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님 수난 성지주일

 
예수께서 예루살렘으로 입성하시기 전,
올리브 산 근처 벳파게와 베타니아에 당도하셨다.
그리고 제자들을 맞은 편 고을로 보내 어린 나귀 한 마리를 구해오게 하셨다.

예수께서는 어린 나귀를 타고 올리브 산에 오르셨다.
이 산만 넘으면 예루살렘이다.
예수께서는 이제 예루살렘에서의 마지막 여정만을 남겨두고 계셨다.
아버지의 뜻을 이루기 위해 지금까지 힘겹게 걸어 온 이 길,
그 모든 것은 이 마지막 여정을 위한 것이었을지도 모른다.

올리브 산 정상에 거의 다다르자
예루살렘의 전경이 조금씩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얼마나 기다렸던 순간이던가!
올리브 산에서 내려다보이는 예루살렘의 전경이
예수께는 참으로 가슴 시리게 다가왔을 것이다.

자신이 겪어야 할 수난이 기다리고 있는 곳,
십자가의 고통을 감내하며 결국 죽고 묻혀야 할 곳,
이제 곧 예루살렘이다.

예수께서 올리브 산의 내리막길에 접어들자
군중들이 외치기 시작했다.
“주님의 이름으로 오시는 분, 임금님은 복되시어라.
하늘에 평화, 지극히 높은 곳에 영광!”(루카 19,38).

전쟁의 임금은 말을 타고 등장하고,
평화의 임금은 나귀를 타고 온다고 했던가?

나귀를 탄 예수를 향해 군중들은 자신들의 겉옷을 길에 펼쳐 놓고,
손에 든 종려나무 가지를 흔들며 예수를 반기고 있다.
그러나 이들은 예수께서 마지막으로 걸으셔야 할 길을 모른다.
지금까지 보고 들었던 기적 이야기에 스스로 흥에 겨웠을 뿐.

그래서였을까?
예수께서는 예루살렘에 가까이 이르시어 눈물을 흘리셨다.
“오늘 너도 평화를 가져다주는 것이 무엇인지 알았더라면...!” (루카 19,42)
예수께서 가져다주실 평화와는 거리가 먼 예루살렘이다.

파스카라고도 하는 무교절 축제날이 다가왔다.
예수께서는 제자들과의 마지막 저녁식사를 준비하고 계셨다.
3년 동안 수많은 역경을 헤치며
이 자리까지 함께 해온 제자들을 위한 자리다.
그래서 당신의 몸과 피를 떼어 제자들에게 나누어 주셨다.
“이는 내 몸이다. 그리고 내 피다.”

그런데,
사랑스런 제자들도
나귀타고 오시는 예수를 환호로 맞이했던 군중들과 별반 다를 것이 없어 보인다.
이들도 결국 예수의 마지막 여정에서
예수를 버리고 자신들의 길을 갈 것이다.

결국,
그 동안 살림을 도맡아 보았던 가련한 제자 유다는
‘은 서른 냥’에 눈이 멀어 스승을 팔아넘기고 말았다.

예수께서 자신에게 닥쳐올 고난에 두려워 떨며
올리브 산에서 피땀을 흘리며 기도하는 동안,
제자들은 단 한시도 깨어있지 못하고 잠이 들었다.

예수께서 붙잡혀 대 사제의 집으로 끌려가실 때,
예수를 모른다고 세 번씩이나 부인한 베드로는
새벽닭이 울고서야, 자신의 잘못을 깨닫고 밖으로 나가 슬피 울었다.

예수의 마지막 길을 함께 한 이들은
예수께서 그토록 사랑하시던 제자들이 아니었다.

칼과 몽둥이를 들고 예수를 붙잡으러 달려드는 병사들,
두 눈을 부릅뜨고 잡아먹을 듯이 몰아대는 대사제들과 원로들,
십자가에 못 박아 죽이라고 외쳐대는 군중들,
예수의 죽음에 책임을 회피하려는 유대 총독 본시오 빌라도,
예수를 채찍질 하며 낄낄대고 조롱하는 권력의 하수인들.
한 자락 남은 속옷마저도 제비를 뽑아 가져버린 군사들.

무거운 십자가에 짓눌린 험난한 언덕길,
한 걸음 한 걸음이 죽음보다 더 한 고통이었을 그 마지막 길에,
아무 힘없는 이들이 예수를 바라보며 통한의 눈물을 흘렸다.
그들의 모습이 그나마 예수에게 위안이 되었기를...

십자가를 매고 가는 길목마다 예수를 지켜보며 흐느껴 울던 여인들,
무거운 십자가를 함께 들어준 키레네 사람 시몬,
자신도 십자가에 매달릴 처지임에도 예수를 위로하던 한 죄수,
그리고 예수를 묻어 준 아리마태아 사람 요셉.

예수의 마지막 길에 예수께서 그토록 사랑하던 제자들은 없었다.
그리고 오늘 다시 맞이하는 주님 수난 성지주일.

그날, 흙먼지 이는 골고타 언덕에 높이 들려 있던 초라한 십자가를
우리는 꽃으로 화려하게 수놓았다.

초라한 몇몇이 눈물로 지켰던 그 자리는
더 없이 화려한 군중의 행렬이 됐다.

피와 땀으로 얼룩진 예수의 머리도 화관으로 가리웠다.
예수의 삶과 죽음이 꽃에 가려 보이지 않는다.

아마 예수의 십자가를 애써 외면했던 우리 자신이 부끄러워
선홍빛 꽃잎들을 십자가에 아로 새겼는지도 모른다.

다시 예수의 십자가에서 꽃들을 치워 내야 할 때다.
화관을 치우고 고통으로 떨궈진 머리의 가시관을 바라보아야 한다.
발가벗겨진 예수의 십자가를 우리의 온 삶으로 끌어안아야 한다.

오늘은 주님 수난 성지주일이다.

 
 

김홍락 신부 (가난한 그리스도의 종 공동체)
교부학과 전례학을 전공했고, 현재 필리핀 나보타스(Navotas)시 빈민촌에서 도시빈민들과 함께 생활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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