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세계>, 박훈정 감독, 2월 21일 개봉

 
<신세계>는 <무간도>의 비교 대상이 되는 것을 피할 수 없는 영화입니다. 박훈정 감독도 그 사실을 잘 알고 있습니다. 이를 벗어나려는 노력이 영화에 별반 보이지 않는 것도 그 운명을 십자가처럼 안고 간다는 뜻일 겁니다. 그렇다면 문제는 참조 대상이 된 영화와 차별화된 지점이 어디 있으며 그것이 얼마나 매력적인가에 있습니다.

<무간도1>(2002)은 홍콩 영화의 쇠퇴기에 나온 수작입니다. 추락하는 것은 날개가 있다는 말을 떠올리게 하는 인상적인 영화였지요. 경찰인데 조폭 행세를 하는 진영인(양조위 분)과, 조폭인데 경찰학교를 졸업하고 경찰이 된 유건명(유덕화 분). 이 두 명의 언더커버 이야기를 데칼코마니처럼 흥미롭게 펼쳐놓았습니다. 이의 성공으로 프리퀄에 해당하는 <무간도2>(2003)가 제작되었고, 여기서 청년 진영인(여문락 분)과 유건명(진관희 분)이 전편을 넘어서는 활약을 보였지요.

<신세계>는 <무간도1>의 설정에서 진영인의 서사만을 취합니다. 나쁘지 않은 선택입니다. 유건명의 서사가 차지했던 자리에 새로운 이야기를 심을 여력이 생기니까요. <신세계>에서 이 빈 곳을 메우는 것으로 가장 눈에 띄는 것이 정청이라는 캐릭터의 복합성입니다. 황정민이 열연한 이 캐릭터는 입체적이라거나 다면적이라는 말로는 설명하기 어려운 매력이 있습니다.

배우 황정민이 살려낸 독특한 매력의 보스, 정청

위기에 몰려도 의리를 지키는 사나이인 데다 유머러스하고, 허당인 듯도 하지만 비정해야 할 자리에서는 누구보다도 냉혈한이 되는, 울퉁불퉁 묘한 매력이 살아있는 인물입니다. <신세계>가 매력적이라면 배우 황정민이 일궈낸 현실적이면서 비현실적인 정청 캐릭터에 공감 했다는 말이기도 할 겁니다.

정청은 화교출신으로 범죄조직에서 합법적 기업으로 성장한 ‘골드문’의 중국세력을 대표하는 3인자입니다. 이에 대립하는 4인자가 골드문의 적통이자 토종세력을 대표하는 이중구(박성웅 분)입니다. 이들 위에는 날개가 꺾이고 이름만 남은 초로(初老)의 2인자가 있습니다. 피라미드 꼭대기에 서 있던 1인자가 어느 날 살해당하면서 벌어지는, 이들의 정쟁(政爭)이 <신세계>의 기본 줄거리입니다. 이 소용돌이 속에 신입 시절 강과장(최민식 분)이 8년 전 골드문에 잠입시킨 화교출신의 경찰 이자성(이정재 분)이 있습니다. 그는 정청의 신임을 받는 자리에 올라 있지만, 끝없이 연장되는 잠입 수사에 히스테릭한 상태에 놓여 있습니다.

 
다음으로 빈자리를 채우는 것이 <무간도2>가 보여준 스파이 색출전, 엉뚱하게 조직의 신임을 얻게 되는 자(者) 같은 내용이라는 것은 다소 실망스럽습니다. 성장통을 거느린 청년 무간도 세계의 강렬함을 <신세계>의 캐릭터들이 뛰어넘기란 쉽지 않으니까요. 따라서 영화는 피가 차가워진 어른들의 냉정한 권력 암투에 초점을 맞추려는 듯합니다.

홍콩 아아르 위에 한국적 현실을 담다

박훈정 감독은 조폭을 통해 한국 사회의 정치판을 그리고 싶었다고 합니다. 이는 <범죄와의 전쟁> 등이 보여준 한국형 갱스터 무비의 기본 욕망이기도 합니다. 하지만 <신세계>는 그 욕망의 기본 포석에 충실할 뿐, 이를 넘어서는 지점을 보여주지 못했습니다. 그럼에도 영화에는 흥미로운 구석이 있습니다. 일단 배우들의 앙상블이 좋았고요. 홍콩 누아르 전성기의 주요 테마였던 형제애에 대한 향수를 불러일으키는 점도 그리 나쁘지 않았습니다.

<신세계>는 <무간도>에서 10여 년의 세월, 홍콩에서 한국으로의 전이를 보여준 영화입니다. 이 시공간적 변화는 당혹스러운 결과를 보여줍니다. 혈연과 지연에의 이끌림은 더 끈끈해지고 최소한의 선악, 빛과 어둠의 구분마저 사라진 세계가 펼쳐지는 것이지요. 이것이 한국의 현주소란 말입니까? 되묻고 싶어도 <신세계>에 앞선 영화들이 그렇다고 답을 해준 바 있습니다. 이를 재배열하여 흥미롭게 보여주되, 거기서 한발 더 나가지 못한 것. 아마도 이것이 영화 <신세계>의 공과일 것입니다.


 
 

진수미(카타리나)
시인, 한국문학과 영화를 전공으로 삼고 있다. <달의 코르크마개가 열릴 때까지>, <시와 회화의 현대적 만남>을 썼다. 가톨릭청년성서모임 출신. 작은형제회 <평화의 사도> 편집위원으로 일하면서 가톨리시즘이 담긴 시를 같은 지면에 소개했다. 덧붙여, 시는 영혼이고 영화는 삶이다. 펄프 향 풍기는 ‘거기’서 먼지와 정전기 날리는 ‘여기’로 경로 이동 중. 덕분에 머리는 산발이지만 약간 더 명랑해지고 조금 덜 외로워졌다고 믿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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