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볼리비아 선교일기]

볼리비아에 산다면 절대 피해 갈 수도, 무관심할 수도 없는 것이 바로 코카이다. 별로 특별하게 생겼달 것도 없는 이 작은 잎은 복잡한 사회적 이슈들을 만들어내며 수많은 논쟁과 갈등의 원인이 되어왔다. 신문 국제면을 자주 읽는 사람에게는 전혀 새로운 이야기가 아니겠지만, 코카 문제는 단지 한 국가의 문제일 뿐 아니라, UN에서도 오랜 시간에 걸쳐 여러 차례 논의될 만큼 국제적인 쟁점이다. 안데스 문화 속에 사는 사람으로서 코카의 문화적, 역사적 의미와 코카를 둘러싼 논쟁에 대해 짧게 나누어보려 한다.

▲ 코카나무 ⓒ이윤주
안데스 지역에서 약초와 음식 재료로 쓰이는 코카 잎

코카(Coca)는 볼리비아, 페루 등의 안데스 산지에서 재배되고 자라는 식물이다. 이 지역 사람들은 코카 잎을 따서 음식의 재료로 쓰거나 차를 만들고 약초로도 사용한다. 특히 코카 잎은 농축된 비타민 함량이 높아 면역체계에 도움이 되기도 하고 지방을 분해해 체중 감소에도 효과가 있으며 소화를 돕고 고산병의 증상에도 도움을 주는 등 다양하게 사용된다.

코카 잎의 재배와 사용의 역사는 콜럼버스가 미 대륙과 문화를 발견하기 훨씬 전인 약 4천 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이 시기 안데스 지역의 여러 고대 문명에서는 코카 잎을 단순한 식물이나 음식이 아닌, 매우 신성한 어떤 것으로 여겼으며, 이후 잉카문명에서는 코카가 신으로부터 받은 선물이라는 신화 이상의 강한 믿음을 가져왔다. 그래서 코카는 오랜 세월 안데스 문화에서 중요하고도 필수적인 자리를 차지해 왔는데 특히 이곳 볼리비아 사람들에게는 삶을 대표하는 가장 중요한 영적·물적 양분이 되어왔다.

볼리비아에서 살면서 나는 그들이 안데스 인이든 아니든 하나같이 코카를 신성하고 중요하게 여기며 날마다 그 소중함을 기억하는 모습을 본다. 코카 재배농가의 규모 또한 적지 않아 이 나라 농업에 큰 부분을 차지한다. 코카 재배는 수많은 사람의 생업이기도 하다.

그렇다면 무엇이 코카를 이렇게도 특별하게 만들어 주는가. 무엇보다도 그들은 어머니이신 대자연(파차마마 – 지난 칼럼에서 소개)에게 감사와 존경을 드리는 예절을 포함한 여러 안데스 전통 의식에서 코카 잎을 많이 사용한다. 그러나 더 큰 의미는 안데스 전통문화를 원시적인 문화로 간주하여 말살시키려 했던 오랜 세월 동안의 차별정책을 견뎌낸 그들의 문화유산과 정체성, 그리고 우주를 아우르는 그들만의 세계관이 바로 코카 잎 안에 담겨있다는 데에 있다.

실제로 볼리비아 인들이 코카 잎을 일상생활에서 사용하는 방법은 마치 오늘날 많은 현대인이 커피나 차, 담배 등을 사용하는 것에 비할 수 있다. 잘 말린 코카 잎을 한 움큼 입안에 넣고 씹으면 배고픔이나 피로감을 완화해준다. 그래서 충분한 음식을 섭취하지 못한 채 오랜 시간 동안 고단한 육체노동을 해야 하는 많은 사람이 코카 잎을 씹으며, 마치 우리가 담배를 피우거나 커피를 마시는 것과 같은 효과를 느끼는 것이다. 이제 누군가의 삶에 이렇게도 중요한 코카가 왜 바깥세계에서는 그렇게도 부정적인 존재로 인식되고 있는가를  이야기해야 할 것 같다.

▲ 말린 코카 잎(왼쪽)과 '코카 잎은 마약이 아닙니다' 홍보 티셔츠(오른쪽) ⓒ이윤주

개종을 위한 정복자들의 코카 재배 탄압
 
스페인 정복자들이 처음 이 땅에 왔을 때, 원주민들이 코카를 그들의 전통 종교의식에 사용하는 것을 보고, 그것이 원주민들을 그리스도교로 개종시키는데 큰 걸림돌이 될 수 있겠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정복자들은 원주민들을 ‘구원’한다는 명분으로 코카를 재배하지 못하도록 온갖 정책을 펼쳤다. 이것이 코카가 가진 오래된 슬픈 역사의 이야기이다.

그럼 현대사회에서는 어떠한가. ‘코카’라고 하는 단어 자체가 ‘코카인’이라는 단어와 같은 의미로 받아들여질 때가 많다. 하지만 코카 잎을 씹는 것과 불법 마약인 코카인을 사용하는 것은 근본적으로 다르며 그 두 가지가 혼동을 일으켜야 할 이유도 전혀 없다. 코카인과는 달리 코카 잎을 씹는 것은 사람을 중독되게 만들지도 않으며 중독 증상을 나타나게 하지도 않는다. 코카 잎은 중독성이 있는 알콜이나 니코틴과도 엄연히 다르다. 그럼에도, 약간의 처리 과정을 통하면 코카인을 추출해낼 수 있다는 사실 때문에 코카 재배 자체를 아예 근절시키려는 잘못된 정책들이 시행되고 있다.

그 정책을 시행하는 가장 큰 주체 중 하나는 미국이다. ‘마약과의 전쟁’을 선포한 이래로 미국 정부(정확하게는 DEA – 미국마약단속국)는 볼리비아와 같은 가난한 나라의 코카 재배와 소비를 근절하기 위해 엄청난 재정을 투입해 당국을 교묘히 조종하고, 사람들에게 압력을 넣거나 군사력을 개입시켜왔다. 그 과정에서 자행된 셀 수 없는 잔혹 행위는 이 글에서 언급하지 않겠지만, 기록만은 충분히 남아 있다. 볼리비아의 현직 대통령인 에보 모랄레스가 당선되면서 미국마약단속국(DEA)은 더 이상 볼리비아에서 작전을 시행하지 않고 있다.

'마약과의 전쟁'을 선포하며 가난한 남미 국가에 군사력을 개입시킨 미국

그러나 여기서 꼭 알아야 할 것은, 볼리비아에서 엄청난 양의 코카가 생산되고 그 전량이 코카인으로 만들어져 다른 나라로 밀반출되고 있다는 것은 사실이 아니라는 것이다. 오래전부터 볼리비아에서 코카는 법으로 정해진 일정량만이 생산되고 차나 약초, 음식재료로 쓰이는 국내 소비 또한 볼리비아 정부의 규제를 받고 있다. 일부 부도덕한 사람들이 비밀리에 코카를 재배해 코카인을 만들어 유통해 돈을 버는 행위가, 볼리비아에서 합법적으로 코카를 재배하고 소비하는 선량한 사람들의 평판을 나쁘게 할 뿐 아니라 그들의 생업마저 위기에 처하게 만들었다.

나는 이 글을 읽는 이들이 코카를 둘러싼 이슈에 대해 정확히 이해하기를 바라고, 나 또한 가톨릭 선교사로서 그것을 어떻게 이해하게 되었는지를 말하기 위해서 이 글을 쓰고 있다. 안데스 인들의 독특한 정체성을 상징하는 방법(코카)을 통해 하느님께 감사와 찬미를 드리는 그들의 전통 예절도 경험했고, 가톨릭의 예절에서도 코카 잎이 사용되는 것을 보았다.

이 코카 잎 문화를 경험하며 동양문화를 가진 가톨릭 신자인 나는 우리 전통문화인 효(孝)를 떠올린다. 한국 천주교의 역사를 보면 조상을 기리고 제를 드리는 전통이 교회에서 받아들여지지 않았던 때가 있었다. 이교도로 낙인찍히는 것이 많은 이들의 마음을 아프게 하기도 했고, 전통을 포기하는 것을 죄스럽게 느낀 많은 신자가 교회를 떠나기도 했다. 그러나 지금은 교회가, 동양문화에서 효(孝)사상이 얼마나 중요한가를 알고 그 전통을 지키는 것이 우리의 종교적 믿음을 지키는데 방해가 되지 않는다는 것을 온전히 받아들이고 있지 않은가. 코카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전통문화와 종교적 믿음사이에서 혹시라도 혼란이 온다면 우리 교회의 역사 속에 살아있었던 이 경험을 떠올려 보는 것은 어떨까.

덧붙이자면, 알콜과 니코틴 중독의 증가로 인해 많은 우려를 낳고 있는 오늘날, 소주잔 기울일 때마다, 혹은 담뱃불 붙일 때마다, 지구 반대편에서 부당하게 비난받고 있는 코카 잎의 억울한 마음을 헤아려보는 것도 인간으로서의 예의가 아닐까 싶다.

이윤주 수녀 (메리놀 수녀회, 볼리비아 선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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