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웃종교의 향기-6]천도교 '한울연대' 김용휘 사무총장

구불구불 예스러운 인사동 뒷골목을 따라 걷다 보면 100년 전 개화기로 타임머신을 탄 듯 느껴지는 건물을 마주하게 된다. 붉은 벽돌 건물에 아치형 출입문과 청동 첨탑은 성당이나 교회가 아닐까 생각이 들게 하지만, 이곳은 1921년에 지어진 천도교 중앙대교당이다. 일제강점기에 명동성당, 조선총독부와 더불어 서울에서 가장 아름다운 건물로 손꼽혔다는 천도교 중앙대교당은 일제의 방해에도 불구하고 300만 명에 이르렀던 천도교인들이 십시일반 모은 기금으로 세워졌다. 건축 기금의 상당 부분은 독립운동에 필요한 자금으로 사용됐다고 한다. 역사 교과서에서 읽을 수 있을 법한 오래된 이야기이지만, 최근 몇 년 사이 천도교는 사회개혁에 앞장섰던 이전의 모습을 되살리기 위해 기지개를 켜고 있다. 천도교 생명평화운동단체 ‘한울연대’의 사무총장을 맡고 있는 김용휘 씨를 인사동 입구의 한 카페에서 만났다.

▲ 김용휘 한울연대 사무총장 ⓒ한수진 기자

천도교는 수운 최제우(1824-1864) 선생이 창시한 동학에서 출발했다. 동학을 흔히 서학(西學)에 대항해 동양(東洋)의 학문을 만든 것으로 알고 있지만, 사실 동학의 ‘동’은 조선을 지칭하는 단어로 동학은 ‘조선의 학’이라는 뜻이다. 서학뿐 아니라 중국에서 온 유학을 대체할 ‘우리나라 백성의 삶에 알맞은 학문’을 만든 것이었다. 이후 해월 최시형(1827-1898) 선생을 거쳐 3대 교조인 의암 손병희(1861-1922) 선생이 근대적인 종교 교단의 형태로 교리를 체계화하고 합리화해 동학을 천도교로 개편했다.

김용휘 사무총장은 천도교의 기본 정신을 “모든 사람이 한울님처럼 대접받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천도교의 ‘한울님’은 가톨릭의 ‘하느님’이라고 생각하면 된다. 천도교에서는 한울님이 우주 만물을 창시했으며 모든 인간이 각각 마음속에 한울님을 모신다고 여긴다. 뿐만 아니라 모든 생명체와 심지어 돌과 같은 무생물에도 한울님이 깃들여 있다고 본다. 그래서 한울님을 공경하듯이 세상 모든 것을 공경해야 한다고 가르친다.

천도교의 기본 정신 “모든 사람을 한울님처럼”
일제강점기 독립운동에 천도교의 사회참여와 지원 큰 역할

‘만물을 공경하라’는 경물(敬物) 사상은 천도교의 역사가 한국사회의 역사와 궤를 같이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이기도 하다. 남자와 여자, 양반과 노비의 신분을 떠나 모든 사람은 평등하고 존중받아야 한다는 동학의 가르침이 민중들의 전폭적인 지지를 얻으며 조선 반도 곳곳에 널리 퍼지지 않았다면 양반 관리들의 악랄한 수탈과 부패에 반기를 들고 일어난 동학농민운동은 그보다 훨씬 나중에 일어났을지도 모를 일이다.

천도교인들은 1904년 갑진개화운동과 1919년 3.1운동 등 개화기와 일제강점기의 혼란스러운 역사 속에서도 핵심적인 역할을 했다. 독립선언문에 서명한 민족대표 33인 중 15명이 천도교인이었고, 1920년에 천도교 청년회는 교단의 지원을 받아 종합월간지 <개벽>을 창간해 민중들의 독립의식을 고취하는 공을 세웠다.

그러나 천도교는 일제의 탄압으로 1930년대에 교세가 위축되기 시작했다. 해방과 분단 이후에는 천도교의 중도노선이 양쪽 진영 모두에게 환영받지 못하면서 교세가 더욱 약화됐다. 한때 조선의 최대 종단이었던 천도교 교인의 수는 오늘날 대한민국 인구의 0.1%에 불과하다. 그에 비례해 천도교인의 사회참여활동도 급격히 줄어들었다.

“그동안 천도교는 통일운동에 조금 참여했을 뿐 이렇다 할 사회운동을 펼치지 못했던 것이 사실이에요. 이제라도 생명을 공경하는 경물사상을 사회적인 실천으로 풀어내기 위해 한울연대가 만들어졌죠. 천도교 중앙총부에서 먼저 실천운동단체의 필요성을 제기했고 그와 동시에 교인들의 자발적인 설립을 제안했어요. 저는 원래 취지문과 정관에 자문을 해달라는 부탁을 받았는데 어찌하다 보니 사무총장까지 맡게 됐네요.”

▲ 2011년 3월 4대강 되찾기 기도회에 참여한 한울연대 회원들 (사진제공/한울연대)

생명 공경하는 천도교의 생명평화운동은 당연한 일
일상을 바꾸는 ‘시천주 운전’ 운동부터 탈핵 운동까지

2010년 8월 14일에 설립된 한울연대의 첫 대외 활동은 이듬해 전국을 떠들썩하게 했던 구제역 대응활동이었다. 한울연대는 3월 1일 5대 종교 환경단체들과 함께 구제역 생명위령제를 열고 ‘생명평화선언문’을 발표했다. 그해 여름에는 천주교 창조보전연대를 비롯해 기독교 · 불교 · 원불교 환경운동단체들과 고리원자력발전소, 4대강 공사현장, 부산 한진중공업을 방문한 생명평화순례를 다녀왔다. 작년 여름에는 탈핵을 주제로 고리에서 삼척까지를 순례했다.

한울연대는 일상생활에 곧바로 적용할 수 있는 실천운동도 벌이고 있다. 그중 대표적인 것이 ‘시천주 운전 운동’이다. 운전자 자신과 자동차, 스쳐 지나가는 사람과 동물, 다른 자동차와 운전자를 존중하는 태도로 운전을 하자는 실천운동이다.

“운전문화에는 우리나라의 문화가 집약되어 있습니다. 빨리빨리, 생명을 존중하지 않는 성장 위주의 속도 전쟁은 운전하는 태도에서 그대로 나타나죠. 시천주 운전 운동은 운전문화를 변화시켜 한국사회 전반의 문화를 바꾸는 것이 최종 목표예요.”

차를 타고 시동을 걸기 전에 안전하게 다녀오게 해달라고 기도 드리기, 가는 동안 만나는 모든 생명을 존중하고 먼저 양보하기, 다른 차가 끼어들어도 화내지 않기, 급하게 운전하지 않기. 시천주 운전 운동이 제안하는 생명을 존중하고 평화를 지키는 운전법이다. 한울연대에서는 차량스티커를 제작해 시천주 운전을 실천하는 운전자들에게 배포하고 있다. “스티커를 자동차에 붙이면 이를 보는 다른 운전자들에게도 영향을 줄 수 있고, 또 당사자는 남의 눈을 의식해서라도 시천주 운전법을 따르게 되는 효과가 있다”고 김용휘 사무총장이 말했다.

“운전뿐만 아니라 시천주 밥상 운동, 시천주 술 문화 운동 등으로 확대하려고 해요. 시천주 운동은 아이들 교육에도 적용될 수 있어요. 방정환 선생이 천도교 청년회 핵심 간부로 활동했던 천도교인이었다는 것 알고 계세요? 아이는 부모의 소유가 아닌 한울님을 모시는 온전한 인격체예요. 한울님을 대신해서 아이의 양육을 맡은 거죠. 부모가 아이의 뜻을 살피고 대화의 상대가 되자는 거예요.”

‘개벽’ 운동의 계보를 이어 생명평화운동으로
“지금 우리가 사는 이곳을 천국으로 만들어야”

김용휘 사무총장은 한울연대의 활동이 동학 초기에 수은 최제우 선생과 해월 최시형 선생이 펼쳤던 ‘개벽(開闢)’ 운동을 이어간다고 생각한다. 밥을 먹고, 일터에 가고, 사람들과 어울리는 일상의 삶을 변화시키고 사회를 바꾸는 일은 새로운 세상을 여는 것과 마찬가지의 일이다. 무엇보다 생명과 평화의 가치를 되살리는 일이 요즘 세상에 가장 절실한 문제이기 때문이다. 100년 전 이 땅에서 독립이 최우선의 과제였다면, 지금은 생명과 평화를 지키는 것이 최우선이다. 김용휘 사무총장은 “옛날 스승님들이 하고자 하신 일이 오늘날에는 바로 생명평화운동”이라고 목소리에 힘을 줬다.

▲ 2012년 7월 광화문광장에서 두물머리 지키기 일인시위에 나선 김용휘 사무총장(왼쪽) (사진제공/한울연대)

물론 세상에 바른 소리를 하고 그대로 실천하며 살아가기는 쉬운 일이 아니다. 무엇보다 모든 일이 내 뜻대로 굴러갈 수 없고 모두가 내 마음 같지 않기에 올바르게 살아가려는 노력은 좌절과 분노가 따르지 않을 수 없다. 돈과 권력이 법을 앞서고 돈과 권력이라면 거짓도 진실로 만들어버리는 세상의 벽 앞에서 실제로 많은 이들이 우울증이나 무기력증을 경험한다. 세상을 바꿔보겠다고 마음을 무장한 시민단체 활동가들도 예외는 아니다. 한울연대가 실천에 앞서 수련을 중요하게 여기는 이유다.

“수련을 하는 이유는 실천을 하기 위해서예요. 수련은 대단한 깨달음을 얻으려는 게 아니에요. 마음을 항상 다스리고 맑고 밝게 유지하려는 거죠. 한 해에 1-2회씩 여름과 겨울에 1주일 또는 49일 수련을 가져요. 저도 이번 겨울에 49일 수련에 들어갔었고, 회원들이 부분적으로 참가했어요.”

본래 김용휘 사무총장의 직업은 대학에서 동양철학과 한국철학을 가르치는 비정규직 교수다. 지금도 한울연대 활동과 강의를 병행하고 있다. “어찌하다가” 반종교인, 반활동가의 직함을 얻기는 했지만, 그는 햇수로 3년간 한울연대 활동을 하면서 “꾸준히 이 길을 가는 것이 의미있다”고 생각하기에 이르렀다고 한다.

“저 역시도 아픈 현장을 보면서 분노에 사로잡히고 화도 나고 답도 안 나와 답답함을 느낀 적이 많았어요. 하지만 운동은 묵묵히 가는 것이라는 생각을 하게 됐어요. 지금 이 길이 진리의 길이기 때문이에요. 아직 세상을 바꾸지는 못했지만 제 자신은 많이 바뀌었어요. 새로운 세상은 가만히 있는 다고 오는 게 아니에요. 내 마음을 평화롭게 하는 것을 시작으로 모든 것을 한울님처럼 존중하는 세상이 새로운 세상이자 천국인 거죠. 지금 우리가 사는 이곳을 천국으로 만들어야 해요.”

인터뷰가 끝나자 김용휘 사무총장이 커피를 비운 잔에 찬 물을 따랐다. 주전자와 잔을 다루는 그의 손은 조심스러우면서도 야무졌다. 주전자에도 잔에도 물속에도 한울님이 깃들어있기 때문일까. 예수가 사랑하라고 당부한 ‘이웃’도 사람만을 지칭한 것은 아니었을 거다. 하느님이 세상에 사람만 만들어주신 것이 아닌 것처럼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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