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우석 신부가 개설한 페이스북 그룹 ‘함께 편지 써요’
힘겨운 이웃에게 진심 담은 손 편지로 위로와 희망 전해

직장인 최미경 씨는 최근 우체국에 가는 일이 잦아졌다. 주로 알록달록한 편지나 엽서를 보내고 때로 책과 간식이 든 소포를 보내기도 한다. 우편물에 들이는 정성을 봐서는 오랜 친구나 군대 간 연인에게 보내는 게 아닐까 싶지만, 사실 최 씨는 편지를 받게 될 사람들을 직접 만나 본 적이 없다. 이름도 모르고 성도 모르지만 그는 편지에 자신의 마음을 솔직하게 담았다. 최 씨의 편지를 받은 이들은 바로 제주 강정마을의 지킴이와 주민, 쌍용자동차 해고 노동자와 그 가족들, 콜트 · 콜텍 노동자들이었다.

▲ 김준희 씨가 그린 ‘함께 편지 써요’ 그림(왼쪽)과 게시판에 올라온 편지 인증샷 (사진/페이스북 ‘함께 편지 써요’ 그룹)

최 씨가 이들에게 직접 손으로 쓴 편지를 보내기 시작한 것은 페이스북에 있는 ‘함께 편지 써요’ 그룹에 초대된 후부터다. 지난 1월에 만들어진 ‘함께 편지 써요’ 페이스북 그룹은 손으로 편지를 쓰는 이들의 모임이다. 누구나 편지를 보낼 수 있지만 편지를 받는 대상은 두 부류다. 권리를 빼앗기고 고통 받는 사람, 또는 누군가의 권리를 빼앗은 사람이나 기관. 2주에 한 번 게시판에서 의견을 모아 편지 보낼 곳을 정한다. 3월 중순부터 편지를 받고 있을 이는 제주 강정마을에서 해군기지 건설 저지 활동을 벌이다 법정 구속돼 교도소에 수감 중인 양윤모 씨다.

글로 배운 ‘가난한 이들에 대한 우선적 선택’
손 편지 쓰며 직접 실천에 옮겨

‘함께 편지 써요’ 그룹을 만든 현우석 신부(의정부 교구)는 “가난하고 힘없는 사람들을 매일 찾아가 함께하지는 못하지만 마음을 직접 표현하기 위해 편지를 쓴다”고 말했다. 그에게 편지쓰기는 교리로 배우고 구호로만 외쳤던 ‘가난한 이들에 대한 우선적 선택’이라는 명제를 직접 실천하는 행동이다. 현 신부가 편지쓰기를 시작한 계기는 지난 연말 치러진 대통령선거였다.

“대통령 선거의 과정과 결과를 보면서 우리나라의 민주주의는 아직 어설프다는 생각을 하게 됐어요. 성숙한 민주주의를 사는 시민이라면 적극적으로 자기 의사를 표현하고 권리를 주장해야 하는데, 우리는 아는 사람끼리 만나서 토론하고 비판하는 것만으로 만족한 것은 아니었나 반성이 들었죠.”

현 신부는 적극적인 의사표현 방법을 고민하다 편지쓰기를 떠올렸다. 곧바로 평소 이용하던 페이스북에 그룹을 개설했다. 첫 번째 편지를 보낼 곳은 제주 강정마을로 정했다. 반응은 폭발적이지는 않았지만 기대 이상이었다. 현 신부의 친구이자 대안학교 ‘도담학교’의 교장 김준희 씨는 동료 교사와 학생들과 편지를 쓰고 지인들을 그룹에 초대했다. 미국 마이애미에 거주하는 조재현 씨는 남편과 함께 엽서를 써서 강정마을로 국제우편을 보냈다. 하나 둘 편지쓰기에 참여하는 이들이 늘어나 그룹에 속한 이들은 두 달 사이 80여명으로 늘어났다.

쓰는 사람, 받는 사람 모두에게 위안
편지 쓰기만으로 그치지 않을 것  

편지쓰기가 두 달 남짓 이어지면서 편지를 받은 이들에게 답장을 받는 일도 생겼다. 한 그룹원은 제주 강정마을 지킴이가 강정 앞바다를 찍은 사진과 시를 답장으로 보내왔다고 게시판에 인증샷을 올렸다. 콜트 · 콜텍 농성장을 자주 방문하는 서영섭 신부(꼰벤뚜알 프란치스코회)는 콜트 · 콜텍 노동자들이 문화제에서 ‘함께 편지 써요’에서 받은 편지를 낭독하는 사진과 함께 고맙다는 말을 남겼다.

▲ 최미경 씨가 콜트 · 콜텍 노동자들에게 보낸 편지(왼쪽)와 문화제에서 최미경 씨의 편지를 읽는 노동자들 (사진/페이스북 ‘함께 편지 써요’ 그룹)

최미경 씨는 “내가 보낸 편지를 문화제 때 읽고 또 읽었다는 말을 전해 듣고 정말 감사한 마음이 들었다. 오히려 내가 더 큰 위로를 받은 것 같다”고 말했다. 최 씨는 성당에서 사회교리 강좌를 수강하고 대한문 미사에 참여하는 등 이전에도 “우리가 보지 못하는 사각지대”에 관심이 있었지만, 편지 쓰기를 하면서 자신이 더 적극적으로 변하고 있음을 느낀다고 한다. 최근에는 다음 편지를 어디에 보내면 좋을지 틈틈이 자료를 찾아보기도 한다.

“편지를 써야할 곳이 이렇게 많을 줄 몰랐어요. 매일 현실에 떠밀려서 직장생활을 하다보면 제 주변 밖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신경 쓰기가 어렵잖아요. 솔직히 편지를 쓰는 것이 저에게 위안이 되고 있어요. 편지를 쓸 때마다 면죄부를 받는 기분이랄까.”

현우석 신부는 “손으로 편지를 쓰면 쓸수록 마음이 열린다”며 편지쓰기가 기도와 닮았다고 말했다. 누군가를 위해 기도를 할 때, 기도 횟수가 늘어날수록 그의 상황을 공감하고 이해하는 폭과 깊이가 더해지는 것처럼 편지쓰기도 그러하다는 것이다. 그는 편지쓰기가 공감을 불러일으키는데 그치지 않고 “또 다른 일을 할 수 있는 디딤돌이 될 것”이라고 기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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