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활하는 신학-이미영]

일하는 여성이 퇴직하게 되는 세 번의 고비가 있다고 한다. 임신과 출산 때, 아이가 유치원이나 초등학교에 들어갈 무렵, 아이가 고학년 사춘기에 들어설 때. 내 주위 지인 중에서도 그렇게 세 번의 고비를 넘기지 못하고 일을 그만둔 이들이 있다.

일하는 여성의 퇴직 고민, 일과 가정생활 병행의 어려움

10여 년 전 교회기관에서 일하던 A는 임신 중반에 일을 그만두었다. 평소에도 몸이 약했던 A는 임신에도 아랑곳없이 홀몸으로도 감당하기 어려운 일이 과중하게 쏟아지고 스트레스를 많이 받는 상황이 이어져, 임신 중반에 들어서면서 유산의 위험이 있다는 의사의 경고를 들었다. 병가나 휴직을 내고 조심해야 한다는 의사의 진단서를 들고 직장에 요청했지만, 맡은 일을 대신할 임시직을 고용하기 어렵고 공백시 다른 동료가 과도한 업무를 떠맡을 수밖에 없다는 이유로 거부당했다. 생명은 소중한 것이고 자녀를 많이 낳으라고 누누이 강조하던 교회에서 직원에게 이럴 줄은 몰랐다며 눈물로 호소하였지만, 아기가 당장 너무 위험한지라 제대로 싸워보지도 못하고 결국 퇴직을 하고 말았다. 옛날에는 교회기관에 입사하는 여성에게 결혼이나 임신과 동시에 퇴직하겠다는 서약서를 쓰게 했다는 말이 헛말이 아니구나 싶었다. 참고로 이건 10년 전이라는 과거형 이야기다. 지금은 모성보호를 위한 법이 강화되어 그런 교회기관은 없을 것이라 믿는다.

 ⓒ한상봉 기자
대기업에 다니던 유치원생 엄마 B는 올해 직장을 그만두었다. 작년 가을부터 6개월간 육아휴직을 썼는데, 다시 복직하려 하니 애들이 그 사이 많이 큰 것도 아니고 또 얼마 안 있으면 아이가 초등학교에 들어갈 텐데 더 손길이 많이 필요할 거 같아 그냥 그만두었다고 했다. B는 아이들을 모두 어린이집이나 유치원에 보내고 있고, 부모가 직장에서 돌아올 때까지 몇 시간은 같은 아파트 단지에 사는 할아버지 할머니께서 잠시 봐줄 수 있을 거 같았는데 의외였다. 알고 보니 시부모님은 성당 활동을 열심히 하시느라 일찌감치 아이들을 봐줄 수 없다고 선언하셨다 한다. 그리고 아이들의 어린 시절에는 엄마가 아이들을 키우는 것이 정서적으로 안정된다고, B에게 직장을 그만두는 것이 좋겠다고 계속 말씀하셨다는 것이다.

B는 그러면서 “결국 이렇게 그만둘 거였으면, 멀리 종일반이 있는 유치원에 보낼 것이 아니라 가까운 성당 유치원에 아이를 보낼 걸 그랬다”고 아쉬워했다. 우리 동네 성당 유치원은 인성교육이나 친환경 급식 등 여러모로 좋지만, 종일반이 없어 일하는 엄마들은 일찍 귀가하는 아이들을 돌봐줄 사람이 없다면 결코 보낼 수가 없다. 원장 수녀님께서도 누누이 말씀하신다. 아이들은 엄마가 키워야 한다고.

일하는 여성은 자식보다 자아 실현이, 신앙보다 돈이 중요한 사람인가?

20년 동안 직장에 다녔던 C도 올해 직장을 그만두었다. 사춘기를 앞둔 아들이 정서적으로 불안한 상태를 보이며 엄마를 애타게 필요로 했기 때문이다. 일하느라 승진시험 준비하느라 늘 아이를 뒤로 미뤄둬서 아이가 애정결핍 증세를 보이는 것 같다며 자책감으로 힘들어하다가, 회사에서 명예퇴직 신청을 받자 큰 결심을 하고 그만두었다. C는 방학 동안 아이와 여행도 가고 많은 시간을 함께 보내면서 점점 안정되는 모습을 보이는지라 이제 좀 안심이 된다고 했다. 그리고 신앙생활을 더 열심히 할 수 있어서 좋다고 했다. 퇴직하고 나서 평일미사도 자주 가고 본당 자모회 회장도 맡으며 더 바빠졌다며, 회사에서 보내던 시간이 성당에서 지내는 시간으로 바뀌었다고 한다. 너무 좋다며 주위 일하는 엄마들을 만날 때마다 일을 그만두라고, 돈 버는 것보다 하느님께 봉사하는 게 더 의미 있는 일이라며 열심히 설득한다.

사순절 동안 ‘십자가의 길’ 묵상하면서, 나는 예수님께서 세 번이나 넘어지시던 그 고난의 길을 한국의 일하는 여성들도 걷고 있는 게 아니겠느냐는 생각이 불현듯 들었다. 최근 한국 사회는 노동현장에서 남녀 차별을 없애고, 모성을 보호하며, 돌봄을 사회화하는 여성 정책을 세워 여성이 일과 가정생활을 병행할 수 있는 방향으로 나가고 있다. 물론 정책과 현실의 괴리가 여전히 크기 때문에 젊은 여성들이 결혼이나 출산을 미루고 꺼리기는 하지만, 그래도 우리 사회는 일하는 여성들의 어려움을 인식하고 풀어가려고 노력 중이다.

그런데 일하는 여성들은 교회 안에서 때론 죄인과 같은 심정이 되곤 한다. 일하는 여성이란 자식보다 자아실현이 더 중요한 사람, 신앙보다 돈이 더 우선인 사람처럼 여기는 인식이 은연 중에 느껴지기 때문이다. 여성들이 일과 가정을 같이 하려는 것이 정말 욕심일까? 더 많이 벌고 싶은 돈 욕심이 아니라 정말 생계를 위해 저임금 비정규직이라는 열악한 노동환경에라도 다시 일할 수밖에 없는 중년 여성들이 정말 신앙보다 돈을 우선시하는 것일까?

현대 레알 사전에 정의를 묻고 싶다. 교회에게 일하는 여성이란?
 

이미영 (발비나, 우리신학연구소 연구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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