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 부활 대축일]

예수께서 부활하셨습니다. 사순시기 동안 교회를 뒤덮고 있던 어둠과 슬픔의 자색을 벗어 던지고, 빛과 생명을 상징하는 흰 빛깔로 전례색을 갈아입었습니다. 또한 어두움의 그림자를 부활초의 환한 빛으로 모두 거두어 냈습니다.

사도 바오로는 우리 신앙이 부활에 그 기반을 두고 있다고 고백합니다. 죽은 이들의 ‘부활’이 없다면 우리의 복음 선포도 헛되고, 그 믿음도 헛되다(1코린 15,13-14 참조)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부활신앙이 우리 그리스도교 신앙의 핵심이라는 말입니다. 부활 신앙이 우리 그리스도교인의 존재 이유라는 뜻이기도 합니다.

우리 교회는 예수의 십자가와 부활을 한데 묶어 ‘파스카 신비’라고 부릅니다. 이는 예수의 십자가 수난과 영광스러운 부활은 서로 뗄레야 뗄 수 없는 관계라는 사실을 함축하는 말이기도 합니다. 파스카는 ‘지나가다’라는 뜻으로, 이스라엘 사람들이 이집트 종살이에서 벗어나 약속의 땅으로 향했던 ‘출애굽’ 사건을 의미합니다.

파스카는 이집트 종살이에서 자신들을 구원해 주신 하느님께 대한 개인적, 집단적 체험으로, 더 나아가 그들의 전 역사를 지배하는 역사적 체험을 고스란히 드러내는 이스라엘 사람들만의 독특한 개념입니다. 그리고 그 체험은 세대를 거듭해 신앙의 유산으로, 그리고 신앙의 본질로 이스라엘 사람들의 삶 안에서 기억되고 있습니다.

따라서 이스라엘 사람들에게 이 파스카는 대단히 중요한 축제입니다. 그리고 이를 과월절이라 부르며 커다란 명절로 경축하고 있습니다. 예수께서 잡히시던 날 밤에 제자들과 그토록 함께 거행하고자 고대하셨던(루카 22,15 참조) 최후의 만찬 역시 이 파스카 축제 저녁식사 자리였습니다.

교회에서 예수 부활을 파스카와 연관 지은 이유는 단지 ‘해방’이라는 공통점 때문만은 아닙니다. 출애굽 사건이 이스라엘 한 사람 한 사람, 개인의 체험을 넘어 이스라엘이라는 민족 공동체의 체험으로 승화되었듯, 예수의 부활 역시 신자 개개인의 개인적인 체험을 넘어 교회 공동체적인 체험이기 때문입니다. 또한 이는 개인과 공동체에 드러난 역사적 체험이기도 합니다.

정작 중요한 것은 이 역사적 체험을 되돌려 보면, 교회 공동체적 체험이 개인적인 부활 체험을 통해 더욱 역사 안에서 더욱 선명하게 드러나고 구체화 된다는 사실입니다. 개인의 체험들이 모여 공동체의 체험이 완성되고, 이는 다시 교회 전 역사에 걸친 체험으로써 현대판 ‘출애굽 사건’이 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부활에서 느끼는 개인적인 체험은 여러 경로를 통해 우리에게 다가옵니다. 하지만 부활에 대한 개인적인 체험이든, 공동체적인 체험이든 그 체험의 시작은 과연 어디일까요?

어찌 보면 매우 쉬운 질문인 것 같지만, 다른 한편에서 본다면 대답하기 만만치 않은 질문이기도 합니다. 그리고 또한 모범 답안이 없는 질문이기에 더욱 그렇습니다. 하지만 분명한 사실은 예수의 부활이 시작되고, 예수의 부활을 만날 수 있는 장소가 있다는 사실입니다.

바로 예수의 무덤입니다. 예수의 부활은 예수의 무덤에서 시작되었고, 그 무덤에서 제자들은 부활하신 예수를 만나 뵈었습니다. 수난과 고통이 상징인 ‘무덤’과 영광의 상징인 ‘부활’의 관계를 교회 전통에서는 이미 ‘파스카의 신비’라고 부르고 있습니다. 그래서 ‘무덤’과 ‘부활’은 뗄레야 뗄 수 없는 관계이기에, 부활체험에 있어서 무덤은 우리에게 무척 중요한 장소입니다.

예수의 제자들은 스승의 무덤으로 달려갔던 그 첫새벽에 가장 고통스러웠고, 가장 돌아가고 싶지 않았던 그곳에서 부활을 마주했고 또한 부활의 기쁨을 맛보았습니다. 때문에 오늘날 우리에게 예수의 부활 이야기나, 제자들의 부활 체험은 비단 2천여 년 전에 일어났던 옛 이야기일 수만은 없습니다. 현재 우리가 신앙하는 것의 본질이 부활에 달려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 또한 우리가 가장 고통스러워하는 곳, 가장 돌아가고 싶지 않은 곳에서 우리의 부활을 체험할 수 있습니다. 제자들이 그러했던 것처럼 가장 잊고 싶은 곳, 다시 되돌아가고 싶지 않은 곳에 우리가 부활을 체험하기 위한 예수의 무덤이 있습니다. 그곳이 개인의 것이든, 공동체의 것이든 바로 그 무덤에서 부활은 시작되고 그 무덤이 부활을 만나는 장소가 됩니다.

앞서 언급했듯, 공동체의 부활 체험은 부활에 대한 개인적인 체험에서 더욱 완성됩니다. 교회의 부활 체험은 우리 신자 개개인의 부활 체험에 기반을 두고 있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또한 교회가 부활을 기쁘게 맞이하기 위해서는 우리 개개인의 부활체험이 그만큼 중요하다는 것을 의미하기도 합니다.

가장 고통스럽고, 가장 돌아가고 싶지 않은 곳, 즉 예수의 무덤은 우리 사회 곳곳에 존재합니다. 하지만 그 모든 곳에서 부활을 만날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왜냐하면 예수의 제자들처럼, 부활은 우리가 그곳을 향해 내달려야 비로소 부활은 시작되고 그곳에서 부활을 대면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대한문이든, 강정이든, 밀양이든, 송전탑 위든...또는 무의탁 가정에서든, 불우한 이웃과 함께든, 그 어디든 예수께서 아파하는 곳에서 부활은 시작되고 부활을 만날 수 있는 곳입니다.

여러분은 부활을 체험하셨습니까? 부활하신 예수와 이렇게 인사를 나누어 보셨습니까?
“부활하신 예수님, 반갑습니다.”

 
 

김홍락 신부 (가난한 그리스도의 종 공동체)
교부학과 전례학을 전공했고, 현재 필리핀 나보타스(Navotas)시 빈민촌에서 도시빈민들과 함께 생활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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