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병우의 그림 에세이]

 
<후쿠시마 이후의 삶>이라는 책은
한홍구 교수와 재일역사학자 서경식 씨,
다카하시 데쓰야라는 일본인이 함께 쓴 대담집이다.
두 주 전 평화박물관에서 저자들의 대담이 열렸다.

후쿠시마가 우리에게 주는 교훈과 이후의 삶을 어떻게 살아야 할지
성찰하고 모색하는 자리였다

한홍구 교수는 요즘 유행하는 힐링에 대하여
“구조적 문제들을 해결하고 난 후에야 힐링을 말해야 한다”며
가장 큰 문제는 ‘타인의 고통에 대한 감수성’이라 했다.
후쿠시마 사람들의 고통에 우리는 얼마나 연민하고 있을까?

서경식 씨는 자신을 디아스포라로 규정하면서,
유태인 홀로코스트를 많이 언급했다.

어쩌면 인간성의 파탄과 인류의 위기라는 측면에서 후쿠시마와 홀로코스트는
맥을 같이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홀로코스트만큼 인간의 잔인성을 보여주는 것이 있을까?
홀로코스트가 인간을 대상화하고 도구화하듯,
핵 발전과 그에 따르는 공고한 메카니즘도 인간을 철저히 기만하고 무시한다.

홀로코스트에서 살아남은 빅터 프랭클이라는 정신과 의사는
“어떤 혹독한 환경도 내가 허락하지 않는 한 나의 존엄성을 무너뜨릴 수 없다”고 선언했다.
그는 종전 후 고통에서 의미를 찾는 로고테라피라는 정신요법을 창시해
많은 사람들에게 도움을 주었다고 한다.

그런가하면 어떤 이는 영화 <안네의 일기> 중에
나치 치하의 혹독함 속에서 가족을 잃고 자신마저 죽어가면서
‘나는 그래도 인간의 선함을 믿는다'라고 말한 안네의 마지막 독백은
거짓이라고 말했다나?
그건 마치 이승복 어린이가 처참하게 학살당하면서
'나는 공산당이 싫어요'라고 외쳤다는 것처럼
어딘가 날조된 냄새가 난다.
어린 소녀가 그런 상황에서 정말 그런 말이 나올까?

빅터프랭클 같은 이가 있었던 반면 프리모 레비 같은 사람도 있다.
수용소에서 겪었던 참혹한 상황을 증언하려 많은 저술과 강연활동을 했던 레비는
어느 날 문득 자살을 하고 만다.
수용소에서 살아남은 많은 이들이 종전 후 지옥을 벗어난 자유로운 상황에서
뜬금없이 자살을 선택했는데
그건 왜일까?
대담 후 질의응답 시간에 물어보고 싶었는데 결국 질문하지 못했다

치클론B의 맹독 가스에 사람들이 고통에 몸부림치며 죽어가는데
바로 옆 건물에서는 실내악단이 바흐를 연주하는 가운데 우아하게 만찬을 즐기는 것
바로 얼마 전, 홀로코스트의 그 지독한 살육이 있었는데도
과거에서 아무것도 배우려하지 않는 기억상실증의 현대인들에 대한
절망감 때문이 아니었을까?

진짜 큰 고통은 내가 겪은 지옥보다 나의 증언을 아무도 귀담아 듣지 않는 것
그리고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는 것
내 고통이 무의미하게 되는 것이 아닐까?

포스트후쿠시마는 있는가?

 

   
 

윤병우(화가). 공은 국문학이지만 20여년 동안 그림을 그려왔다 .
4대강답사를 처음으로 사회문제에 관심을 갖게 되었고 탈핵,송전탑, 비정규직,정신대할머니 등 사회적인 이슈가 있는 현장을 다니며 느낀 것과 살아가면서 떠오르는 여러가지 생각들을 글과 그림으로 표현하고 있다.


<가톨릭뉴스 지금여기 http://www.catholicnews.co.kr>
 

저작권자 © 가톨릭뉴스 지금여기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