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중해 파노라마-13]

 대추야자나무 우거진 숲길에서 당나귀를 몰고 오던 베르베르인 소년 ‘카미스’는 학교에서 정규교육을 받지는 않았으나, 독학으로 열심히 공부한 덕분에 상당히 능숙하게 영어를 구사하고 있었다. 때문에 시와를 방문한 외국인 여행자들은 대부분 카미스의 안내를 받으며 인근의 유적지를 둘러본다고 했다.

일전에 북인도에서 파키스탄으로 향할 때 국경지대의 번거로운 검문검색을 피하기 위해, 잠시 현지인 복장을 할 때 사용하고는 배낭 깊숙이 넣어두었다가 다시 꺼낸 나의 가짜 콧수염을 한사코 달라고 졸라대는 카미스와 진땀이 나도록 실랑이를 벌이다보니, 저 멀리 갈대가 우거진 소금호수로부터 한 쌍의 유럽인이 오카리나(흙 피리)를 불면서 정답게 걸어오고 있었다.

모로코에서 온 이 유쾌하기 그지없는 부부는 캠핑카를 몰고 리비아와 사하라사막 일대를 경유하여, 얼마 후에 배를 타고 홍해를 건너 사우디아라비아를 방문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몇 마디 간단한 인사말을 나누다가, 즉석에서 의기투합한 우리는 카미스의 당나귀 수레를 타고 며칠 동안 시와 오아시스 지역을 함께 순례하기로 했다.

다음날 새벽, 당나귀 울음소리가 요란하게 새벽을 알리는 샬리(Shaali) 구시가지 언덕에서 우리는 다시 만났다. 시와어로 ‘마을’을 의미하는 샬리는, 고대로부터 이 마을에 살고 있던 이집트의 소수부족인 시와인들이, 주변의 약탈자로부터 자신들을 보호하기 위하여 소금과 갈대 이파리를 섞어서 만든 진흙벽돌로 겹겹이 담을 쌓아올린 견고한 성채도시이다.

고대의 어느 한때 며칠 동안 쉬지 않고 내린 폭우로 인해 진흙으로 지어놓은 주거지가 절반쯤 무너져 내리는 불상사가 발생했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주거지를 다른 곳으로 옮기지 않고 이 성채 안에 모여 살던 시와 토착민들은, 1820년대 이후로 비로소 성채 밖으로 나와 살기 시작했다. 현재 대다수가 이슬람교를 신봉하는 베르베르인들로 구성되어 있는 시와 오아시스 주민들은, 문자는 따로 존재하지 않지만 아랍어가 아닌 그들만의 고유한 토속방언을 별도로 사용하고 있다.

▲ 샬리 언덕에서 바라본 시와 오아시스 전경. ⓒ수해

카미스의 능숙한 안내를 받으며 가파른 골목길을 몇 구빈가 돌고 돌아서 샬리 언덕에 올라가보니, 눈부신 아침 햇살이 가닿는 곳마다 한 송이 붉은 장미꽃으로 피어나는 샬리 구시가지의 허물어진 진흙벽돌집과, 울창한 올리브와 대추야자나무 숲 너머로 드넓게 펼쳐진 소금호수에 둘러싸인 시와 오아시스 전경은, 한마디로 압권이었다.

반야부 경전의 골수를 응축해 놓은 <금강경>에 보면, ‘눈으로 보는 현상적인 경계는 모두 허망’한 것이라고 하였지만, 낯선 길을 걸어가다가 가끔 이렇게 전혀 예기치 않은 장면과 마주치게 되면, 어떤 알 수 없는 강한 고압기류가 회오리 바람처럼 밀려오면서, 평소에 이성(理性)으로 애써 통제해놓았던 감성(感性)의 영역을 사정없이 흔들어 놓는다.
한동안 사막과 오아시스가 한데 어우러져서 연출하는 놀라운 풍광의 세례를 듬뿍 받으며, 잠자코 호흡을 가다듬고 명상을 하다가 보니, 카미스와 모로코의 여행자들이 그만 일어나서 시내 중심가로 내려가자고 말했다.

중세시대에 이슬람 도시의 방어를 위해 진흙벽돌과 대추야자나무를 이용하여 성채와 주거지역을 교묘하게 하나로 연결해놓은 샬리 구시가지의 카스바(Casbah)구역을 돌아 나와, 인근의 토속음식점에서 간단한 아침식사를 나누고, 다시 카미스가 모는 당나귀 수레에 올라 아구르미 옛 마을 중앙언덕에 있는 신탁 신전을 찾아 나섰다.

사막 곳곳에 산재해 있는 광천에 뛰어들어 수영을 즐기는 꼬마들의 함성이 요란하게 울러 퍼지는 아구르미 마을을 지나다보니, 고대에 신탁 신전에 이르는 길목에 세워졌던 여러 개의 성소 중의 하나였다고 전해지는 ‘움무 우바이다 신전(The Temple of Umm Ubayda)’ 유적지가 나타났다.

‘입을 벌리는 의식’이라고 부르는 미라를 만들 때의 최초의 의식과정이 세밀하게 묘사되어 있는 부조(浮彫)로 유명한 이 폐허의 신전은, 18세기 말엽까지는 건물전체가 온전히 보전되어 왔으나 1811년에 발생한 지진으로 건물 대부분이 무너져 내리고, 한쪽 벽면만 온전하게 남아있었다. 지진으로 인해 무너져 내린 석재는 1896년 시와 지방정부에서 경찰서 등 일부 관공서와 주택 공사에 사용했다고 하는데, 현재 남아있는 일부 벽면의 명문(銘文)과 부조만으로도 역사적 가치가 매우 높아 보였다.

▲ 움무 우바이다 신전의 명문(銘文)과 부조(浮彫). ⓒ수해

당나귀 무리가 모여 한가로이 풀을 뜯는 들판 한가운데 무관심하게 방치되어있는 움무 우바이다 신전을 쓸쓸히 돌아 나와, 문득 고개를 들어 좌우를 한 바퀴 둘러보니, 저 멀리 아구르미 마을 중앙 언덕에 우뚝 서 있는 신탁 신전의 정경이 어렴풋이 시야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시와 중심가에서 동쪽으로 약 4㎞ 거리에 있는 그리스풍의 도리스 양식(Doric-style)으로 지어진 이 신탁 신전은, 원래 고대 이집트 제26왕조 파라오 아흐모세 2세(Ahmose II, BC 570년~BC 526년 재위)통치기에, 아몬 신으로부터 신탁을 받기 위해 세웠던 성소이다.

고대의 어느 한 시기에 이 신탁 신전을 중심으로 마을 주민들의 집단주거지가 형성되었던 흔적을 지금도 생생하게 입증해주는 이슬람 모스크와 공동우물을 비롯하여, 여기저기 멧돌과 돌절구 등이 잔뜩 널려있는 아구르미 언덕에서 내려다보는 사막의 소금호수 정경은 눈이 부시도록 아름다워 보였다. 그러나 육중한 대리석 석재를 이용하여서 건립해 놓은 아몬의 신탁 신전은, 게벨 엘 마우타의 고분에서 보았던 것처럼 포탄으로 인한 상흔이 구석구석 짙게 남아 있었다.

현재 남아있는 유적의 상태로는 도저히 화려했던 그 옛날의 전성기를 반추 해 볼 수 없을 정도로, 형편없이 초라하게 일그러진 모습을 하고 있는 신탁 신전의 가파른 언덕에 서서, 아구르미 호수 위로 저무는 금빛 노을을 망연히 바라보다가, 카미스의 초대를 받고 파트나스 섬으로 향하는 길목에 자리한 그의 작은 오두막을 방문하게 되었다.

▲ 아몬의 신탁 신전. ⓒ수해

클레오파트라의 광천과 파트나스 섬의 드넓은 소금호수를 돌아 대추야자나무 우거진 어느 한적한 숲 속에 세워진 카미스의 작은 오두막 안으로 들어서자, 햇살이 조용히 스며드는 네모난 격자창 아래서 파리한 얼굴로 병상에 누워있는 어린 딸을 간호하며 십자수를 놓고 있던 카미스의 어머니가 느닷없이 방문한 손님을 발견하고는 몹시 반색을 하면서, 당장 팔을 걷어 부치고 부지런히 음식을 준비하기 시작했다.

허술하기 그지없는 외양과는 달리, 막상 안으로 들어서 보니 생각보다 훨씬 견고하고 아늑해 보이는 진흙집 내부에는, 일체의 장식이 배제된 채 오로지 이슬람 모스크가 그려진 걸개그림 한 장만이 달랑 걸려 있었다.

저녁 내내 온갖 정성을 다 하여서 손님접대에 열중하던 카미스의 어머니는, 서서히 밤이 깊어지자 조심스럽게 우리들에게 한 가지 부탁을 해 왔다. 카미스의 통역으로 방금 그의 어머니가 한 말을 들어보니, 오늘 우리가 카미스의 집을 방문한 기념으로, 오랫동안 원인모를 병으로 시름시름 앓고 있는 그녀의 어린 딸을 위하여, 각자 한 마디씩 따뜻한 위로의 메시지를 들려주면 좋겠다는 내용이었다.

카미스의 이야기를 듣고 나서, 우리는 각자 기억의 숲을 더듬으며 바로 지금 이 순간에 어울릴만한 적절한 기도문을 떠올리고 있는데, 카미스가 나에게 살그머니 다가오더니 귓속말로 속삭였다. 실은 그 어떤 다른 기도문을 찾으려고 하지 말고, 어제 당신이 숲길에서 홀로 춤을 추면서 몇 번이나 반복해서 불렀던, 바로 그 노래를 다시 들려주면 좋겠다고.

놀랍게도 영리하기 그지없는 베르베르인 소년 카미스는, 어제 내가 외딴 숲길에서 홀로 춤을 출 때 불렀던 시크릿 가든의 노래 ‘you raise me up’을 정확하게 기억하고 있었다. 그래서 잠시 망설이다가 카미스에게 차근차근 설명을 해 주었다.

여기서 ‘나를 상승시키는(raise me up) 존재로 등장하는 당신(you)’은, 방금 우리가 다녀온 신탁 신전의 이집트 전통 신 ‘아몬’이거나 이슬람교에서 신봉하는 예언자 ‘무함마드’, 혹은 그 밖에 세상의 그 어떤 존재라고 해도 좋다. 우리가 진정으로 마음을 다해 누군가를 믿고 사랑한다면, 특정 종교나 국경이라는 인위적인 경계에 구애됨이 없이, 우리는 누구나 서로가 서로에게 상대방의 의식을 무한히 상승시켜 주는 소중한 존재로 작용 할 수가 있다.

▲ 사막의 소금호수. ⓒ수해

모로코의 나그네들이 연주하는 맑고 그윽한 흙 피리 선율에 맞춰 혼신을 다해서 부르는 나의 노래에 담긴 의미를, 카미스는 그의 어린 누이와 어머니에게 열심히 시와어로 번역해서 들려주었다. 그러자, 지금 이렇게 흙 피리를 불고 노래를 부르는 우리가 누구인지, 모로코와 한국이라는 나라가 지구의 어디쯤  있는지 도무지 가늠조차 하지 못하면서도, 사랑스러운 카미스의 가족들은 놀랍도록 차분하고 경건한 자세로, 낯선 길손이 전하는 사랑의 메시지에 고즈넉이 귀를 기울였다.

내 영혼이 힘들고 지칠 때
괴로움이 밀려와 나의 마음 무겁게 할 때
나는 여기서 고요히 당신을 기다리렵니다
당신이 내 곁에 오실 때까지

당신이 나를 일으켜 주시기에
나는 산 위에 우뚝 서 있을 수 있고
당신이 나를 일으켜 주시기에
나는 폭풍우의 바다도 건널 수 있답니다

당신이 나를 떠받쳐줄 때
나는 강인해질수가 있답니다
당신은 나를 일으켜
나보다 더 큰 내가 되게 합니다.
 

 
 
수해 (기행문학가)
운문사 강원을 졸업하고, 오랫동안 세계 여러 나라의 명상사원과 문화유적지를 순례하다가, 동국대학교 대학원 철학과 박사과정을 수료하였다. 지은 책으로 시집《산 두고 가는 산》과 동아시아 기행 에세이《예정된 우연》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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