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비평-조욱종]

새 교황이 신대륙에서 탄생했다. 신대륙은 원주민을 유럽인들이 정복한 곳이다. 그 신대륙에서 유럽인 후손이 교황으로 선출되었다. 그러나 신대륙의 불행과 아픔을 현지에서 함께 하였으므로 새 교황은 신대륙의 후손이라고 인정하고 싶다.

신대륙은 새로운 정복지를 갈망하던 유럽인들에게 놀랍고도 반가운 새 소식이었다. 유럽국가 간의 경쟁이 치열할 수밖에 없었다. 그런 탓에 교황청의 중재가 필요했기 때문에, 1494년 교황경계령에 의해 대서양의 중앙을 달리는 자오선을 경계로 하여 동쪽은 포르투칼의 영토로, 서쪽은 스페인의 영토로 구분 지었다. 자오선의 동쪽에 위치한 아시아, 즉 인도와 중국 그리고 일본은 포르투칼에게 주어졌고 포르투칼은 주로 무역에만 힘썼다. 그러나 서쪽에 위치한 신대륙의 북미와 남미는 대부분 스페인의 영토가 되었으나 남미의 동부에 속한 브라질은 포르투칼의 영토가 되었다.

포르투칼은 주로 무역에만 관심 가졌으나 스페인은 식민활동에 집중하였다. 그래서 1521년 스페인은 지금의 중미에 있었던 아즈텍 제국을 정복하여 멕시코를 만들었다. 콜럼부스의 신대륙 첫발견 이후 30여년이 흐른 뒤의 일이었다. 이어서 1532년에 남미의 잉카 제국도 멸망시켰다. 당시의 아즈텍 제국의 인구수가 약 500만 명이고 잉카 제국은 600만 명이었으나 원주민들은 스페인의 식민활동에 의해 열대의 평지에서 추운 고지로 추방당하여 사망자가 속출하고 드디어 200년 뒤에는 인구가 1/10로 줄어들었다고 한다.

그러자 수도회에서 신대륙의 원주민을 보호하기 위하여 그들을 그리스도교로 개종을 시키고, 노동은 아프리카의 흑인을 데려와 시키기로 건의하였다. 이후부터 스페인은 군대에 수도자들을 동행시켜 선교활동을 하게 하였다. 즉 총과 대포를 쏘면서 세례수도 뿌린 것이다.

스페인 군대와 공동 운명체였던 프란치스코 수도회
정복지 캘리포니아 도시 이름에 성인들 이름 가득


지금의 캘리포니아에 관한 정복 일화는 흥미롭다. 스페인 군대와 한 운명체로 정복활동에 동참한 프란치스코 수도회는 정복하는 곳마다 도시를 세우게 되면 그 도시의 이름을 짓는 몫을 담당하였다. 맨 먼저 도착한 캘리포니아의 최남단의 아름다운 해안은 당시 수도원장이던 디에고의 이름을 붙여 샌디에고가 되고, 이어서 가장 아름다운 해안에다 도시를 건설하면서 그곳에는 자기 수도회의 사부인 프란치스코의 이름을 붙였다고 한다. 샌프란치스코가 그곳이다. 그런데 그보다 더 아름다운 해안에 도시를 건설하면서는 이곳은 너무 아름다워서 감히 사람의 이름을 붙힐 수 없다고 하여 하느님께 봉헌한다는 뜻으로 천사의 도시, 즉 로스 앤젤레스 라고 이름 붙였다고 한다. 그밖에도 캘리포니아의 해안에는 산타클라라를 비롯한 산타모니카, 산타바바라 등등의 성인들 이름으로 가득 차 있다.

프란치스코 교황이 나왔다. 예수회 소속이지만 교황명을 프란치스코라고 붙였다. 교회는 스스로 정체성을 가지려 할 때 가난이 더 어울린다는 것을 산상수훈 이후 다시 일깨워준 성인이 프란치스코이다. 그래서 만인의 사랑을 받는다. 프란치스코의 이름을 가진 교황에게 거는 기대는 바로 그런 점 때문이리라.

다시 프란치스코 수사들 이야기로 돌아가 보자. 수사들은 스페인 군대가 만든 요새에서 함께 생활하였다. 그 안에는 개종한 원주민들도 같이 살았는데, 요새 유적지를 가보면 수사들의 가난한 삶의 전형을 보여주는 좋은 자료가 된다. 지금도 캘리포니아 각지에는 그 요새들이 성지처럼 보존되어져서 관광지화 되어 있는데, 보존 상태가 너무나 훌륭하여 당시의 생활상을 적나라하게 엿보기에 충분하다. 촘촘히 만들어진 작은 방들에 좁고 흔들거리는 이동식 침대와 작은 아궁이에서 만드는 보잘 것 없는 음식으로 생활하지만 성당은 화려하게 채색하여 그들이 빵만으로 살지 않고 기도로 살았음을 짐작하게 한다. 프란치스코의 성당들은 특징이 있다. 여타의 성당들과는 성상의 모양새나 그 배치들이 사뭇 다르다. 성전의 구조도 특이한데, 어떤 틀에 얽매이지 않고 자유로운 사고를 하는 정신을 성당 자체에서 느낄 수 있다고나 할까.  여러 곳의 프란치스코 성당을 방문할 때마다  그 '다름'을 느끼곤 한다. 

교황명을 프란치스코로 정한 새 교황,
배고픈 이들을 살리고 생태계를 지키는 가난한 모습을 지켜가기를

그런데 정복자의 입장으로 먼저 선점하다보니 프란치스코 수도원들은 현재 캘리포니아의 가장 경치 좋은 곳에 위치하고 있다. 우스갯소리로 말리부에 있는 수도원은 그 주변에 마이클 잭슨과 멜 깁슨을 비롯한 유명 연예인들이 모여 사는 곳의 중심에 있는데 주변 연예인들이 사고 싶어도 수도회가 팔지도 않을 뿐더러 그 값이 어마어마하기에 살 수도 없다고 한다. 그런 수도원이 셀 수 없이 많으니 이런 우스갯소리도 만들어졌지 않을까 싶다. 하느님이 모르시는 세 가지 중 하나가 ‘프란치스코 수도회의 재산이 얼마인지 모른다’는 것이다.

독일 신문에서 프란치스코 교황의 탄생을 보도하면서 흰 수단 위의 검은 얼굴이라는 표현을 썼다고 전해 들었다. 수도자들은 가난하지만 수도회는 부자라는 말에 교구는 부끄러워 대답조차 하기 어렵다. 바로 그러한 위험성을 익히 알고 있는 언론의 비판적 시각이 아닐까 싶다. 그래서 성 프란치스코의 가난의 자세가 이 시대에는 더욱 절실하게 요구된다. 그것은 바로 자발적 가난이다. 자발적 가난의 자세야말로 나눔을 가능하게 하여 배고픈 사람들을 살릴 수 있으며 더 나아가 파괴되는 생태계를 온전하게 보전할 수 있다. 부디 프란치스코 성인을 닮은 가난한 교황을 그분의 임기 마지막까지 변함없이 만나고 싶다.

조욱종 신부 (부산교구 관리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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