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학순정의평화상 수상 위해 방한한 넬레스 테베이 신부

“폭력은 불타는 곳에서 끊임없이 나오는 연기와도 같습니다. 폭력을 없애려면 사람들에게 연기의 원인이 되는 불을 보게 해야 합니다. 무엇이 불타고 있는지 찾아서 그 불을 꺼뜨려야 합니다. 그런데 연기가 시야를 가리듯이 폭력은 불을 쳐다볼 수 없게 만듭니다. 이것이 제가 웨스트 파푸아 사람들과 인도네시아 정부에 대화를 제안한 이유입니다.”

50년간 지속되고 있는 웨스트 파푸아와 인도네시아 정부의 갈등을 대화로 해결하기 위해 애써온 넬레스 테베이 신부가 제16회 지학순정의평화상 수상자로 선정돼 한국을 찾았다.

▲ 제16회 지학순정의평화상 수상자 넬레스 테베이 신부 ⓒ한수진 기자

웨스트 파푸아 · 인도네시아 정부 대화 수용에 큰 역할
인도네시아 주교회의도 대화 실행 촉구 성명 채택

넬레스 테베이 신부는 2009년 19명의 젊은이들을 모아 평화운동단체 ‘파푸아 평화 네트워크’를 세우고 웨스트 파푸아와 인도네시아 정부 간 대화를 추진하기 시작했다. 이들은 웨스트 파푸아 내 25개 지역에서 대화가 무엇인지를 설명하고 지역민의 생각을 듣는 워크샵을 개최했다. 또 시민사회단체와 정치인, 지식인, 종교지도자, 반군 사령관들을 직접 찾아가 설득작업을 벌였다. 넬레스 테베이 신부가 국회의원 회의에 참석해 아침 8시부터 자정까지 대화를 한 끝에 양측의 대화를 지지한다는  국회의 동의를 얻어내기도 했다.

그러한 노력의 결실로 2011년 11월 9일 인도네시아 대통령 수실로 밤방 유도요노는 웨스트 파푸아와 대화에 나서겠다고 공식 발표했다. 곧이어 인도네시아 천주교 주교회의는 연례총회에서 정부의 대화 실행을 촉구하는 성명을 채택했다. 주교회의는 또한 정부가 웨스트 파푸아에서 저지른 인권침해에 사과하고 보상하라고 권고했다. 넬레스 테베이 신부는 “인도네시아 정부와 웨스트 파푸아 사람들이 대화를 받아들인 것만으로도 큰 성공”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이제부터가 시작”이라는 말을 덧붙였다.

“솔직히 수상 소식을 들었을 때 제가 이 상을 받기에는 너무 이른 것이 아닌가 고민이 들었습니다. 양측의 대화가 아직 시작되지 않았고, 지금도 웨스트 파푸아와 인도네시아 정부 사이에 폭력이 계속되고 있거든요. 인도네시아 감옥에 있는 정치수감자들도 그대로 수감되어 있고요.”

유혈충돌과 고문, 처형, 성폭력으로 50년간 10만 명 사망

실제로 양측이 대화를 받아들인 지 1년여의 시간이 지났지만 ‘대화에 임하겠다’는 입장만 확인했을 뿐 그 이상으로 진척된 성과는 아직 나오지 않고 있다. 반세기를 이끌어온 갈등의 골이 깊기 때문이다. 웨스트 파푸아와 인도네시아 정부의 갈등은 1963년 인도네시아가 무력으로 웨스트 파푸아를 침공하면서 시작됐다. 당시 웨스트 파푸아는 2차 세계대전 이후 네덜란드의 식민지배에서 벗어나 1961년에 의회를 창설하고 새로운 국가 건설을 준비하던 중이었다. 웨스트 파푸아의 천연자원 매장량은 금 매장량 세계 1위, 구리 매장량 세계 3위로 경제적 이익을 노린 열강들의 관심이 웨스트 파푸아에 집중된 시기이기도 했다.

1969년 유엔의 주도로 웨스트 파푸아와 인도네시아의 합병 찬반을 묻는 주민투표가 실시되었으나 인도네시아 군이 투표권 자를 선정하고 군의 감시 하에 투표가 이뤄지면서 합병을 찬성한다는 결과가 나왔다. 이후 인도네시아가 대규모 이주정책을 펼쳐 인도네시아 인을 웨스트 파푸아에 정착시키고 군부대를 주둔시켰다. 그로인해 웨스트 파푸아에서는 심각한 인권침해가 발생했다. 웨스트 파푸아의 독립운동이 거세질수록 인도네시아 정부의 폭력은 더 강도가 세졌다. 웨스트 파푸아 인과 인도네시아 이주민 간의 유혈 충돌, 인도네시아 군의 불법 체포와 고문, 처형, 성폭력 등으로 인해 현재까지 10만 명 이상이 목숨을 잃은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 지학순정의평화상 시상식 하루 전 넬레스 테베이 신부가 한국비폭력대화센터 교육장에서 강연을 하고 있다. ⓒ한수진 기자

넬레스 테베이 신부는 자신도 점령으로 인한 갈등과 폭력 속에서 성장해 왔다고 말했다. 그의 외삼촌은 군에 끌려가 고문을 당했고, 체포와 고문 과정에서 사망한 친척들도 있었다. 또 인도네시아 군에게 성폭행을 당해 고통을 받은 사촌 누이도 있었다. 이들을 보면서 넬레스 테베이 신부는 “다른 이들이 나의 가족처럼 피해자가 되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을 갖게 됐다”고 말했다.

넬레스 테베이 신부의 염원은 ‘독립’이나 ‘자치’가 아닌 ‘평화’
평화를 위해 일할 수 있는 힘과 희망 모두 신앙에서 얻어

그래서 넬레스 테베이 신부는 웨스트 파푸아의 독립이나 자치, 어느 한 쪽을 특별히 지지하지 않는다. 그는 “웨스트 파푸아가 무장투쟁으로 독립을 쟁취한들 웨스트 파푸아 인들이 그 과정에서 평화를 경험하지 못한다면 의미가 없다”고 말했다. 웨스트 파푸아가 인도네시아의 일부로 남는 방안도 마찬가지다. 중요한 것은 양측의 대화를 통해 어떤 결과가 나오든지 “웨스트 파푸아 인들이 평화롭게 사는 것”이다.

이런 입장은 웨스트 파푸아 측에서는 점령군의 앞잡이로, 인도네시아 측에서는 분리주의자로 의심을 받는다. 심지어 살해 위협을 받은 적도 있었다. 그러나 넬레스 테베이 신부는 “오히려 내가 아무 일도 안한다면 의심 받을 일도 없으니, 의심을 받는 것은 내가 대화를 위해 열심히 일하고 있는 증거라고 생각한다”며 웃었다.

웨스트 파푸아와 인도네시아 정부가 마주보고 앉아 대화를 시작하기까지 얼마만큼의 시간이 더 필요할지는 누구도 알지 못한다. 아직 양측은 대화를 어디에서 열 것인지, 어떤 언어를 사용할 것인지, 대화의 중재자를 둘 것인지 여부를 두고 팽팽한 의견 차이를 보이고 있다. 장소의 경우 인도네시아 정부는 ‘국내 사안’이므로 인도네시아 영토 내에서, 웨스트 파푸아 인들은 갈등이 ‘국제 문제’이며 인도네시아 영토는 자신들의 안전에 위험하므로 제3국에서 대화가 열리기를 원하고 있다. 때문에 대화의 의제는 이야기도 꺼내지 못한 단계다. 그러나 넬레스 테베이 신부는 미래가 희망적이라고 전망한다.

“하루는 자카르타의 무슬림 지도자가 자신이 관리하는 이슬람 성원을 웨스트 파푸아와 정부의 대화 장소로 내놓겠다고 연락을 해왔습니다. 그러면서 저에게 대화를 진행할 의사가 있냐고 묻더군요. 누가 그의 마음을 변화시키고 그에게 그런 말을 하게 만들었을까요? 내 신앙만이 답을 할 수 있을 겁니다. 그동안 이런 경험을 정말 많이 했습니다. 미래에는 좋은 일이 더 많을 거예요.”

넬레스 테베이 신부는 “평화를 위해 일할 수 있는 힘도 신앙에서 얻지만 희망도 신앙에서 얻는다”고 말했다. 평화를 향한 그의 활동은 신앙의 표현이기 때문이다. 그가 “평화를 위해 죽을 각오가 되어 있다”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는 이유이기도 하다. 제16회 지학순정의평화상 시상식은 3월 13일 오후 7시 세종호텔에서 개최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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