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라의 마을에서 살아남기-24]

어떤 아메리카 인디언 추장은 ‘어떻게 땅을 사고판단 말인가’라며 탄식을 했다지만, 시골에 살아보니 적어도 먹을거리를 자급할 정도의 땅은 가지고 있어야 한다는 생각이 든다. 내 땅이 아니고는 내 방식대로 농사를 마음 놓고 지을 수도 없고, 내 방식대로 짓는 농사로 일 년 임대료를 감당하는 것도 쉬운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우리도 지난해 문중 소유 밭을 700여 평 정도 빌려서 농사를 지었는데, 땅을 트랙터로 갈지 않고 괭이로 이랑을 만들어가며 일을 했더니 마을 분들의 수군거림이 대단했다. 게다가 지난해에는 사랑방 짓는다 지붕 고친다 일이 많아서 밭의 절반 이상이 풀밭이었으니 저래가지고 무슨 농사를 짓는다고 하나 더욱 말들이 많았다. 그 밭에서 겨우 우리 식구 먹을 만큼의 옥수수, 땅콩, 수수, 팥, 녹두 등을 수확했으니 밭농사로 일 년 임대료 십 만원어치 벌이가 나오지 않은 것은 물론이고 말이다.

 ⓒ박홍기
우리 신랑은 한 해 농사를 지어보더니 올해 이 땅을 살 수 없다면 농사를 짓지 않겠다고 선언했다. 유기농 농사는 땅 만드는 농사인데 빌린 땅으로 농사를 짓는 것은 밑 빠진 독에 물 붓기란 생각이 들었는가 보다. 나로서는 우리 마을에 밭이 귀한 형편이니 집 가까이 있는 밭을 빌릴 수 있는 것만으로도 감지덕지라 생각했지만 신랑의 생각은 확고했다.

그렇다면 일단 땅을 살 수 있는지부터 확실하게 알아봐야 했는데, 땅 주인 연락처를 알아내기가 쉽지 않았다. 문중에서 땅을 팔고 싶어 한다는 얘기는 있지만 아마 쉽지 않을 거라고들 했다. 의사결정 과정이 복잡하기 때문에 문중 땅 사기가 보통 일이 아니라는 것이다. 문중과 직접적으로 연락을 하고 지내는 동티 어르신 댁에 몇 번이나 문중 연락처 좀 알려달라고 부탁했지만, 문중 사람들이 언젠가 한 번은 올 것이니 직접 만나보라는 얘기뿐이었다. 한 번 온다고 했던 게 1년 전부터이니 우리가 땅 주인을 만날 수 있을지, 언제쯤 만날 수 있을지 기약이 없었다. 봄은 다가오는데 땅 주인을 만날 길은 없고, 우리로서는 무척 답답한 노릇이었다.

그러던 차에 봄볕이 따뜻한 주말 오전, 정말이지 문중 사람들이 찾아왔다. 깐깐해 보이는 어르신 세 분이었는데, 밭을 산다는 사람이 젊은 부부라는 데 깜짝 놀라시는 눈치였다. 어르신들 눈에 젊은 사람들이 시골에 뿌리 내리고 살고자 하는 마음이 대견하다며 긍정적으로 흥정을 해보자고 하셔서 마음이 들떴다. 그런데 막상 이야기를 나누다보니 우리가 생각했던 것보다는 높은 가격을 부르셨다. 그것도 거저 주는 거나 다름없다며 생색을 내시면서 말이다. 신랑은 비싸다며 표정이 어두웠지만 나는 부르는 가격 그대로 괜찮다 싶었다. 일단은 그분들이 부른 땅값이 시세에 비해 한없이 높은 것도 아니었고, 우리가 가진 돈으로 감당할 수 있을 만큼이며, 내 마음에 드는 땅이라면 기회가 왔을 때 꽉 잡고 싶었다. 그리하여 어렵사리 신랑을 설득해서 “생각보다 높은 가격이긴 하지만 좋습니다.”하고 말해버렸다.(요령이 있다면 밀고 당기고 해가며 흥정을 해볼 수도 있었겠지만 신랑이나 나나 그쪽으로는 재주가 없으니 어쩌랴. 기회가 닿은 것만도 고마울 뿐!)

그런데! 뜻밖에 난관이 기다리고 있었다. 계약서를 쓰자고 해서 종이와 볼펜을 들고 갔더니 갑자기 계약을 하기가 어렵다는 게 아닌가. 문중의 가장 큰 어르신과 전화통화를 했는데 그런 터무니없는 가격에는 팔 수 없다며 차라리 땅을 묵히는 게 낫다고 하셨다고 했다. 다 된 밥에 재 뿌린다고 정말 어이없는 일이었지만 억지로 되는 일도 아니니 마음을 비울 수밖에 없었다. 땅도 인연이 되어야 만나는 법, 운대가 닿아 인연이 되지 않으면 또 다른 인연을 기다리는 수밖에 없지 않은가. 신랑과 나는 미안해하시는 문중 어르신들 세 분께 인사를 건네고 집으로 돌아와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밥상을 마주하고 앉았다. 어차피 어긋난 인연, 미련일랑 훌훌 털어버리자며 서로를 위로하면서 말이다.

그때였다. 문중 어르신들이 다시 찾아오셨다. 집안 큰 어르신을 겨우 설득했다며 다시 계약서를 쓰자고 하시면서 말이다. 오히려 우리가 그래도 되겠냐며 걱정을 했지만 그분들은 괜찮다며 걱정하지 말라고 하시더니 서둘러 계약서를 쓰셨다. 자기들이 이제껏 살면서 착한 일 한 번 제대로 못하고 살았는데, 젊은 사람들에게 땅을 파니 그것만으로도 착한 일 하는 기분이라시며 흡족해 하시면서 말이다. 정말이지 극적으로 계약이 성사된 것이다.

그날 밤, 이른 새벽부터 잠이 달아나 도통 다시 잠을 이룰 수가 없었다. 주인이 되어 땅을 만나는 데 대한 설렘 때문이었다. 마치 새하얀 종이를 선물 받은 기분이랄까? 종이 위에 어떤 것이든 내 마음대로 그려나갈 수 있다는 벅찬 기쁨에 하고 싶은 일들이 퐁퐁 쉼 없이 떠올랐다. ‘매실나무, 감나무, 살구나무와 같은 과일 나무도 넉넉히 심자. 그늘을 넓게 드리우는 커다란 나무도 심어 거기엔 아이들을 위한 그네도 매달아 두면 어떨까? 밭 한편에 산에서 내려오는 고라니도 쫓을 겸 개를 한 마리 키우자. 너른 들마루도 하나 두고 밭 매다 몸이 지치면 한 숨 낮잠도 자볼까?’ 이렇게 꿈을 꾸고 또 꿈을 꾸었다.

어떤 사람들은 길 없는 맹지인데다 밭의 절반 이상이 돌밭인데 그런 땅을 비싸게 샀다며 혀를 끌끌 차기도 하지만, 내게는 돈의 값어치를 떠나 그저 한없이 아름다운 선물이다. 나를 꿈꾸게 하는, 내게 꿈을 심어주는 선물 말이다. 앞으로도 땅과 함께 땅에서 살리라.

정청라
귀농 6년차, 결혼 4년차 되는 산골 아낙이다. 유기농 이웃들끼리만 사는 안전한 울타리 안에 살다가, 몇 달 전 제초제와 비료가 난무하는 산골 마을 무림으로 뛰어들었다. 왕고집 신랑과 마음 여린 아들 다울, 이렇게 세 식구가 '알콩달콩 투닥투닥' 뿌리 내리기 작전을 펼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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