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강정 힐링포차 주모 오영애 씨
오영애 씨가 달궈진 프라이팬에 무엇인가 볶고 있다. 매콤한 향이 퍼지는 게 오징어 볶음인 것 같다. 대여섯 명의 자원봉사자들도 오영애 씨 주변을 분주하게 오가며, 주문 내용을 전달하고 요리가 끝난 음식을 천막 안으로 나른다. 차림표에는 돼지고기 두부찌개, 오징어 볶음, 파전, 어묵 우동 등의 목록이 적혀 있다. 3월 6일 저녁, 종로 조계사 옆 우정총국 시민광장에서 열린 ‘강정마을 수호천사 힐링포차’(이하 힐링포차)의 풍경이다.
힐링포차의 목표는 강정마을에서 해군기지 건설 반대활동을 벌이다 1인당 200만 원부터 많게는 400만 원까지 벌금형을 받은 활동가 12명의 벌금을 마련해 주는 것이다. 스스로 힐링포차의 ‘주모’라고 소개한 오영애 씨가 강조하는 것은 강정마을 활동가들이 교통을 막고 공사를 방해한 것이 사실이더라도, 벌금 수백만 원은 가혹하다는 것이다.
“미국산 쇠고기 수입반대 촛불집회 때 기소된 사람들이 받은 벌금이 수십 만원부터 150만 원 정도였다고 해요. 세종로를 막고 촛불을 들었는데, 어찌 보면 서울 시민들에게 큰 불편을 줬죠. 이에 비해 강정마을은 교통량이 많은 곳도 아닌데, 법을 위반했다고 하더라도 400만 원의 벌금은 지나칩니다. 해군기지 찬성, 반대 이전에 형평성의 문제예요.”
“딸 같은 젊은이들을 노역장에 보낼 수는 없다”
힐링포차의 발단은 오영애 씨의 작은딸이었다. 처음에는 업무 때문에 제주도에 갔던 딸은 강정마을을 알게 됐고, 해군기지가 세워지는 모습을 봤다. 이후 반년 동안 딸은 아르바이트로 돈을 벌며 서울과 제주도를 오갔고, 강정마을에서 일어나는 일을 영상에 담았다. 벌금형을 받은 평화활동가 12명은 그때 알게 된 젊은이들이었다.
서울로 돌아와 일하기 시작한 딸은 함께 지내던 활동가들이 수백만 원이나 되는 벌금형을 선고받자 괴로워했다. 게다가 벌금을 낼 형편이 안 되는 활동가들이 노역장 유치를 감수하겠다고 하자 딸은 직장을 그만두고 다시 강정마을로 내려갈 작정을 했다. 딸과의 대화 끝에 오영애 씨는 자기가 대신 나서서 활동가들의 벌금을 마련하기 위한 포장마차를 열기로 결심했다.
지난 1월 28일 오후, 힐링포차는 서울 영등포 민주당 당사 앞에서 첫 포장마차를 열었다. 이를 앞두고 적은 글에서 오영애 씨는 해군기지 반대를 위해서도 아니고, 강정마을을 위해서도 아니며, 딸 같은 젊은이들에게 노역을 시킬 수는 없다는 일념 하나로 ‘전국 투어 포장마차’를 시작한다고 선언했다. 지인들의 도움으로 트럭과 천막을 빌리고 초기 자금도 후원 받았다.
힐링포차는 서울 홍대 앞, 혜화동, 성남, 수원, 인천 등 수도권 곳곳을 누비고 다녔고, 지금까지 목표액 5천만 원의 절반을 조금 넘는 2천 6백만 원을 모았다. 서울 신정동 성당, 인천 부평1동 성당에서 식당을 이용할 수 있도록 도움을 주기도 했다. 사용료를 지불하며 유료주차장을 쓴 때도 있다.
“평범하게 살고 싶었는데 딸내미가 나를 깨우네요”
오영애 씨가 이처럼 ‘특별한’ 포장마차를 운영하는 게 처음 있는 일은 아니다. 2002년 10월, 당시 노사모 회원이었던 그는 대통령 후보 노무현을 돕기 위한 희망포장마차를 이끌고 전국을 순회했던 사람이다. 두 아이의 어머니이자 ‘평범한 직장인’이었던 오영애 씨의 삶은 이때 많이 바뀌었다.
이명박 정부 들어서 미국산 쇠고기 파동 이후에는 촛불을 들고 아스팔트 위에서 살다시피 했다. 용산 참사 때는 철거민들에게 무엇이 필요할까 생각한 끝에 남일당 앞에 천막을 치고 떡국을 끓였다.
2년 전, 오영애 씨에게도 한계가 왔다. 자신이 해결할 수 있는 일은 아무것도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점점 나빠지는 듯한 세상을 보며 기운은 빠지고, 생활은 어려워졌다. 결국 아스팔트와 작별하고 안정된 일상으로 돌아가기로 마음먹었다.
“귀를 막고, 뉴스를 보지 않았어요. 생활이 크게 나아지지 않았지만, 거리에 나가지 않으니 몸은 피곤하지 않죠. 그러다 이번에는 ‘딸내미’가 나를 깨운 거죠.”
불교 신자이기도 한 오영애 씨는 ‘위구’(危求)라는 불명(佛名)을 갖고 있다. ‘위급할 때 구하라’는 뜻이다. 불명을 지어준 스님에게 “왜 이렇게 남자 같고 이상한 이름을 지어주냐”고 따졌지만 불명을 바꾸지는 못했다. 2002년 대통령선거 이후 TV 방송에서 오영애 씨가 ‘대통령을 만든 사람들’ 중 하나로 소개되는 것을 보고 스님으로부터 전화가 왔다. 오영애 씨가 “스님이 이런 불명을 주셔서 제가 힘든 일을 하잖아요?” 하고 농담을 던지니 스님은 “그게 네가 할 일이야” 하고 말했다.
“힐링포차를 운영하다 보니 스님이 다시 떠올랐어요. 내게 위구라는 불명이 있었다는 것도 생각났고요. 아직도 내 업보가 풀리지 않았나 보다 하는 생각이 들었죠.”
힐링포차, 4월 6일까지 5천만원 모금이 목표
힐링포차는 4월 초까지 숨 가쁘게 전국을 돌아다닐 예정이다. 당장 오늘(3월 11일)은 서울 서대문구청 앞 광장에서 오후 6시부터 11시까지 포장마차를 열고, 15일 분당 황새울공원을 끝으로 수도권 일정을 마무리한다. 19일부터는 전주를 시작으로 영호남 곳곳을 거쳐 4월 6일 제주도에서 마지막 힐링포차를 열고 다음 날 강정마을에 후원금을 전달할 계획이다.
오영애 씨는 힐링포차 여정을 마무리하며 자원봉사자로 참여해준 사람들을 제주도에 초대할 생각이다. 비록 강정마을의 상황이 어렵지만, 힐링포차를 마무리하며 잔치를 벌이자는 것이다. 이런 잔치가 사람들에게 희망이 되고, 힐링이 되길 바라는 게 오영애 씨의 마음이다.
인터뷰를 마치며 오영애 씨는 포차 주모답게 음식 자랑을 빠뜨리지 않았다.
“손님들에게 보답하는 마음으로 화학조미료를 전혀 쓰지 않고, 어묵은 부산에서, 돼지고기는 제주에서, 고춧가루는 함평에서 택배로 조달해요. 재료에 투자를 많이 하고 있습니다. 남은 기간에 목표액을 모을 수 있도록 많은 분들이 와주셨으면 좋겠어요.”
* 힐링포차 일정은 블로그 blog.daum.net/kookluv 에서 확인할 수 있습니다.
* 후원 계좌 - 우리은행 1002-347-926696 김가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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