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병우의 그림 에세이]

 
얼마 전 불의의 사고로 느닷없이 남편을 잃은 부인이 한탄하며 하는 말을 들었다.
그렇게 갈 줄 알았으면 그토록 좋아하던 술을 그냥 먹게 내버려 둘 것을
그럴 줄 알았다면 좋은 안주로 술상을 봐서 한 잔 따라주며 권해볼 것을...
술 마시는 것이 보기 싫어 내내 말리고 타박하고 미워하며 싸웠던 것이 후회된다고...

남편도 그렇게 술을 마실 수 밖에 없었던 나름의 이유가 있었을까?
모든 행동에는 이유가 있으니까.
어쩌면 어릴 적에 감정을 발산하지 못하는 환경에서 자라 억압한 성정을
술을 빌어 숨통을 틔우려 했던 것인지도 모른다.
사실 우리는 이 세상에서 초라하고 약점 투성이인 나를 온전히 받아줄 한 사람을
찾아 일생을 헤매는 것은 아닐까?
그래서 사람에게서 구할 수 없을 때 신에 의지하기도 하고
기댈 곳 없어 술에 취해버리는 것이다.

때로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를 헤매는 것 같은 거친 세상살이에
신의 지팡이 같이 나를 안위할 그 무엇이 필요하지 않은가?
누군가 비난이나 질책없이 있는 그대로의 나를 수용해 준다면
세상을 다 얻은 기분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게 어디 쉬운 일인가?
부인이 매일매일 정성껏 따라주는 술을 받은 남편은 그 수용에 감동해
어쩌면 술을 끊었을까?
굳이 술이 아니라도 위로 받을 곳이 있으므로.

상대를 바꾸려는 시도는 흔히 상대를 위해서라지만
정작은 상대를 내 맘에 맞게 개조해 보려는 의지는 아닐까?
그런데 사람이 원망이나 비난, 잔소리에 의해 바뀌게 될까?
오히려 자신을 몰라준다는 억하심정에 더 엇나갈지도 모른다.
상대를 바꾸는 방법은 딱 두 가지,
엄청난 감동을 주어 상대로 하여금 스스로 바뀌게 하거나
아니면 내 시선을 아예 상대를 수용하는 것으로 바꿔버리는 것이다.
나는 바뀌지 않으면서 상대만 바꾸려는 시도만큼 부질없고 헛된 것도 없다
굴러떨어지는 바위를 보람도 없이 거듭거듭 올려야 하는
시지프스의 신화처럼...
그간의 내 쓰라린 경험에 의하면 말이다.

많은 부인들이 남편의 음주를 싫어하는 데에도 나름 이유는 있을 것이다.
추측컨대 혹시 이렇게 항변하지 않을까?
고작 술에서나 위로 받는다면 당신에게 나는 뭐냐고,
술보다도 못한 존재냐고,
술에 취해 몽롱한 상태가 아니라 명징한 정신으로 나를 좀 봐달라고,
내게 집중해 달라고,
내가 많이 외롭다고.

정월 대보름
누군가는 달을 보며 이런 소원을 빌고 있을지도 모르겠다.
"그를 바꾸기보다 내가 바뀌게 해주시고
수용하기 힘든 것들을 수용할 수 있게 해 주세요"
 

   
 
윤병우(화가). 전공은 국문학이지만 20여년 동안 그림을 그려왔다 .
4대강답사를 처음으로 사회문제에 관심을 갖게 되었고 탈핵,송전탑, 비정규직,정신대할머니 등 사회적인 이슈가 있는 현장을 다니며 느낀 것과 살아가면서 떠오르는 여러가지 생각들을 글과 그림으로 표현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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