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원의 리얼몽상]<실버라이닝>

길은 어차피 외길이다. 가다가 ‘하느님이 보우하사’ 우연히 누군가의 길과 가느다랗게 맞닿을 뿐이다. 만남은 그래서 소중하다. 모든 ‘외길’들을 엮이고 꼬이고 에둘러가다 이어지게 만드는 신비는 만남에서 비롯된다.

‘정상’ 궤도에서의 이탈을 경험한 남자와 여자가 만난다. 영화 <실버라이닝 플레이북>(Silver Linings Playbook)은 꽤 요란한 남녀를 주인공으로 내세워 아주 따뜻한 사랑 이야기를 펼친다. 동네방네 요란하게 자신의 아픔을 상처를 광고하다시피 드러냈으나 본뜻은 왜곡되고 사람들은 등 돌리고 지역사회에서 낙인만 찍히게 된 구제불능 직전에서 그들은 만난다. '실버라이닝(silver lining)'은 햇빛을 가린 구름의 하얗게 빛나는 테두리이다. 한 가닥의 희망 같은 것, 암담한 상황에서도 잡고 싶은 빛줄기를 뜻한다.

사랑, 해도 잘못 안 해도 잘못?

 
팻(브래들리 쿠퍼 분)은 아내의 외도 현장을 목격하고 샤워 중인 외도 상대를 죽도록 패고 정신병원에서 8개월을 보냈다. 멀쩡하다는 판정을 받기 위해 죽도록 열심히 ‘정상’임을 증명하려 애썼고, 그것의 일환으로 예전생활로 돌아가기를 간절히 꿈꾼다. 8개월의 격리와 언제까지 계속될지 모를 접근금지명령은, 역설적으로 팻의 아내에 대한 망상적 집착을 부추긴다. 자신이 멀쩡하다는 것을 확인받기 위해서라도, 바람핀 아내 니키와 예전 집에서 예전처럼 부부로 살아야 한다는 강박이 깊어진다. 만날 수조차 없는데, 혼자서 되돌아갈 길을 찾고 또 찾는다. 병원에서 다짐한 대로 ‘긍정적’인 사람이 되려고 발버둥 친다.

티파니(제니퍼 로렌스 분)는 경찰인 남편이 사고로 죽은 후 슬픔을 못 이겨 직장 내 모든 사람과 관계를 갖고 그 일로 해고당한다. 주변에 ‘걸레’라는 소문이 나서 마음 나눌 사람 하나 없는 외톨이가 됐다. ‘너무 슬프고 외로워’ 허우적거린 동안 집적대는 남자들만 남고, 상처는 전혀 치유되지 못한 채 싸늘한 독설가가 된다. 오해와 편견으로 대할 뿐 아무도 그녀의 본모습에 관심 없다.

누구보다 평범하게 살고 싶었지만 예기치 않은 불행에 ‘미쳐버린’ 동안 삶이 완전히 뒤바뀐 두 사람. 남자는 사랑에 배반당한 후 미쳤고, 여자는 사랑하는 사람을 잃고 미쳤다. 배신을 배신으로 인정하기가, 상실을 상실로 인정하기가 너무 괴로워 차라리 미치는 쪽을 택한 탓이다. 누군가를 진심으로 사랑했던 게 형벌로 돌아온 셈이다. 전 아내를 여전히 사랑한다고 말하는 것만으로도 미친놈 취급당하는 팻, 그런 팻의 소원을 들어주고 함께 작전(플레이북)을 펼치는 것만으로도 주위를 염려하게 만드는 티파니. 둘은 그야말로 막상막하다. 헤어진 아내에게 편지를 전해달라는 남자나, 편지를 전해줄 테니 자기랑 댄스 경연대회에 파트너로 참가해 달라는 여자나 제정신은 아닌 게 확실하다.

첫 만남은 우연이었지만 어쩐지 자꾸 마주친다. 첫날부터 요란한 말다툼과 희한한 공감, 따귀와 비난 등이 오간다. 이상하게 서로의 신경을 긁고 상대방의 상처에 소금을 뿌린다. 비위를 상하게 하면서도 왠지 마음이 쓰인다. ‘이상한 사람’ 혹은 ‘나보다 더 아픈’ 사람이기 때문에 도와줘야 한다는 핑계로 결국은 협력을 도모하게 된다. 춤 연습 과정도 매일매일이 순탄치 않다. 너무 닮았기에 서로의 모습을 혐오하기도 한다. 왜 그러는지 잘 알기에 연민을 느끼면서도 밉다. 사랑에 빠지지 않으려 억지 부리는 남자와, 어떻게든 자기를 보게 만들려는 여자의 팽팽한 긴장은 곧 영화의 재미로 이어진다. 사랑에 빠지지 않는 게 더 어려울 외줄타기 같은 상황이다.

 
미친 나를 위해... 미친 짓을 해준 그대

어차피 사랑은 편파적이다. 모든 사랑은 편애다. 편파적이지 않았다면 만났으되 기억할 리가 없다. 그와 그녀가 만났다한들 스치고 지나가버리고 말았을 게다. 다른 모든 이들에게 그러하듯이 그저 공평하게 예의바르게 굴다 때가 되면 집에 돌아가 잊으면 그만이다.

그렇지 않았기 때문에, 새로운 사랑은 시작되고야 만다. 문제는 일상이고 뭐고 오히려 일이 더 엉키고 뒤죽박죽 돼버린다는 점이다. 삶을 제자리로 원상복구 시킬 가망성은 점점 더 희박해지는 듯하다. 이제는 어디가 ‘제자리’였는지조차 모르겠다. 그래서 자꾸 더 부인하게 된다. 사랑을 인정하지 않으면 그럭저럭 버틸 수는 있어 보이기 때문이다.

한때는 내 모든 것이었던 관계, 감정, 순간들. 그러나 이제는 ‘웨딩 송’만 들어도 돌아버릴 것 같은 기억, 무진 애를 써야만 가까스로 진정시킬 수 있는 지독한 슬픔. 그 압박감에서 벗어나기 위해 미친 듯이 문장과 문장, 행간과 행간, 게임과 게임, 내기와 내기 사이를 뒤지며 살아가는 우리들. 미친 나를 나조차 이해할 수 없어, 세상이 손가락질 하는 이 미친 짓에 매달려 구원을 갈망하는 우리들.

우리는 모두 아프다. 조금 아프거나 많이 아픈, 정도의 (약간의) 차이가 있을 뿐이다. 나는 멀쩡하다고 심하게 우기는 사람일수록 심하게 아프다는 증거다. 영화는 그 우습고도 자명한 진실을 위트 있게 따뜻하게 그려낸다. 나의 사랑하는 가족들도 찬찬히 살펴보면 전부 어딘가 나사 하나씩은 빠진 채 삐거덕거리며 살아가고 있다. 그래도 서로 이해하고 사랑하는 데는 모자람이 없다.

얼마나 감사한 일인가. 그런 일련의 미친 짓들이 깨우쳐준 통찰력이 결국 정신을 차리게도 하니 말이다. 자신을 미치게 했던 헤밍웨이와 숱한 불면의 밤들과 맘에 들지 않는 문장들의 훈련 덕택에 팻은 마침내 편지의 진실을 간파하게 된다. 그리고 눈을 들어 보니, 이미 내 곁을 진작부터 지켜준 사람이 있다. 미친 나를 위해 미친 짓을 함께 해 준 사람이다. 그것도 너무나 성실히 열정적으로. 그에 대한 보답으로 천하의 몸치였던 남자는 온몸을 던져 댄스 경연대회에 임한다. 춤을 통해 두 사람은 서로의 호흡까지 읽어내는 환상의 일치를 이루고, 끊어졌던 길은 다시 새로운 이야기를 써내려간다. 사랑 같은 거, 다시는 내 인생에 없을까봐 지난 상처의 껍데기를 버리지도 못하고 집착하던 두 사람에게 찾아와 준 햇살 한 줌이었다. 

 
 
김원 (로사, 문화평론가)
문학과 연극을 공부했고 여러 매체에 문화 칼럼을 썼거나 쓰고 있다. 어쩌다 문화평론가가 되어 극예술에 대한 글을 쓰며 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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