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패와 스캔들 넘어, 약자를 보듬고 나누는 예수와 성 프란치스코 뜻 재현될까

성령의 바람이 어디로 불 것인가.

세계 가톨릭을 이끌 제266대 교황에 아르헨티나의 호르헤 마리오 베르골리오(76) 추기경이 선출됐다. 비유럽권에서 교황이 선출된 것은 시리아 출신이었던 그레고리오 3세(731년) 이후 1천282년만이다. 시리아도 옛 로마의 영향력 아래에 있었던 지중해 지역이었던만큼 이번 교황은 비유럽권 최초의 교황이라고 볼 수 있다.

▲ 프란치스코 교황 (사진출처/유튜브 동영상 youtube.com/vatican 갈무리)

새 교황은 교황 즉위명으로 프란치스코를 선택했다. 프란치스코(1182 ~ 1226) 성인은 이탈리아 아시시의 부유한 상인의 아들로 태어나 부유하게 자랐으나 모든 소유물을 걸인들에게 나눠줘버리고 출가해 평생 청빈과 가난 속에서 나눔을 실천해 ‘제2의 그리스도’로 까지 칭송 받는 인물이다. 요즘으로 보자면 그는 재벌가의 후계자였는데, 그 모든 부를 버리고 스스로 십자가를 진 것이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예수회 출신의 첫 교황이다. 예수회는 종교개혁 바람이 불던 1534년 로욜라가 설립한 수도회다. 루터가 가톨릭을 박차고 나가 개혁을 주창했다면 로욜라는 가톨릭 내에서 개혁을 했던 인물이다.

예수회는 국내에서도 빈민지역에 가서 사목을 한 대표적인 수도회다. 정일우 신부나 박문수 신부처럼 빈민사목의 대부들이 예수회 출신들이다. 우리나라에서 대표적인 가톨릭 대학이자 박근혜 대통령을 배출한 서강대가 바로 예수회가 설립한 대학이다.

프란치스코성인과 로욜라성인은 둘 다 전쟁에 참전했던 전사였다. 그들은 전쟁의 참상을 경험한 뒤 극적인 회심을 경험한 공통점을 지니고 있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아르헨티나에서 빈민과 사회문제에 대해 각별한 관심을 보인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그가 철도노동자 출신에 예수회 출신이고, 빈민사목에 그처럼 관심을 보여왔기에 50년 전 요한23세에 의해 시작돼 1978년 바오로 6세가 선종할 때까지 대변혁이 시도된 '제 2차바티칸 공의회’의 개혁을 되살릴 수 있을 지 관심을 모으고 있다.

제2차바티칸 공의회의 개혁은 요한 바오로 2세와 전임 베네딕도 16세의 보수 회귀 정책에 의해 멈춰진 상태다.

한 국내 예수회 관계자는 “프란치스코 교황은 신학적으로는 보수적이지만, 아르헨티나에서 야당 성향을 보인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면서 “이것만으로도 어느 정도 변화를 보일 가능성은 있어 보인다”고 분석했다.

가톨릭은 교황이 전 세계의 주교 임명권을 갖고 있는 일사분란한 조직이기 때문에 교황의 의중이 중요하다. 예수 이후 가장 큰 변혁을 가져온 제2차바티칸공의회를 개최한 요한 23세는 그런 개혁을 할 수 있으리라고는 아무도 예상치 못했던 인물이었다. 무려 20년 동안 세계 가톨릭을 이끌던 비오 12세(1876 ~ 1958, 재위1939~1958)가 갑자기 서거하자 교황청은 새로운 정식 교황을 맞아들이기 전에 77세의 노인인 요한23세를 임시로 내세운 것이라는 게 일반적인 관측이었다. 그래서 요한 23세가 교황이 되었을 때 ‘임시 교황’이란 별칭이 붙기도 했다. 그러나 성령의 바람은 바로 그로 부터 나왔다.

“모두들 내가 임시적인 혹은 과도기적인 교황이 될 것이라고 확신했지만 나는 앞으로 해야 할 큰일을 앞두고 있다. 나는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고 삶을 거부하지도 않는다고 했던 성 마르티노가 된 듯한 느낌이 든다.”

▲ 요한 23세 교황
1962년 81살의 교황 요한 23세은 이런 발언으로 가톨릭 교회의 변혁을 시작했다. 이렇게 1962년 10월11일 소집돼 1965년 12월8일 폐회된 제2차 바티칸공의회는 ‘하느님의 백성’을 가톨릭 신자에서 전 인류로 확대했고, ‘교회의 사명은 선교가 아니라 인류의 존엄성 증진과 공동선 실현’이라는 이상주의를 교회 안으로 끌어들였다.

‘임시교황’또는 ‘징검다리 교황’쯤으로 여겨졌던 교황 23세는 지금 역대 교황 중 최고의 인기를 구가하고 있다. 가톨릭의 심장인 바티칸 성베드로대성당 한 가운데는 260여 명의 교황 가운데 그의 유해만이 유리관으로 안치돼 전 세계에서 온 가톨릭 신자들의 경배를 받고 있다.

요한 23세가 서거한 뒤 그의 뒤를 이은 262대 교황 바오로 6세(1897~1978, 재위 1963~78)는 요한 23세의 서거로 자동 폐회된 공의회를 재개해 완결시킨다. 바오로 6세는 동방정교회와 성공회, 개신교 등 다른 기독교 종파 지도자들과 역사적인 만남을 갖고 협정을 맺어 대화의 물꼬를 텄다.

그러나 요한 바오로 2세가 등장해 대표적인 보수 신학자인 라칭거 추기경(후에 베네딕도 16세 교황)을 전통 교리의 수호자인 신앙교리성 장관으로 임명해 보수로 회귀시키면서 개혁의 시계를 멈췄다.

과연 하느님의 뜻은 어디에 있는 것일까. 신앙인들은 자연의 현상에서조차 신의 징표를 찾고 싶어한다. 전임 교황 베네딕도 16세가 사임을 발표한 지난달 11일 바티칸의 성베드로성당 지붕위에 번개가 내려치자 ‘사람들이 이를 신의 뜻으로 보았다’는 외신이 이를 말해준다. 교황청의 부패 스캔들과 잇따르는 고위성직자들의 성추행 스캔들 등에 대한 신의 분노의 표출이 아니냐는 것이다.

▲ 교황 선출 직전 바티칸 굴뚝에 날아와 앉아있는 새 (사진출처/구글)

그런데 13일 오후(현지시간) 성 베드로 광장에 모인 수천 명의 신자들과 전 세계의 이목이 새 교황의 선출 여부(선출되면 하얀 연기, 선출 안되면 검은 연기를 내보냄)를 알리는 시스티나 성당의 굴뚝에 쏠려 있을 때, 어디서 왔는지 모르는 흰 새 한 마리가 무려 40분간이나 굴뚝을 지킨 이후에 훌쩍 날아올라 어디론가 사라지자 이를 ‘성령의 강림’으로 해석하는 이들이 있다는 외신이 또 전해진다.

새가 날아간 지 불과 20분 뒤 드디어 새 교황 선출을 알리는 흰 연기가 피어오르자 성령께서 새 교황 선출의 희소식을 암시했다는 것이다.

교황 요한바오로 2세 이후 멈추버린 개혁 시계에 안타까워하던 이들도 그 하얀 새가 새로운 성령의 바람이 부는 신호가 되어주길 기대하고 있다.

옛부터 새는 성령의 상징으로 여겨졌다. 그리스도가 세례자 요한에게 세례를 받는 동안 성령이 비둘기의 모습으로 나타났다고 해 비둘기를 성령을 나타내는 상징으로 여긴다.

새 교황이 교황명으로 정한 프란치스코 성인도 새와 깊은 인연을 보인다. 프란치스코 성인이 나고 자란 곳에 세워진 이탈리아 아시시의 프란치스코대성당 내 프란치스코상엔 세상에서 가장 유명한 비둘기가 있다.

성당쪽에 따르면 프란치스코 성인이 선종한 뒤 지금까지 한 쌍 중 한쪽이 숨을 거두면 다른 비둘기가 찾아와 짝을 채우면서 끊임없이 한 쌍의 비둘기가 프란치스코 상을 지키고 있다고 한다. 성인과 비둘기의 우정은 1,000년 동안 계속되고 있었다는 것이다.

▲ 아시시의 프란치스코 대성당 내 프란치스코 동상을 지키고 있는 비둘기 한쌍 ⓒ조현

‘선민 유대인’에게만 해당되는 구원의 약속을 예수께서 인류 전체로 확대했다면, 인간에게만 국한된 ‘하느님의 축복’을 대자연으로 넓힌 것은 프란치스코 성인이었다.

세상적인 욕망을 포기하고 끝없이 낮아져 인류의 약자들은 물론 동물과 자연물까지 형제로 여겼던 프란치스코 성인의 정신이 프란치스코 교황에 의해 계승된다면 축복이 아닐 수 없다.

성 프란치스코의 평화의 기도를 다시 보며 프란치스코 교황이 견인할 새로운 세상을 기대한다.

오, 주님 저를 당신의 평화의 도구로 써 주소서.
미움이 있는 곳에 사랑을
다툼이 있는 곳에 용서를
의혹이 있는 곳에 믿음을 심게 하소서
절망이 있는 곳에 희망을
어두움이 있는 곳에 빛을
슬픔이 있는 곳에 기쁨을 심게 하소서
오, 거룩하신 주님.
제가 위로받으려 애쓰기보다는 위로할 수 있도록
사랑받으려 애쓰기보다는 사랑할 수 있도록 도와 주소서
우리는 줌으로써 받고 용서함으로써 용서받으며
죽음으로써 영생을 얻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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