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 칼럼-한상봉]

하느님의 모험이 시작되었다. 어떤 이유에서든 직무수행 능력이 스스로 의심받을 때는 언제나 교황직무마저 중도에 내려놓을 수 있다는 관례를 만든 베네딕토 16세 교황의 결단이 교황좌의 대륙이동을 낳았다. 교황의 중도 사임은 베네딕토 교황이 지난 8년 동안 행한 업적가운데 가장 위대한 결정이었으며, 권위적인 교황 종신제의 틀에 균열을 일으킨 모험이었다.

라틴아메리카에서 새 교황이 선출됨으로써, 가톨릭교회는 유럽 중심에서 벗어나 제3세계로 중심이 이동될 가능성이 높아졌다. 더구나 새로 선출된 교황인 아르헨티나의 호르헤 마리오 베르골리오 추기경이 사상 처음으로 ‘프란치스코’라는 이름을 선택함으로써, 지상의 하느님 백성은 새로운 시대의 기운을 흠뻑 누릴 수 있게 되었다. 우리 시대의 징표는 가난의 영성에 기초한 생명과 평화이기 때문이다.

지난 30년 동안 요한 23세 교황이 열어놓았던 가톨릭교회의 창문이 서서히 닫히며 호흡곤란이 일어날 즈음에 문득 하느님께서는 유럽 바깥에서 그 창문을 밀어젖히고 들어오셨다. 아직 미래를 가늠할 수는 없지만, 사소한 발걸음일망정 업신여길 필요는 없다. 프란치스코 역시 자신을 ‘작은 형제’라고 부르지 않았던가. 콘클라베에서 요한 23세를 교황으로 선출했을 때, 그분이 공의회를 소집하리라 예측했던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모든 일은 성령이 이끄시는 것이다. 하느님의 숨은 의도는 한 걸음 뒤에 드러난다.

▲ 발코니에서 축복을 하고 있는 교황 프란치스코. (사진출처/유튜브 동영상 youtube.com/vatican 갈무리)

이탈리아계 아르헨티나 이주민 출신으로 철도노동자 가정에서 태어난 새 교황 프란치스코는 이탈리아의 소토 일 몬테의 소작농 가정에서 태어난 론칼리 추기경이 베네치아 대교구장을 역임했던 것처럼 아르헨티나 부에노스아이레스 대교구장을 지냈으며, 두 분 모두 우연히도 76세에 교황좌에 올랐다. 요한 23세 교황이 세례자 요한과 같은 예언자적 풍모와 제자 요한과 같은 다정한 품성을 지녔듯이, 프란치스코 교황은 신학적으로는 비교적 보수적이지만, 청빈하고 사회정의에 대한 뛰어난 감각의 소유자로 알려졌다.

교황 프란치스코는 예수회 출신으로, 지난 2007년 라틴아메리카 주교회의에서 이 대륙을 '세계에서 가장 불평등한 지역'이라며 분배정의를 강조한 바 있다. 이는 라틴아메리카 주교회의가 1968년 메데인에서, 1979년 푸에블라에서 천명한 ‘가난한 이들을 위한 우선적 선택’이라는 결정에 충실하다는 것을 입증한다.

새 교황은 동성애와 낙태문제 등과 관련해 보수적인 입장을 취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미혼모 가정에서 태어난 아기에게 세례를 주지 않은 사제를 비판한 적도 있었고, 콘돔에 대해선 에이즈 감염을 예방할 수 있다는 이유로 허용적인 태도를 보이고 있다. 

론칼리 추기경(교황 요한 23세)이 베네치아 교구장 시절에 주로 서민들이 이용하던 곤돌라를 타고 다녔듯이 베르골리오 추기경(교황 프란치스코)은 부에노스아이레스 교구의 대주교이면서 주로 버스나 지하철을 이용했다. 해외 여행 시에도 비행기의 이코노미석에 앉았으며, 추기경 의복도 전임자의 것을 재활용할 만큼 검소하고 청빈하다. ‘프란치스코’라는 교황 이름을 선택한 이유를 입증하듯이, 새 교황은 사람들에게 “내가 만일 교황으로 선출되더라도 교황을 축하하기 위해 로마로 여행하지 말고 대신에 그 돈을 가난한 이에게 기부하라”고 말한 적도 있다.

교황 프란치스코는 선출 직후 흰 옷을 입고 성 베드로 성당 발코니에 나와서 군중들에게 축복을 건넨 뒤 “좋은 저녁입니다”라는 다정한 말로 첫 인사를 전했다. <사목헌장>의 첫 구절처럼 새 교황을 통해 가톨릭교회가 인류의 슬픔과 번뇌를 씻어 ‘기쁨과 희망’을 안겨주고, 그리스도 신앙이 다시 사람의 심금을 울리는 진리로 되살아나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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