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프, 권력을 가진 이들이 '표현의 자유'를 억압해선 안돼

교황청 신앙교리성 장관 요셉 라칭거 추기경(베네딕토 16세 교황)이 1984년 자신의 제자였던 레오나르도 보프 신부를 로마로 소환해 심문한 것은 한 권의 책, <교회, 카리스마와 권력-해방신학과 제도적 교회> 때문이었다. 1968년 메델린에서 열린 라틴아메리카 주교회의가 해방신학을 승인하고 1979년 푸에블라 주교회의에서 이를 재확인한 뒤 교황청은 줄곧 해방신학을 경계했다. 그리고 요한 바오로 2세 교황이 통치하던 교황청 입장에서 가장 결정적인 타격은 보프의 ‘교회론’이었다. 보프는 군주제적 제도교회가 아닌 카리스마에 이끌리는 민중교회를 희망했다.

▲ <교회, 카리스마와 권력-해방신학과 제도적 교회>
보프는 <교회, 카리스마와 권력>에서 “교회는 거룩하면서도 항상 정화되어야 한다”는 <교회헌장>의 내용을 인용하며 “과거의 교회가 로마와 중세의 구조를 따른 것처럼, 현대교회는 높아지는 인권의식에 걸맞는 시민사회의 구조를 따라야 한다”며, 이를 ‘교회의 민주화’라고 불렀다. 즉,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 예수의 삶과 행적에 대한 기본교리, 그리고 이 안에 담긴 도덕적 명령, 교회의 성사적 측면처럼 본질에 해당하는 것은 변할 수 없겠지만, 동시에 교회는 평신도를 포함한 많은 이들이 참여하는 자유롭고 형제애 넘치는 신앙공동체가 되어야 한다고 호소했다.

보프는 먼저 가톨릭교회의 중앙 집중적 의사결정 방법을 바꿔야 한다고 주장했다. 보프는 가톨릭교회는 교황부터 주교, 사제에 이르기까지 교회 내 행정 책임자를 선출할 때 하느님 백성인 평신도들의 의견이 반영될 수 없는 ‘수직적 구조’라고 지적했다. 교구장 등 교회 지도자는 교황과 같은 최고 교회권력에 의해서만 임명되고, 그렇게 임명된 교구장이 지역교회에서 군림하면서 전문성과 신학적 자질을 지닌 평신도들을 주변인으로 내몰고 있다는 지적이다.

히포의 아우구스티누스 등 고대교회의 주교들은 대부분 평신도 신분이었다. 교구민들이 덕망이 높은 그들을 추대해 주교로 삼았던 전통이 있었지만, 제1차 바티칸공의회 이후 교황의 고유권한으로 완전히 바뀌었다. 보프는 사제들조차도 교구 내 중대한 결정을 내릴 때 의견을 내놓을 수 없고, 사제들의 입장을 대변하는 단체가 결성되더라도 고위성직자들의 의심과 압력으로 해체당해 왔다고 말했다.

가톨릭 교계제도, 고정불변의 진리 아닌 역사적 산물

보프는 권력이 있는 곳에는 ‘권력남용’의 위험이 있기 마련이지만, “교회 권력자의 대다수는 훌륭한 신앙인이요 깨끗한 양심과 흠 없는 인격을 지닌 자들”이라며, 문제의 본질은 억압적 관행을 생산하는 ‘교회 구조’에 있다고 강조했다.

▲ 레오나르도 보프 (사진출처/http://word.world-citizenship.org/)
가톨릭교회는 모든 의사결정 권한이 교황과 주교와 사제에게 집중된 권위주의적 체제다. 이러한 권력구조는 “하느님께서 정하신 것”으로 간주되고 신자들은 이를 신앙으로 받아들여야 한다고 강요받는다. 그러나 교회의 권력구조는 수세기에 걸쳐 역사적 과정에서 형성된 것으로, 로마제국과 봉건제의 권력구조를 모방한 것이다. 교황의 황금 삼층관처럼 교회의 관습과 명칭, 표현이나 상징들은 모두 여기서 온 것이다. 이런 구조들이 현대인들의 인권의식과 마찰을 빚고 있다는 게 보프의 판단이다.

로마-중세적 권위형태는 교황-주교-사제-수도자-평신도 등으로 이어지는 ‘성직자’ 중심의 계급제도다. 특히 최고권력을 행사하는 교황과 주교들은 종신직이다. 그들이 ‘성무’를 통해 관철시키려는 것이 ‘법’이 되고, 평신도 등 하위계급은 항상 상위계급에 순명을 바쳐야 한다. 평신도는 수도자에게, 수도자는 사제에게, 사제들은 주교에게, 주교들은 교황에게 순종을 요구받는다. 이러한 신성하고 우주적인 교계제도는 하느님의 뜻으로 간주되며, 교회에서 지위가 높을수록 하느님과 가까운 존재이므로, 고위성직자들은 그만큼 하느님의 권능도 많이 나누어 갖게 된다. 여기서 하위계급이 상위계급에 순명하는 것은 곧 하느님께 순명하는 것이라는 식의 암묵적인 교리가 만들어진다.

이렇게 만들어진 교계제도는 어떠한 비판도 용납되지 않는 성스러운 질서로 성화된다. 만일 하위계급이 이 제도에 이의를 제기하면 이는 우주의 질서에 반역하는 셈이며, 권력구조의 변화를 꾀하는 것은 이러한 신성한 권력구조를 만든 하느님께 도전하는 행위다. 교회질서 개혁은 오직 하느님께 가까운 상위계급, 그중에서도 ‘그리스도의 대리자’로서 교회와 세상에 대한 통치권을 가진 교황만이 가능하다고 주장한다.

가톨릭교회는 그동안 이 구조에 만족해 왔으며, 사회적으로 엄청난 권력구조의 변화를 일으킨 계몽주의와 프랑스대혁명 등 근대사회의 대변혁에도 불구하고 아무런 변화를 보이지 않았다. 그러나 보프는 “교회가 변호한 것은 하느님의 권위라기보다는 오히려 그 권위를 중심으로 생겨난 역사적 부산물일 뿐”이라고 비판했다. 제2차 바티칸공의회가 혁명적인 이유는 이러한 권위적인 신학을 면밀히 분석하고, 교회를 덜 군주제적인 더 참여적인 교회로 가는 길을 열었기 때문이다.

교회 안에서 사상과 표현의 자유 필요해

지난 3월 21일 우리나라의 헌법재판소가 1970년대 유신체제에서 박정희 대통령이 선포한 댜통령 긴급조치 1호, 2호, 9호가 모두 위헌이라고 판결했다. 헌법재판소는 특히 유신헌법의 개정이나 페지 논의 자체를 금지한 긴급조치 1호와 9호에 대해 “헌법의 개정과 폐지는 주권자인 국민이 보유하는 가장 기본적 권리”라며 “비판 자체를 원천적으로 배제하려는 공권력의 행사나 규범의 제정은 자유민주주의적 기본질서에 부합하지 않으므로 정당성을 인정할 수 없다”고 못 박았다. 이게 시민사회의 법 감정이다.

1974년에 선포된 긴급조치 1호는 유신헌법을 부정·반대·왜곡·비방하는 일체의 행위를 금한다. 또한 헌법의 개정 또는 폐지를 주장·발의·제안·청원하는 일체의 행위를 금한다. 이 조치를 위반한 자와 이 조치를 비방한 자는 법관의 영장 없이 체포·구속·압수·수색하며 15년 이하의 징역에 처한다. 2조는 이런 범죄의 관할·심판권을 비상군법회의에 주었다. 한편 9조에는 국회의원이 직무상 국회에서 행한 발언은 처벌하지 않지만, 이 발언을 방송보도나 기타 방법으로 공연히 전파하면 처벌된다고 적시하고 있다. 실제 원주교구의 지학순 주교는 유신헌법의 무효를 주장하는 ‘양심선언’을 발표해 1974년 7월 15년 징역형을 선고받은 바 있다.

 
지금까지 교회의 사정도 유신정권과 다르지 않았다. 베네딕토 16세 교황이 2010년 5월 21일자로 승인한 규범을 교황청 신앙교리성 장관 윌리엄 조셉 레바다 추기경은 그해 7월 15일 아동성추행 등 교회법의 위반 사안을 다루는 <더욱 중대한 범죄에 관한 규범(Norme de gravioribus delictis)>을 발표했다. 여기에서 신앙교리성은 아동성추행 혐의를 받은 사제를 별도의 교회재판 없이 바로 환속시키도록 교황에게 요청할 권리를 갖는다. 아울러 이 규범은 여성사제 서품을 '더욱 중대한 범죄'에 포함시켜, 지역교회에서 여성을 사제로 서품하는 해당 성직자는 성직을 박탈하며, 대상 여성은 '자동 파문'에 처해진다는 내용이 포함되어 있다.

보프는 교회 안에서 사제의 선택적 독신제와 여성사제, 낙태와 피임 문제, 신학적 쟁점 등에 관한 자유로운 의사표현의 자유가 가톨릭교회 안에서 심각하게 제한되어 있는 현실을 지적했다. 보프는 “교계제도는 국가의 검열에 대해서는 강력하게 반발하면서도 교회의 언론수단에는 사사건건 통제를 가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교회는 교도권의 해석과 다른 의견이나 새롭게 제기된 사회적 이슈에 대한 신학적 가설에 대해 격렬히 반발하며 단죄하기를 주저하지 않았다. 특히 신학자들의 경우에는 침묵령을 내리거나 출판을 불허하고 이단판정을 내리기도 한다. 이를 두고 보프는 “많은 주교들이 자신들의 무분별한 지식에 바탕을 둔 ‘권위주의’로 자신들의 무지를 은폐하고 있으며, 오세르바토레 로마노(L’Osservatore Romano)를 통해 교황청의 입장만 단조롭게 되풀이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이어 지금은 교회가 교회의 이단자들을 처벌할 정치적-물리적 수단이 없지만, 기본적인 처리방법은 변함이 없다면서 “육체적 고문은 폐지되었으나 정신적 고문은 계속되고 있다”고 말했다. 교황청에서 문제 삼은 신학이나 신학자의 경우에는 절차적 정당성이나 투명성, 변호할 수 있는 권리도 없이 심문이 무한정 지속될 수 있다는 점에서 반(反)인권적이라고 보프는 말한다. 이 지루한 조사와 가혹한 심문 과정에서 몇몇 신학자들은 자신이 속한 지역교회에서 외면당한 채 외로움과 심리적 불안을 경험하고, 끝내 죽음에 이르는 경우도 있다고 전했다.

▲ 사진출처/http://americadespierta.blogcip.cu/
교황청 신앙교리성이 1971년 1월 15일 제정한 ‘교리검토 규칙’은 철저히 인권을 무시한다. 피고에게 전혀 통고하지 않은 채 조사를 시작하고, 신앙교리성의 입장이 정해지면 피고에게 통고해 질문에 답할 것을 요구한다. 피고는 기소 이유에 대한 구체적인 사유도 절차도 신앙교리성의 다양한 입장도 모른 채 심문에 응하게 된다. 변호인이 선임되지만, 피고는 변호인의 이름도 알 수 없고, 변호인을 선택할 권리도 없다. 때로 이러한 비밀스런 종교재판에서 원고와 변호인과 재판관이 같은 사람인 경우도 있다. 여기서 피고가 할 수 있는 것은 신앙교리성의 권고에 응하는 것뿐이다. 처벌내용을 담은 단죄서한은 이미 작성되어 있으며, 죄명은 “신학적으로 모호하며 위험하고 오류이며 가톨릭 교리와 신앙의 규칙에 위배되는 것”이라고 명시된다.

한국교회의 경우에 1997년에 광주가톨릭대학교의 이제민 신부와 서강대 교수인 정양모, 서공석 신부가 교황청 신앙교리성의 경고를 받았다. 당시 주교회의 의장이었던 정진석 추기경은 즉시 주교회의 상임위원회를 소집해 주교회의 기관지에 이들의 글이 실리지 않도록 조치했다. 1998년 1월 15일 신앙교리성이 마산교구장 박정일 주교에게 보낸 서한에 따르면, 이제민 신부의 <교회 - 순결한 창녀>(분도출판사 1995)가 “교회를 마치 민주적 제도 형태로 조직된 그 어떤 인간 사회단체와 같이 이해함으로써 교회에 대한 불충분한 견해를 피력하고 있다”는 것이다. 결국 이제민 신부는 교수직을 내려놓을 수밖에 없었다.

제2차 바티칸공의회 “교회는 항상 개혁을 요구한다”

보프는 “신앙의 규칙은 신앙의 본질을 보존해야 하지만, 그 본질을 불변의 공식처럼 받들어서는 안 된다”며, 그리스도교 신앙이 역사적 변동 속에서 새로운 이슈에 대해 충분히 고려하지 않으면 “공허하고 허구적인 현실만 모방하게 될 것”이라고 지적했다. 따라서 고압적인 심문절차를 폐기해 자유로운 신학논쟁이 가능한 환경을 만들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일반적인 교리와 다르거나 신자들 사이에 논란이 되는 신학적 쟁점이 발생할 때, 이를 검토하는 기구를 주교회의에 두고, 신앙교리성이 최종심판관이 되어야 한다고 제안했다. 또한 문제를 공개적으로 조사해야 하고, 피고는 처음부터 자신의 주장을 제시하고 변호할 권리를 지녀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동안 가톨릭교회는 교도권이 오류가 없는 거룩한 교리를 집대성해 제시했다고 믿었기 때문에, 이 주어진 교리에 의문을 품는 것을 차단해 왔다. 이런 식의 불관용과 독단주의는 심각한 인권문제를 낳기 마련이고, 결국 교회 내 사상과 표현의 자유는 억압당할 수밖에 없었다. 보프는 여기에 깊은 구조적 문제가 있는데 그것은 “종교적 생산수단과 상징적 영역을 소유한 자가 권력을 누리면서, 공적인 논의를 일방적으로 통제하는 것”이라 설명했다. 보프는 “그 결과 교리와 신학 등 종교적 상품을 생산하는 성직-교도권과 이 상품을 소비하는 평신도 집단 사이에 당연히 불평등이 생긴다“고 지적했다.

제2차 바티칸공의회는 “교회는 항상 개혁을 요구한다”고 거듭 강조했지만 제도개혁에까지 이르지 못한 채 지난 30년 동안 과거의 군주제적 모델로 뒷걸음질 했다. 결국 교회개혁은 선언을 넘어 구체적인 제도개선으로 나아가야 한다. 특히 교황제도를 비롯해 교회 주권의 민주적 분배가 선행되지 않는다면, 교회는 결정적인 순간에 ‘복음’을 배신할 것이다. 이를 위해 보프는 교회가 과거의 영광에 매이지 말고 복음적 원천으로 회귀할 것을 요청했다.

보프는 “우리에게는 현재와 미래를 향한 희망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교회권력을 쥐고 있는 자들이 제도에 불편함을 느끼고 있는 한 제도교회가 아직 권력에 깊이 빠지지 않았다고 볼 수 있다. 그러니 이제라도 복음의 부름을 따라 권력을 행사하는 새로운 방법을 만들어내라고 요청할 수 있다”

그 희망의 단초를 프란치스코 교황에게도 기대할 수 있을까? 교황은 자신을 ‘교황’이 아닌 ‘로마주교’라 부르며, 주교들 앞에 프란치스코 성인과 같은 가난하고 작은 형제로 나섰다. 가톨릭 ‘황제’의 각질을 조금씩 떼어내고 있는 그분의 행보에서 교회의 미래를 엿보고 싶다.

실상 예수 그리스도는 교회를 설파한 것이 아니라 가난한 이들에게 해방과 위로를 주고, 정의와 평화, 용서와 사랑이 깃든 하느님 나라를 선포하셨다. 기존질서를 옹호하지 않고, 사람들 위에 군림하기보다 섬기셨다. 하느님께 복종하되 자유롭고, 기성종교를 사랑 안에서 질타하셨다. 그분은 타인을 복종시키려고 하지 않았으며, 자신의 권한을 사용하는 대신 연약하게 죽기를 원하셨다. 그분이 바라신 것은 죽음을 넘어서라도 ‘사랑할 수 있는 권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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