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중해 파노라마-10]

어느덧, 흙먼지를 뿌옇게 일으키며 연(鳶)날리기를 하고 땅뺏기놀이를 하던 동네 꼬마들의 함성도 모두 그쳐버리고, 조가비처럼 다닥다닥 늘어선 진흙집 작은 창문마다 하나, 둘 촉수 낮은 오렌지색 전등불이 밝혀지고 있었다.

한동안 땅거미가 내리는 어두운 골목길을 무작정 이리저리 돌아다니다 보니, 예배시간이 지난 어느 모스크의 출입문 앞에 모여앉아, 한가로이 담소를 나누는 모슬렘 노인들의 모습이 시야에 들어왔다.

가까이 다가가서 “지금 뭘 하고 계세요?”하고 묻자, 그들은 “트럭에 소금을 싣고 오지 마을로 돌아다니며 물물교역을 하는 베르베르족(Berber) 상인을 기다리는 중”이라고 대답했다. 오호라, 트럭에 소금을 싣고 오지마을을 돌아다니는 아랍상인들이라. 일순간 호기심이 발동하여, 모슬렘 노인들에게 재차 물어보았다.

“혹시, 제가 그 베르베르족 상인들을 좀 만날 수 있을까요?”
“글쎄올시다, 다른 때 같으면 벌써 도착하였으련만, 어째 오늘은 무슨 일이 있는지, 아직까지 전혀 기별이 없수다.”
“그런데 트럭에 소금을 실어 나르는 베르베르족 상인들이 맨 처음 출발하는 지점은 어느 곳이라고 하던가요?”
“아, 그 사람들은 동부 홍해(紅海) 연안에서 생산되는 소금을 트럭에 싣고, 머나먼 아라비아 사막을 경유하여 이곳 룩소르로 들어와서, 다시 서부 사하라 사막 일대에 흩어져 있는 오아시스 지역을 돌아다니며 물물교역을 하고 있다오.”

▲ 예배시간이 지난 모스크 앞에서, 한가로이 담소를 나누는 모슬렘 노인들. ⓒ수해
다음날 아침, 나일 강 중류 지역의 비옥한 농경지에서 재배한 각종 채소와 과일을 역마차에 가득히 싣고 나와 소금과 물물교환을 시도하고 있던 모슬렘 노인들은, 나에게 약속대로 베르베르족 상인들을 소개해 주었다.

귀중한 홍해의 소금과 맞바꾼 각종 농산물을 분주히 트럭에 실어 나르던 베르베르족 상인들은, ‘지금부터 나일 강 서쪽, 룩소르에서 약 200km 되는 알-카르가(Al-Kharga)주에 위치한 카르가 오아시스(Kharga Oasis)로 출발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아까부터 호기심 어린 표정으로 물물교환 과정을 묵묵히 지켜보고 서 있던 나에게 물었다. 지금부터 함께 소금 트럭을 타고 사막 여행을 떠나보지 않겠느냐고.

물론, 당장에라도 그들과 함께 낯선 서부사막을 향해 떠나고 싶었다. 하지만 일전에 아부심벨 선착장에서 헤어질 때, 열흘 후에 멤피스에서 다시 만나기로 한 누비아 화공과의 약속을 지켜야 했기에, 아쉽지만 동행을 할 수 없었다.

더듬더듬 손에 들고 있던 포켓용 아랍어 독본을 뒤적이며, 조사를 몽땅 생략한 채 책을 읽듯이 몇 개의 핵심단어만 간신히 나열하면서, 최선을 다해 나의 사정을 이야기해 보았다. 그런데 용케도 내 말뜻을 모조리 알아들은 것일까. 일행 가운데, 섬세한 솜씨로 화려하게 수놓은 가죽 망토를 멋지게 두른 어느 베르베르족 상인이 갑자기 손뼉을 짝짝 치더니, 뜻밖에도 주머니에서 성능이 매우 뛰어난 최신식 휴대폰을 꺼냈다.

다행히도 누비아 화공은 아직 아부심벨에서 멤피스로 출발하지 않은 상태였다. 그는 준비해가지고 갔던 그림이 모두 팔렸기 때문에, 당분간 멤피스에 돌아가 가족들과 함께 지내면서 그림 그리는 일에 몰두하고 있을 테니, 나더러 서두르지 말고 천천히 사하라 사막 일대를 한 바퀴 둘러보고 오라고 말했다. 전혀 예기치 않은 장소에서 소금장수 아랍상인의 도움을 받으며 전화 통화로 순조롭게 약속을 보류하고 나자, 드디어 가벼운 마음으로 헌털뱅이 소금 트럭에 올라, 내가 오래전부터 꼭 한번 방문해 보고 싶었던 카르가 오아시스로 향했다.

▲ 사막의 정취를 듬뿍 담아 전하는 노천가게의 수공예품. ⓒ수해
고대 파라오 시대부터 사막을 횡단하는 실크로드 카라반(caravane, 隊商)들의 중개지이자, 북아프리카와 열대 남부 지방을 잇던 악명 높은 노예교역로의 종착지로도 더욱 잘 알려진 카르가 오아시스는, 현존하는 이집트 서부 사하라 사막 일대에 흩어져 있는 다섯 개의 오아시스 중 가장 현대화 된 곳으로, 나세르 호수가 생긴 뒤 무작위로 이주해온 1,000여 명의 누비아인을 포함하여 현재 약 6만 명의 인구가 거주하고 있다.

몇 군데의 구석기시대 유적과, 이슬람 점령기에 이 지역을 정복한 페르시아의 다리우스 1세(Darius I)에 의해 기원전 522년에 완공된 히비스 신전(Temple of Hibis)과 초기 기독교 시대의 공동묘지인 알-바가와트(Al-Baghwat )유적이 아직도 고스란히 원형을 보존하고 있는 카르가 오아시스로 가는 길목에는 드문드문 재래식 기구를 이용하여 아랍 전통커피를 끓여내는 노천카페와 사막의 정취를 듬뿍 담아 전하는 작은 민예품 상점들이 지루하지 않을 정도로 알맞게 자리하고 있었다.

때때로 노천카페에 들어가, 각종 열대과일을 갈아서 만든 주스와 향이 진한 아랍 커피를 번갈아 마시면서 회오리바람이 휘몰아치는 사막공로를 내처 치달려가다가 보니, 정오 무렵 드디어 카르가 오아시스 중심가에 당도하게 되었다.

보름에 한 번씩, 멀리 아라비아 사막을 경유하여 트럭에 소금을 싣고 나타나는 베르베르족 상인들이 소형 확성기를 손에 들고 노련한 솜씨로 소금판매를 하기 시작하자, 삽시간에 트럭주변에는 물물교환을 원하는 수많은 유목민이 모여들어, 즉석 바자(Bazaar, 시장)가 성황리에 펼쳐졌다. 당나귀 수레 위에, 양털로 짠 다양한 무늬의 카펫과 가죽제품을 비롯하여, 각종 향신료와 아기자기한 민예품을 싣고 나와 소금과 맞바꾸려는 이들의 함성으로 떠들썩하기가 그지없는 즉석 시장에서, 한동안 아랍유목민들의 독특한 생활양식을 흥미롭게 구경하다가, 천천히 홀로 휘파람을 불면서 고대의 유적지를 찾아 나섰다.

▲ 오아시스 마을의 하얀 비둘기 집. ⓒ수해
일단 알-카르가 시내에서 2km 거리에 있는 히비스 신전을 둘러보고 나서, 알-바가와트 유적지를 향해 걸어갔다. 그런데 한낮의 열기로 뜨겁게 달아오른 사막의 메마른 들녘에는, 구석구석 흙벽돌을 정교하게 쌓아올리고 표면에 회반죽으로 두텁게 덧칠을 한 채, 일정한 간격으로 고르게 구멍을 뚫어놓은 새하얀 비둘기 집들이 서 있었다.

흡사 ‘사막의 등대’처럼 보이는 아름다운 비둘기 집들을 흥미롭게 구경하면서, 나즈막한 언덕 위에 고만고만한 크기로 가지런히 늘어서 있는 고대의 기독교 공동묘지 속으로 걸어 들어가, 현재 외부인에게 개방해 놓은 ‘평화의 예배당(Chapel of Peace)’과 ‘포도의 예배당(Chapel of Grape)’을 지나, ‘출애굽 예배당(Chapel of Exodus)’안에 그려진 벽화의 내용을 성서의 기록과 대조해가면서 꼼꼼히 살펴보았다.

분지(盆地)지형으로 인한 고온 건조한 환경과 사나운 모래폭풍으로 인해 유적의 외부는 상당 부분 소실되었으나, 아브라함과 이삭, 노아의 방주, 모세의 출애굽 노정을 비롯한 구약성서의 내용을 매우 사실적으로 묘사해 놓은 예배당 내부의 벽화는, 수천 년의 시간을 아랑곳하지 않고 여전히 고색찬연한 아름다움을 유지하고 있었다.

그런데 뜻밖에도, 사막의 외딴 오아시스 마을에 있는 유적이어서 비교적 사람들의 발길이 뜸하려니 생각했건만, 이집트 곳곳에서 성지순례를 나선 콥트교인들이 그룹을 지어 단체관람을 하고 있었기 때문에, 고도의 집중을 요하는 돔형 예배당의 천정을 촬영하는 일은, 아무래도 불가능해 보였다.

하는 수 없이 내일 아침 일찍 다시 방문하기로 하고, 여물을 싣고 지나가던 사막농부의 당나귀 수레를 타고 시내중심가로 돌아와 보니, 어느새 트럭에 싣고 온 소금을 모두 판매하고 난 아랍상인들은 피로를 풀기 위해, 불락(Bulaq) 마을 남쪽에 있는 류마티즘과 알레르기 치료에 좋다고 알려진 온천(溫泉)을 찾아 나설 채비를 하고 있었다.

온천을 찾아 나서던 아랍상인들은 나에게도 함께 가기를 권했지만, 이 놀라운 신비로 가득 찬 고대의 오아시스 마을까지 와서, 한가롭게 온천욕이나 즐기고 있을 수는 없었다. 이런저런 논의 끝에 내일 오후에 다시 만나기로 약속하고 아랍상인들과 헤어지고 나자, 신발을 벗어들고 발바닥에 와 닿는 부드러운 모래알의 감촉을 느끼며, 어둠에 젖어가는 지평선을 향하여 천천히 걸어가고 있는데, 어디선가 아련히 북소리가 울려오기 시작했다.

▲ 별을 따라서 사막을 유랑하는 목동들. ⓒ수해
점점 템포가 빨라지는 북장단을 따라서 요란한 노랫가락이 들려오는 곳으로 다가가 보니, 그곳에서는 저녁식사를 막 끝낸 한 무리의 유목민들이 모여, 모닥불을 활활 지펴놓고 흥겨운 생일잔치를 벌리고 있었다.

계절에 따라 이동하는 밤하늘의 별자리를 따라, 가축들을 이끌고 사하라 사막의 오아시스 지역을 구석구석 유랑하며 살아가는 베르베르족 목동들의 노래는, 초저녁부터 한번 부르기 시작하면 반드시 다음날 새벽까지 이어진다고 했다.

낮에는 가축들을 돌보느라고 너나없이 바쁘기 때문에, 생일잔치며 결혼식 같은 모든 축하행사는 한밤중에 치뤄지는 유목민들의 오랜 전통관습 때문인지, 밤이 깊을수록 어디선가 점점 더 많은 무리의 목동들이 다양한 먹거리를 싸들고 모닥불 주위로 모여들면서, 사막에 울려 퍼지는 축제의 열기도 더욱 고조되어만 갔다.

 
 
수해 (기행문학가)
운문사 강원을 졸업하고, 오랫동안 세계 여러 나라의 명상사원과 문화유적지를 순례하다가, 동국대학교 대학원 철학과 박사과정을 수료하였다. 지은 책으로 시집《산 두고 가는 산》과 동아시아 기행 에세이《예정된 우연》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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