당히 증언합니다. 그 증언과 더불어 교회는 발족하였습니다.

예수님의 죽음이라는 절망을 딛고 그리스도 신앙인들이 발생합니다. 제자들은 예수님이 살아 계시다고 말하면서 유대교 당국으로부터 박해당하고, 대부분이 목숨을 잃었습니다. 오늘 들은 사도행전은 유대교 당국으로부터 사도들이 심문 당하고 비난받는 것은 유대교의 금지령에도 불구하고, 제자들이 예수님의 이름으로 복음을 선포하였기 때문이라고 말합니다. 사도행전은 오늘의 이야기를 다음과 같이 끝맺습니다.

“사도들은 예수님의 이름으로 말미암아 모욕을 당할 수 있는 자격을 인정받았다고 기뻐하며, 최고 의회 앞에서 물러 나왔다.”

십자가에 돌아가신 예수님이 살아 계시다는 부활 체험이 그들에게 없었다면, 제자들이 그런 역경(逆境)에서 복음을 선포하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오늘 복음의 고기잡이 이야기가 말하고자 하는 바가 있습니다. 제자들은 밤새 고기를 잡지 못하였지만, 예수님을 만나고 그분의 말씀을 따랐더니 그들은 많은 고기를 잡았습니다. 제자들 중 여러 사람이 갈릴래아 호수의 어부 출신입니다. 그들이 고기를 잡는다는 말은 그들이 일한다는 뜻입니다. 예수님의 말씀을 따라 시작한 제자들의 일, 곧 복음 선포는 대단한 성공을 거두었다는 말입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은 멀리 떨어진 곳에서 제자들을 지켜보고 말씀하십니다. 부활하신 예수님이 당신의 복음을 선포하기 위해 일하는 제자들을 멀리서 지켜보며 말씀하신다는 그들의 믿음을 반영한 이야기입니다.

이어서 호숫가에서 예수님은 제자들과 함께 식사하십니다. 예수님이 주관하시는 회식입니다. 부활하신 예수님이 제자들을 초대하고, 빵과 생선을 집어 주십니다. 예수님이 살아 계실 때, 제자들과 함께 하시던 식사에 대한 회상이 가미된 장면입니다. 예수님은 평소에 제자들과 함께 식사하셨습니다. 그 식탁에서 듣는 예수님의 말씀은 그들에게 자유로운, 새로운 세계를 보여주는 것이었습니다.

유대교의 율사와 사제들은 율법 준수와 성전의 제사의례를 강요하면서 그것에 충실하지 못한 사람들을 죄인으로 매도하였습니다. 그리고 그들이 믿는 하느님은 벌을 주는 무서운 분이었습니다. 예수님이 말씀하신 하느님은 선하고, 사람들을 단죄하지 않고 살리시는, 자비로운 분이었습니다. 오늘 복음이 부활하신 예수님이 제자들과 함께 음식을 잡수셨다고 말하는 것은 예수님이 평소에 식탁에서 하시던 말씀들이 과연 하느님의 것이었다는 사실을 확인하였다는 뜻입니다.

오늘 복음에서 식사 후 예수님은 베드로에게 질문하십니다. “이 사람들이 나를 사랑하는 것보다 더 나를 사랑하느냐?” 베드로가 “예, 주님! 제가 주님을 사랑하는 줄을 주님께서 아십니다.”라고 고백하자 예수님은 “내 어린 양들을 돌보라.”고 말씀하십니다. 같은 질문과 대답이 두 번 더 반복되었습니다.

베드로는 예수님이 체포되어 대사제와 총독의 관저로 끌려 다니실 때, 예수님을 모른다고 세 번 부인한 일이 있었습니다. 요한 복음서는 그 사실을 간과(看過)하지 않았습니다. 이 복음서는 수난 당하시는 예수님을 세 번 모른다고 말한 베드로로 하여금 부활하신 예수님을 사랑한다고 세 번 반복해서 고백하게 합니다. 그 고백을 한 후에야 비로소 베드로는 사도로 다시 파견되었다는 말입니다.

“네가 젊었을 때에는 스스로 허리띠를 매고 원하는 곳으로 다녔다. 그러나 늙어서는 네가 두 팔을 벌리면 다른 이들이 너에게 허리띠를 매어 주고서, 네가 원하지 않는 곳으로 데려갈 것이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이 베드로에게 하신 마지막 말씀은 “나를 따라라.”라는 것입니다. 요한복음서가 기록되기 오래 전, 곧 기원후 65년경 베드로는 이미 로마에서 십자가형으로 처형되었습니다. 그는 두 팔을 벌리고 십자가에서 죽었습니다. 오늘 제1독서인 사도행전이 말하였듯이 “사도들은 예수의 이름으로 말미암아 모욕을 당하게 된 것을” 특권으로 생각하고 기뻐하였습니다. 그들에게 죽음은 스승이신 예수님을 따르는 길이었습니다.

복음 선포는 인간의 혈기와 욕심으로 되는 일이 아닙니다. 신앙인은 해방과 용서를 필요로 하는 곳에 예수님으로 말미암아 그가 체험한 해방과 용서의 기쁨을 안고 갑니다. 예수님을 따라 십자가를 지고 해방과 용서의 기쁨을 사람들에게 알리는 것이 제자들이 한 복음 선포였습니다.

제자들에게 죽음은 스승이신 예수님을 따라 해방과 용서를 사람들에게 알리는 선한 일을 실천하고, 겪어야 하는 결말이었습니다. 제자들은 그 죽음을 넘어서 예수님을 만난다고 믿었습니다. 제자들은 스승이신 예수님이 그들과 함께 살아 계실 때 하신 일을 역사 안에서 실천하여, 부활하신 예수님이 사람들의 삶 안에 살아 계시게 하였습니다.

하느님은 우리를 자유롭게 하십니다. 우리의 좁은 마음, 걸핏하면 미움에 빠지고, 사람들 위에 군림하려는 마음에서 우리를 자유롭게 하십니다. 인간이 우월감에 빠져 있으면, 주변 사람들을 있는 그대로 보지 못하고, 그들의 말을 듣지도 못합니다. 그 우월감은 자기가 가진 재물 때문에, 혹은 자기의 신분 때문에 생길 수 있습니다. 신자들 중에는 자기가 올바른 신심을 가졌다는 자긍심으로 우월감을 가지는 이도 있습니다. 하느님은 그런 우월감 없이 자유롭게 이웃을 섬기는 우리의 마음 안에 살아계십니다. “종과 같이 섬기는 사람이 되라.”(마르 10,43)고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부탁하셨습니다.

하느님은 인간을 차별하지 않으십니다. 교회 안에 발생한 신분들은 인간을 차별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공동체 안에서 하는 그들의 역할이 서로 다르다는 것뿐입니다.

신앙인은 모두 예수님을 따라 삽니다. 중요한 것은 오늘 복음의 제자들과 같이 예수님의 말씀에 따라 노력하는 것입니다. 하느님으로 말미암은 해방과 용서의 기쁨이 우리 안에, 또 우리 주변에 나타나게 하는 것입니다.

하느님은 용서하고 살리십니다. 그 해방과 용서를 자기 스스로 실천하여 부활하신 예수님이 우리 안에 살아 계시게 하는 사람이 부활을 믿는 그리스도 신앙인입니다.


서공석 신부
부산교구 원로사목자. 1964년 파리에서 사제품을 받았으며, 파리 가톨릭대학과 교황청 그레고리안대학에서 박사학위를 취득했다. 광주 대건신학대학과 서강대학교 교수를 역임하고 부산 메리놀병원과 부산 사직성당에서 봉직했다. 주요 저서로 <새로워져야 합니다>, <예수-하느님-교회>, <신앙언어>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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