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블로의 필름창고] 웰컴 투 동막골, 박광현 감독, 2005년작

▲ 웰컴 투 동막골, 박광현 감독, 2005년작
속도와 경쟁에 지친 상처받은 영혼들,
‘오래된 미래’ 동막골로 흘러들다

빨간 칠 좋아하는 사람들이 보기에 이 영화는 신성한(?) 국가관을 모독하는 불경스러운 좌빨영화다. 감히 공산군과 손을 맞잡고 우방인 미군에 맞서다니 말이다. 반면 진보적 민족주의자들이 보기엔 너무도 아름다운 영화다. 그들이 갈망할 만한 이상적인 합작을 보여주기 때문이다. 이렇게 보거나 저렇게 보거나 표면적으로 볼 때는 남북 문제를 다룬 영화처럼 보인다. 그리고 감독의 의도도 그러할 것이라 생각한다.

하지만 영화의 표면에 비치는 남북 화해나 평화의 메시지를 뛰어넘는 더욱 심층적인 메시지가 느껴졌다. 국방군이든 미군이든 인민군이든 빠른 속도로 상대방을 제압해야 하는 경쟁적 존재로 보인다. 전쟁만큼 속도와 생존경쟁이 극단적으로 표출되는 사건은 아마 없을 것이다.

전쟁과 군인들을 현재 자본주의 경쟁체제와 그에 복무하는 존재들로 보고 싶어졌다. 자본주의 진영의 미군이나 국방군이건 사회주의 진영의 인민군 할 것 없이 말이다. 사실 최근의 많은 연구들은 현실 사회주의 국가도 본질적으로 자본주의 메커니즘과 별 차이가 없었다고 본다.

토니 클리프(1917~2000, 트로츠키주의 정치 이론가이자 영국 사회주의노동자당의 활동가)는 구 소련 체제를 사회주의가 아닌 변형된 자본주의, 즉 국가자본주의로 규정했다. 자본주의건 사회주의건 근대의 쌍생아로서 생산력주의나 성장주의 패러다임에서 자유롭지 않았다. <모모>를 쓴 판타지 작가로 유명한 미하엘 엔데도 이와 비슷한 이야기를 하였다. 레닌이 혁명 러시아에 자본주의 사회에서 효율적 착취를 도모했던 테일러주의와 포디즘을 도입하고자 했다는 점도 많은 것을 시사한다. 위대한 혁명가 레닌도 큰 틀에서는 시대를 넘어서지는 못한 것이다.

자국 군의 대열에서 벗어난 국방군, 인민군, 미군들은 극도의 생존경쟁에서 잠시 이탈한 존재들이다. 그들이 어찌어찌하다가 동막골로 흘러든다. 동막골에서 마주친 그들은 서로를 향해 총부리를 겨눈다. 그러나 거기서 수류탄 뻥튀기 사건이 벌어졌고 일종의 휴전 상태가 만들어지면서, 식량을 채우기 위해 동막골의 일꾼이 되어야 했다.

▲ 맷돼지는 이렇게 결정적인 화해의 희생제물이 되고 마는데, 다음 날 이들은?

때묻지 않은 동막골 사람들이 볼 때, 이들 모두는 이상한 물건을 잔뜩 짊어진 그저 별난 이방인에 지나지 않는다. 단, 미군은 생김새가 너무 달라 이질감을 더욱 심하게 느꼈을지 모르겠다. 하여간 마을 사람들은 서로 죽이려고 싸움박질이나 하던 군인들을 환대했다.

군인들은 처음엔 무기만 내려놨을 뿐 경계를 늦추지 않았지만 마음속으로도 화해가 이루어지고 이젠 형제와 이웃 같은 사이가 되어간다. 결정적 계기는 맷돼지 신(scene)이다. 그들의 생존을 위협한 공동의 적, 맷돼지를 무찌르면서 한마음이 된다. 그렇게 하나가 되어가면서 정작 서로 싸워야 할 존재가 아니었음을 자각해가면서 아마도 ‘왜 이렇게 싸우고 지랄했을까’ 하는 생각도 했으리라.

어제의 적을 오늘의 형제이자 이웃으로 이끌어준 동막골은 치유와 화해의 공간이다. 평화롭고 따스한 분위기가 자욱한 동막골은 현재 시점에서 볼 때 확실히 유토피아다. 예전에는 그러한 공동체적이고 협동적인 삶이 있었다는 점을 상기해보면 일정한 노스탤지어를 자극한다. 최근에는 자본주의 시스템의 비인간적 환경을 개선하기 위해 공동체의 복원을 도모한다는 점에서 동막골은 ‘오래된 미래’로 보인다.

▲ 우리 시대는 차갑고 기계적인 지도자보다 여기저기 세심하게 두루 살필 줄 아는 푸근한 지도자를 그리워하는지 모른다.

촌장님의 영도력은 어디서 나옵네까?

마을 사람들이 촌장의 말을 참 잘 듣는다. 촌장은 크게 윽박지르거나 강압적인 방식으로 마을을 이끌어가지 않는다. 그저 차분하게 이것저것 꼬인 일들을 풀어주면서 마을을 평온하게 이끌어가는 역할을 할 따름이다. 이러한 촌장의 모습이 너무 신기했던지, 인민군 장교는 촌장에게 묻는다. “촌장님의 영도력은 어데서 나옵네까?” 촌장은 말한다. “잘 맥였지.” 아주 재미있는 대사였다.

사실 그렇다. 학교 다닐 때 보면 마음으로 위한다면서 말로 때우거나 더치페이하자는 선배보다는 아무 말 없이 후배들 밥이라도 한 끼 더 사주는 선배가 더 신뢰감을 주었다. 약간 오해의 소지가 있는 대목이기는 한데, 후배들을 잘 챙겨주는 선배들이 반드시 여유가 많은 사람들은 아니었다. 후배들 뭐라도 사주고 나면 주머니에 동전 몇 개만 남긴 채 집으로 향했을 선배도 많았다.

이는 물질을 우선시한다는 것과 사뭇 개념이 다르다. 정신적 가치를 배제할 수 없으나 또한 인간은 물적 존재라는 사실, 어떠한 정감이나 상호관계 속에서 물질도 중요하다는 점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는 점이다. 그러니까 정신적인 것이든 물질적인 것이든 분리시켜 생각할 수 없다(어느 저명하고 부유한 노 교수의 마지막 강의 후 식사시간. “오늘 회비는 누가 걷나” 묻는 놀라운 합리성은 지금도 치명적 트라우마다!! ㅋㅋ).

촌장의 영도력은 돌봄에서 나오고 동막골은 그런 돌봄으로 운영되는 공간이다. 거기서는 아무도 내팽개쳐져 있지 않다. 정신건강에 문제가 있는 사람도 그 어떤 사람도 잘 어우러져 지낸다. 사실 그랬다. 예전엔 아무리 가난해도 사람들을 굶기지 않으려는 인심이 있었다고 한다. ‘작년에 왔던 각설이 죽지도 않고 또 왔네’ 하는 노랫가락은 거지들이 어데서 굶어 죽지 않았나 하는 걱정을 반영한다. 그런데 물질적으로 훨씬 풍요로워진 지금 비참하게 버려진 사람들이 속출한다는 건 우리를 지배하는 이 시스템에 어떤 문제가 없는지 돌아봐야 한다는 심각한 징후다.

▲ 동막골에서는 아무도 버려져 있지 않다. 살짝 정신이 아픈 처자이거나 그 누구이거나.

자본주의 경쟁 시스템에 지친 우리는 동막골을 그린다

자유시장경제가 우리를 행복으로 이끌어가리라는 믿음이 헛된 망상에 지나지 않고, 그것의 비인간적인 맨낯이 훤하게 드러나버리면서 사람들은 이제 다른 세상을 꿈꾼다. 이제는 ‘우애의 경제’를 이야기하고, 관계가 최고의 복지라는 점을 인식하기 시작했으며, 많은 사람들이 이 험악한 시스템을 넘어서기 위해 크고 작은 실천을 해나간다. 다시 마을을 만들고, 협동조합을 만들고, 새로운 그러나 인류의 지혜가 농축된 가치를 만들어내기 위해 분투하고 있다. 파국을 넘어서고 세상을 재건하기 위한 이런 노력의 도상에서 마르셀 모스(1872~1950, 프랑스의 인류학자이자 사회학자)의 ‘증여론’은 많은 아이디어를 제공해준다.

마르셀 모스의 <증여론>에서 ‘호혜성’과 ‘교환’ 두 개념은 지속적으로 강조된다. 그에게 상품거래와 선물거래의 근본적인 차이점은 호혜성을 수반하느냐의 여부다. 증여의 가장 중요한 핵심은 ‘후한 인심’이고, 주는 것이 이로운 것이며 이것은 현대사회에 다시 부활해야 한다는 것이다.

마르셀 모스는 아서 왕의 ‘원탁의 기사’ 이야기를 예로 들면서 자리의 높고 낮음이 없이 모두 둥그렇게 둘러앉았을 때 매번 승리할 수 있다고 보고,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 속의 지배적인 경제 논리, 이윤의 추구, 효용의 극대화, 경쟁 및 이기주의가 당연한 것이 아니라 지극히 최근에 만들어진 논리이며 인간 본성에 어긋나는 것임을 강조한다. 이런 주장은 살림의 경제학자 강수돌 교수의 <팔꿈치 사회: 경쟁은 어떻게 내면화되는가>에서도 다시 이야기된다. 강수돌 교수는 생존경쟁의 ‘사다리 질서’를 넘어선 ‘원탁형 사회’를 제기함으로써 경쟁사회를 넘어서는 대안을 제시한다.

마르셀 모스의 ‘증여론’은 동막골의 풍경과 딱 맞아떨어진다. 속도와 경쟁에 지친 영혼들이 치유를 받았고 사람다운 삶을 영위하게 해준 동막골이다. 이제 그들은 그 냉혹한 체제로 복귀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 그들이 동막골을 지키기 위해 목숨을 걸고 계란으로 바위를 깨는 무모한 심경으로 맞서는 이유다.

글을 마무리하는데 <민중의 소리> 기사 중 이런 대목을 발견했다. “<웰컴 투 동막골>은 동막골이란 유토피아를 통해 분단된 우리 민족이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보여줬다. 미군의 동막골 폭격을 막기 위해 남북 군인들이 서로 힘을 합치는 줄거리는 많은 사람들에게 큰 감동을 줬다.”

이렇게 민족적 관점에서 보면 가슴 뭉클해할 민족주의자들이 많겠지만, 내 보기엔 밋밋하고 다소 민족신파극처럼 느껴진다. 오히려 ‘우애’와 ‘호혜’의 경제라는 관점에서 볼 때 찡한 구석이 느껴진다. 다소 억지스러울지 몰라도 어차피 영화란 텍스트는 관객에게 무한히 열려 있으니까.

 
김지환 (파블로)
마포에서 나서 한강과 와우산 자락의 기운을 받으며 살아왔다. 역사를 공부했고 그중에서도 라틴아메리카 역사를 한참 재미있게 공부했던 시절이 있었다. 지금도 이 지역 이야기는 가슴을 뜨겁게 한다. 현재 출판사 편집자로 일하고 있다. 여전히, 좋은 책이 세상을 바꾼다고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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